"살구꽃이 막 피면 한 번 모이고, 복숭아꽃이 막 피면 한 번 모인다. 한여름에 참외가 익으면 한 번 모이고, 막 서늘해지면 서지(西池)에서 연꽃 구경하러 한 번 모인다. …모일 때마다 술과 안주, 붓과 벼루를 장만하여 술을 마시고 시를 읊도록 한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여유당전서'에 실린 '죽란시사첩서(竹欄詩社帖序)' 중 유명한 구절이다. 다산은 1790년대에 한양의 명례방(지금의 명동)에 있던 자신의 집을 살롱 삼아 동년배의 남인 관료들과 죽란시사라는 문예 창작 모임을 결성했다. 다산이 쓴 죽란시사첩서는 그를 비롯해 채홍원 정약전 한치응 이유수 등 죽란시사 회원 15명의 이름과 결성 동기, 의의를 적은 산문이다.
[1]'죽란시사첩'으로 밝혀진 '익찬공서치계첩'의 표지.[2]새로 발굴된 '죽란시사첩'에 있는 '사약'의 일부. 첫 조항에 '선배들은 융성했던 시절에 많이들 동갑계를 만들었다. 이제 그 취지를 모방하되 범위를 조금 넓혀서 나이 차가 7, 8세가 나더라도 모두 포함시킨다'(줄친 부분)고 써 있다. 안대회 교수 제공 |
익찬공서치계첩은 다산을 포함한 남인 관료 15명의 명단을 태어난 순서대로 기록한 '서치(序齒)'와 모임의 규약인 '사약(社約)'을 담아 첩으로 묶은 필사본이다. 서치에는 회원들의 이름, 자(字), 생년월일이 정확히 기록돼 있으며 다산이 서문에 쓴 순서와 일치한다. 또 서문에는 회원끼리 나이 차가 많이 나면 거북하다는 이유로 회원의 연배를 다산의 위아래 네 살 이내로 제한했다고 써있는데 서치의 명단은 그 기준에도 들어맞는다.
8개 조항으로 된 사약의 내용도 서문의 내용과 부합하되 좀 더 자세하다. '아들을 낳은 계원이나 자녀를 결혼시킨 계원, 지방 수령이나 감사로 나간 계원, 품계가 올라간 계원은 모두들 본인이 잔치를 마련한다.' '매년 봄가을에 날씨가 좋으면 각 계원에게 편지를 보내 유람할 곳을 낙점하고 꽃을 감상하거나 단풍을 구경한다.'
사약에는 서문에는 없는 '벌칙'에 대한 조항이 있다. '연회할 때 떠들썩하게 떠들어서 품위를 손상시키는 계원은 벌주 한 잔을 주고, 세상 사람의 과오를 들춰내 말하는 계원은 벌주 한 잔을 준다.' '모두와 함께하지 않고 사사로이 작은 술자리를 갖는 계원에게는 벌주 석 잔을 준다. 까닭 없이 모임에 불참할 때에도 벌주 석 잔을 준다.'
안 교수는 "이처럼 규약을 문서로 남기는 문예모임은 드물다"며 "사실 죽란시사는 창작 서클의 차원을 넘어 남인 정치 세력을 결집하는 모임이었는데, 외부에 정치적 결사로만 보여 공격당할 것을 우려해 규약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계첩의 제목에 대해 안 교수는 "죽란시사 회원 중 한 명인, 익찬이라는 벼슬을 지낸 한백원이 소장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당시 계모임에선 관례적으로 계원의 명단과 규약 등을 담은 계첩을 회원 수만큼 제작해 각자 소장했다. 안 교수는 "익찬공서치계첩의 제목 글씨가 본문 글씨와 확연히 다른 데다 '공(公)'이라는 표현은 한백원이 죽은 뒤 붙은 것이어서, 그의 사후에 후손이 임의로 제목을 지어 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또 "본문 글씨는 다산의 필체는 아니나 시사가 결성될 당시 회원 중 누군가가 쓴 것이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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