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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10. 19. 20:46

 

정약용 18년 유배, 여기라 버틸 수 있었구나

오마이뉴스 | 입력 2013.10.19 19:51

  • [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 오마이뉴스 > 와 < ㈔생명의숲국민운동 > 은 2012년 7월부터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수상한 '한국의 아름다운 숲' 50곳 탐방에 나섭니다. 풍요로운 자연이 샘솟는 천년의 숲(오대산 국립공원), 한여인의 마음이 담긴 여인의 숲(경북 포항), 조선시대 풍류가 담긴 명옥헌원림(전남 담양) 등 이름 또한 아름다운 숲들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우리가 지키고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의 가치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땅 곳곳에 살아 숨쉬는 생명의 숲이 지금, 당신 곁으로 갑니다. < 편집자말 >



    ▲강진만이 바라다 보이는 만덕산 중턱의 다산초당 ~ 백련사간 정다운 숲 길.

    ⓒ 김종성

    흔히들 '남도답사 1번지'로 부르는 전남 강진(康津 : 편안할 강, 나루 진)은 기름진 평야와 강진만(灣)이 유유히 흐르는 풍요로운 곳으로 말 그대로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고장이다. 내겐 만 원 한 장에 온갖 산해진미가 들어간 배부른 한정식 한상을 내줬던 인심 좋은 곳이기도 하다.

    강진 땅에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을 기억하게 만드는 곳이 있는 데 바로 푸근하고 정다운 느낌을 주는 만덕산(萬德山 408m)이다. 예로부터 야생 차밭이 많아 주민들이 다산(茶山)으로 불렀다. 바로 정약용 선생의 호가 된 이 산 중턱에 그가 유배생활을 하며 십 년간이나 살아갔던 다산초당(茶山草堂)이 있다(다산은 강진에서 총 18년간의 유배생활을 했다).

    이때 산 중의 외롭고 고통스러운 유배의 나날을 함께 해준 이가 있었으니, 정약용 선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의 절 백련사의 학승(學僧)인 혜장(1772~1811)스님이다. 동백나무 숲이 아름다운 백련사는 다산초당에서 오솔길을 걸어 채 1시간이 안 되는 거리에 있다. 다산은 이슥한 밤이 되면 만덕산 자락에 자리한 백련사 혜장을 만나러 산길을 더듬어갔고, 혜장은 언제나 차와 따뜻한 마음으로 다산을 맞았다.

    두 사람은 사상과 종교가 판이하게 달랐지만 진심 어린 마음으로 서로를 보듬었다고 한다. 이렇게 다산 정약용과 혜장스님이 도타운 우정을 나눈 이 오솔길이 다산초당-백련사간 숲길로 제 10회 '전국 아름다운 숲 대회'에서 어울림상(장려상)을 받기도 했다. 강진군 버스터미널 앞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10여 분을 달려 다산유물전시관 앞에 내리면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들머리길이 나온다.

    다산과 숲을 함께 만나는 탐방로



    다산의 여러 저서들과 업적을 둘러볼 수 있는 다산유물전시관.

    ⓒ 김종성



    다산초당으로 가는 들머리의 빼곡한 두충나무 숲.

    ⓒ 김종성



    귤동마을 주변 차밭, 만덕산은 차나무가 많아 주민들은 다산이라 불렀다.

    ⓒ 김종성

    다산유물전시관 앞에서 만난 문화 해설사(방문 전 강진군청 문화관광과에 신청하면 된다)를 통해, 정약용의 호 다산이 후대에 지어졌으며 야생 차나무가 많은 만덕산의 다른 이름 다산(茶山)에서 비롯되었음을 처음 알게 되었다.

    입장료가 따로 없는 다산유물전시관엔 다산의 생생한 필체가 담긴 편지들과 그의 다양한 업적와 유물들이 전시 돼 있다. 전시관을 나와 이정표를 따라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산행을 시작한다. 오르막길이지만 굳이 등산화나 스틱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길이 순하다.

    한옥 형태의 민박집과 찻집이 모여 있는 귤동마을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다산초당을 향해 가는 숲길이 이어진다. 만덕산 자락에 아담하게 자리한 귤동마을엔 야생 차나무들을 가꿔 만든 푸르른 차밭에서 나는 차향이 솔솔 풍겨온다.



    마음을 청명하게 해주는 대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 김종성



    땅에 내딛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던 뿌리의 길.

    ⓒ 김종성

    돌계단을 오르고 무성한 대나무 숲을 지나면 울퉁불퉁한 나무뿌리가 고스란히 드러나 원시적인 야성미를 느끼게 하는 길을 만난다. 수백 년 된 소나무 뿌리들이 지상에서 서로 뒤엉킨 길이다. 뿌리를 밟으니 살아서 꿈틀대는 것 같기도 하다.

    산길에 뿌리가 드러난 나무들을 보면 훼손된 건 줄 알고 흙으로 덮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복토(覆土)라 하여 그 위로 흙을 덮으면 나무는 곧 죽는다. 이미 밖으로 드러난 나무 뿌리는 제가 살 방법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라고.

    오래된 고목 소나무들의 밑 둥엔 병해충으로 부터 나무를 살려놓기 위한 수간주사 구멍이 슝슝 뚫려있다. 활엽수보다 많은 햇빛을 먹어야 하는 소나무라 그런지 다른 나무들과 어울려 사는 게 힘겨워 보인다.

    풍찬노숙의 10년 세월을 견딘 다산초당



    여행자에게 좋은 쉼터가 되어주는 만덕산 중턱의 다산초당. 정약용 선생이 머물땐 초가집이었다.

    ⓒ 김종성



    흑산도에 유배간 형과 가족들을 그리워 했을 다산의 마음이 느껴지는 천일각.

    ⓒ 김종성

    해풍에 밀리는 조수는 산 밑 절벽에 부딪히고
    읍내의 연기는 겹겹 산줄기에 깔려있네
    둥그런 나물바구니 죽 끓이는 중 곁에 있고
    볼품없는 책 상자는 나그네의 여장이라
    어느 곳 청산인들 살면 못 살리
    한림원 벼슬하던 꿈 이제는 아득해라

    ― 정약용 '제보은산방(題寶恩山房)' 중에서

    총애를 베풀던 정조 임금이 1800년 갑자기 세상을 뜨자 다산의 삶은 고난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외척이 발호하고 정치적 복수와 음모가 난무했다. 정조가 승하한 이듬해 1801년 신유사화가 일어나면서 형 정약종이 극형에 처했고 매형 이승훈도 참살을 면치 못했으며 큰형 정약전도 흑산도로 유배됐다.

    인생에서 절정의 활동을 할 마흔 살, 다산도 강진 땅으로 유배돼 18년 동안 풍찬노숙 영욕에 찬 삶을 이어간다. 충격이 어찌나 컸던지 유배 온 후 강진 읍내 주막에 방 한 칸을 얻은 다산은 석 달 동안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두문불출했다고 한다.

    외가 쪽의 친척인 해남 윤씨의 산정(山亭)이었던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긴 건 귀양을 온 지 8년째 되던 1808년 봄의 일이었다. 해남 윤씨 가문의 수많은 서적들은 다산이 유배지에서 < 목민심서 > , < 흠흠신서 > 등 수많은 저술을 남기고 제자 18명을 키웠고 학문을 완성시킨 밑거름이 됐다.

    후세 사람들은 그 18년의 세월을 전화위복처럼 말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책을 읽고 시를 짓고 글을 쓰는데 온 공력을 바치지 않았다면 다산은 그 긴 유배생활을 견디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젠 도보 여행자들에게 툇마루를 내주는 쉼터가 된 다산초당. 원래 초가집을 말하는 것인데 지금의 초당은 옛터의 주춧돌 위에 기와집으로 다시 지은 것이다. 하지만 초당 옆에 아직 남아 있는 아담한 연못 등에서 그의 유배 생활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후일 해배 후 다산은 강진의 제자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연못에 키웠던 물고기의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길섶의 예쁜 들꽃들이 나도 봐주세요 ~ 하며 화사한 미소를 보내온다.

    ⓒ 김종성



    다산초당과 백련사 사이의 깃대봉은 만덕산의 정상 봉우리다.

    ⓒ 김종성



    2007년 새로 만든 해월루라는 누각에 서면 강진만이 한 눈에 펼쳐진다.

    ⓒ 김종성

    다산초당에서 가까운 천일각이 세워진 자리는 다산이 흑산도로 유배 간 형을 그리며 강진만을 굽어보던 곳이다. 지금도 이곳에 서면 강진만의 평화롭고 아늑한 풍광과 그 건너편에 우뚝한 천관산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조망이 시원스럽다. 2007년 다산제 개막에 맞추어 다산과 혜장스님의 우정의 길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2층 정자 해월루(海月樓)도 들릴만하다.

    노랗게 익어가는 들녘과 강진만을 눈에 실컷 담아두고 해월루를 지나면 고찰 백련사 가는 숲 길로 이어진다. 두 숲길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다산초당 가는 길이 여유 작작 산책길이라면 백련사 가는 길은 오르락내리락 산행길이다.

    하지만 순한 오솔길이며 나지막한 언덕길이다. 다산과 백련사의 혜장스님이 그랬던 것처럼 마음이 통하는 이와 담소를 나누며 걷기 좋은 숲길이다. 산속에 자리한 짙푸른 야생 녹차 밭과 함께 길 끝에는 천년고찰 백련사가 소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혜장선사, 차(茶)와의 만남



    백련사 앞에서 수호신처럼 서있는 거대한 팽나무, 남녘의 정취로 가득한 절이다.

    ⓒ 김종성



    수백년 묵은 천연기념물 동백나무 군락이 백련사 주위에 울울창창하게 펼쳐져 있다.

    ⓒ 김종성

    차나무, 대나무, 사스래 나무 특히 저절로 우러러 보게 되는 장대한 팽나무가 입구에서 여행자를 맞이하는 천년고찰 백련사는 남도의 절이 그러한 것처럼 화려하지 않다.

    단청 벗겨진 대웅전이 정겹고, 응진전과 만경루도 고즈넉하다. 고려 8국사(國師)를 배출한 남도의 명찰이니, 어쩌면 소박한 게 당연한 노릇일 터다. 개창 연대는 신라 문성왕 1년(83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국내 대다수 절집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등 전란 통에 소실되는 비운을 겪고 새로 지어졌다.

    다산은 초당으로 들어오면서 생활의 안정을 얻어 학문에 몰두하는 한편 본격적인 다도를 즐겼다. 차를 좋아했던 다산에게 차나무 많은 만덕산은 마음의 위안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이 차를 다산에게 알려준 사람도 바로 혜장스님이다.

    다산과 혜장의 인연을 맺게 해준 백련사 입구 왼편 능선엔 천연기념물 동백나무가 울창하다. 약 5만 2000㎡(약 1만 6000평)에 수백 년 묵은 고목 1500여 그루가 살고 있다. 동백나무는 우리나라의 난온대 수목을 대표하는 나무다.

    고창 선운사, 여수 오동도 등과 함께 국내 3대 동백군락지로 유명하다. 두 군데 모두 가보았지만 울창하기론 이곳 동백림이 제일이다. 백련사 동백은 3월에 절정을 이룬다. 동백꽃 피는 춘삼월에 이곳에 왔더라면 얼마나 황홀했을까.



    3월에 강진 백련사를 찾아오면 슬프도록 아름다운 동백꽃잎을 볼 수 있다.

    ⓒ 강진군청

    다산은 유배생활동안 벗이자 스승이요, 제자이기도 했던 열 살 연하의 혜장스님을 만나기 위해 호젓한 산길을 밤마다 수도 없이 오갔을 것이다. 혜장은 기약도 없이 찾아오는 다산을 위해 밤 깊도록 문을 열어 두었다고 한다.

    이렇게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던 혜장이 1811년 가을 해남 대흥사 암자인 북암(北菴)에서 40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하자 다산은 그의 탑에 새기는 글(塔銘)에서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세월에서 그대 입 다무니 산속 숲마저도 적막하기만 하다오'라며 슬퍼했다고 한다.

    다산은 < 목민심서 > 가 완성된 1818년 마침내 유배생활을 마치고 이곳을 떠난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나무와 숲길과 동백꽃이 있고 담론할 수 있는 지기가 있었으므로 후손에게 명작을 남길 수 있었다. 숲은 과거나 현재나 인간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힘을 내어주는 위대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백련사에서 바로 나와도 되지만 혜장 스님을 만나고 돌아가는 다산의 마음으로 초당을 향해 다시 걸어가 보았다. 한결 부드러워진 햇살은 따사로웠고, 나지막한 숲길은 여전히 정다웠다.

    덧붙이는 글 |

    ㅇ 강진 버스여객터미널 ; 061-434-2053 - 버스터미널에서 다산유물전시관 입구를 지나는 군내버스가 하루 8회 운행 (택시비는 1만원) ㅇ 강진군청 문화관광과 : 061-430-3223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는 전국의 아름다운 숲을 찾아내고 그 숲의 가치를 시민들과 공유하여 숲과 자연,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한 대회로 (사)생명의숲국민운동, 유한킴벌리(주), 산림청이 함께 주최한다. 생명의숲 홈페이지 :beautiful.forest.or.kr| 블로그 :forestforlife.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