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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저수지엔물길이 없디2001

다인이라는 사람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12. 4. 18:52

다인이라는 사람 / 나호열

 

다인이 누구냐고 물으셨지요

무슨 다 자를 쓰느냐고 물으셨지요

다인이 누구냐고 되물었지요

차 다 자가 아니냐고 되물었지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흔적이 아니냐고 물으셨지요

타인의 체취가 남아 있다고 물으셨지요

다인이 아무도 아니었다면

어떻게 금방 차 다 라고 대답할 수 있느냐고 물으셨지요

한 번 더 물어 보아주세요

인 자는 한자로 어떻게 쓰느냐고 물어 보아주세요

어질 인 자도 아니고 참을 인 자도 아니고

당길 인 자도 아니고

사람 인 자면 어떻겠느냐고 되물어 볼까요

진흙 속에 들어가면 진흙이 묻고

동굴 속에 들어가면 어둠이 묻어나요

바다 속에 들어가면 소금기 가득하고

불길 속에 들어가면 연기 냄새가 나요

내 집이 갖고 싶어요

사막이 아닌, 늪이 아닌, 바람이 아닌

위태로운 나뭇가지 위에 둥지라도 좋아요

아름다운 꽃이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듯이

아름다운 얼굴은 다른 사람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어요

기다리고 있어요

오래 전에 떠나버린 내가 없다면

뒤늦게 찾아올 나를 기다리고 싶어요

다인은 차를 끓이고, 마시고, 그 속에서 우주를 찾는 사람

이 아닌가요

쓰레기로 가득한 내장 대신 차밭에서 막 거두어들인 잎새들을

향기로운 주머니로 매달고 싶어요

다인이 누구냐고 물으셨지요

이 세상에 살아 있으나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이에요

급하게 두드리는 자판 연습을 더 해야겠네요

늦더라도 또박또박 이렇게 써야겠네요

ㄷ ㅏ ㅇ ㅅ ㅣ ㄴ

뜨거운 차 한 모금으로 가시 돋친 입안을 가시어내듯이

조용히 불러보아야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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