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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봉 - 망팔 望八, 무애 無碍의 진경 眞景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1. 5. 23. 00:47

 

 

망팔 望八, 무애 無碍의 진경 眞景

 

나호열 ( 시인, 경희대학교 사회교육원 교수)

 

■ 學과 文의 경계를 넘어서

 

청연 양희봉 선생의 『나는 이렇게 들었다』는 여러모로 뜻 깊은 시집이다. 시인 개인으로는 한 평생의 소회를 담은 집약물이기에 그러할 터이고, 시집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살아가면서 어떻게 마음의 맑은 눈을 틔어야 하는가?”에 대한 나름의 지침을 일깨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또 그러할 것이다. 이 설명이 조금 부족한 듯하여 몇 마디 부연한다면 시집『나는 이렇게 들었다』는 한 인생의 축약이면서 새로운 출발 기점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귀중함을 더한다.

 

청연 선생은 이순에 접어들어 십 여 년 간의 기나긴 투병 끝에 끝내 암을 물리쳤다. 나이 칠십에 병마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체력의 보전이 필수적임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며 거기에 덧붙여 삶에 대한 강인한 정신력과 신념이 없다면 건강의 회복은 요원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사, 오 년 전에 청연 선생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을 때 마르기는 하였으나 균형 잡힌 몸매와 형형한 눈빛은 그가 병중에 있음을 도저히 알아차릴 수 없었을 만큼 강건했음을 기억한다. 나이 듦의 병통은 지나친 회한에 사무치거나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쳐 자만에 이르는 일임을 짧은 선입견으로 지니고 있던 필자의 생각은 청연 선생과의 첫 대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여지없이 전복되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이십 여 년 전에 그는 시단에 입문하여 첫 시집을 상재하였을 뿐만 아니라 투철한 선공후사 先公後私로 영예롭게 공직생활을 마치셨음은 널리 알려도 허물이 되지 않을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청연선생은 이 생에서 이룰 것은 다 이룬 분이다. 희로애락을 남김없이 겪고 난 다음의 삶은 안락을 추구하고 관조의 세계로의 침잠이 자연스런 도정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연선생은 끊임없는 탐구의 정신을 놓지 않고 여전히 학 學과 문文을 벼리는데 시간을 다투는 모습을 흩트리지 않고 있음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불교를 공부하고 한시 漢詩의 세계에 침잠하며,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여행을 즐기는 한편으로 현대시의 영역에까지 발을 담는 그의 열정은 가히 공자가 일찍이 설파한 ‘인간은 평생 동안 교육을 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증명하는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청연선생의 이러한 일상은 분명 나름의 여유와 여가가 허락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행복하게 주어진 여가를 소모적으로 흘려보내기는 쉬어도 수기 修己의 방편으로 알뜰하게 살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도저히 만족을 취하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돈은 벌어도 곳간이 빈 듯 하고, 명예는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하늘에 닿을 수 없기에 종극에는 탐욕과 자기기만에 빠져버리는 것이 인간사이다. 과일 깎는 칼이 잘 못 쓰면 흉기 凶器가 되어버리듯이, 자기성찰이 결여된 학學과 문文은 허장성세 虛張聲勢, 교언영색 巧言令色의 수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나 청연 선생의『나는 이렇게 들었다』는 學文이 자신의 삶을 절차탁마 切磋琢磨하는 한 방편임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동시에 그 궁극에 생명에 대한 존숭과 상생의 평화를 자신의 삶과 일치시키려는 열정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증명해주는 출발점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믿음으로서의 불교가 아닌 배우고 익히는 불학 佛學의 정신, 한시 漢詩에 배어 있는 유교와 노장 老莊의 맥박은 청연선생의 시 세계를 가로지르는 마룻대인 것이다.

 

■ 시마 詩魔와의 만남과 극복

 

동서고금을 통해서 문학의 효용성에 대한 논란이 그친 적은 없었다. 우리의 전적 典籍을 살펴보더라도 다산 선생은 문학의 해독 害毒을 경계하였는가 하면 율곡 선생은 시가 언어의 가장 빛나는 보석임을 역설하였다. 이와 같은 설왕설래는 마땅한 해답을 구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굳이 그 해답을 찾으려 애쓸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효용의 근거나 잣대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개개인의 취향과 심성에 따라 시마 - 시작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찾아오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학을 포함한 일체의 예술 활동은 ‘고통의 즐거움’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에 말이다. 더욱이 뇌리에 가득 찬 관념을 문자로 형상화 한다는 것은 일진일퇴의 추推 와 고敲의 과정을 겪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기에 시작 詩作 행위는 저절로 마음을 닦고 비우는 수행의 과정으로 비견되는 것이다.

 

필자는 청연 선생의 시작 詩作을 자신의 삶을 규명하는 정서 활동이라고 규정한다. 앞서 불교가 아닌 불학 佛學으로 에둘러 말한 것은 이미 삶의 허무성을 체득한 끝에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믿음으로서의 방편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맑은 눈을 갖기 위한 공부를 하는 것이오, 현세를 헤쳐 나가는데 필요한 처세는 유 儒에서 찾고, 佛과 儒 를 상합시키는 소요유의 경지는 『나는 이렇게 들었다』에 수다하게 드러나는 여행의 촉수로 가다듬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간략하게 정리한다면 청연 선생의 『나는 이렇게 들었다』는 佛의 공허와 儒의 고루함을 육화하는, 수행으로서의 시작 詩作의 기록인 것이다. 부단한 퇴고推敲는 시인으로 하여금 망상을 버리고 자성을 가다듬으며 온전하게 자유를 향유하게 하는 힘을 갖는다.

 

 

어김없는 마감시간,

남은 것도 없는 여유를 부리다가

쫓기는 남들의 시간에 걸려

짜증만 또 키웠다.

 

우듬지 꺾이고,

팔이 부러지고,

목발로 겨우 기대선

금강송이 전송을 한다.

 

- 「퇴고」 마지막 연

 

위의 시는 자투리 시간을 빌어 한적한 고궁을 찾았던 시인이 폐관 시간에 쫓겨 나오는 광경을 퇴고의 운 韻을 차용하여 빚은 것인데 우듬지, 팔이 꺾이고 부러진 금강송을 통하여 세월에 쫓기듯 살아가는 기계화된 의식과 오염되지 않은 의지의 관계를 묘파하고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시인의 의지는 기계화된 의식에 방해받는 일 없이 삼라만상에 사랑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을 내포하고 있는 바, 시작의 궁극은 아래와 같은 것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그 자리에 꼭 있어야 할 알토란같은 한마디

사랑한다는 말을 가장 멋지게

전해줄 수 있는 그런 시를 기다리고 있다.

 

- 「 원고지」 마지막 연

 

허언으로 사랑을, 자비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퇴고의 과정을 거쳐서 금강송과 같이 만고를 아우르는 금언을 기다리는 시마 詩魔에의 몰입은 시마로부터의 극복이라고 고쳐 말하는 것이 마땅한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문학이, 시가 무슨 쓸모가 있느냐는 논의는 오히려 아무 쓸모없는 질문일지도 모른다. 무애는 해탈이며 자유의 다른 이름이다. 장애가 없음은 구분이 없음이오, 구분이 없으므로 자타불이 自他不二, 자유의 경지인 까닭에 기꺼이 사랑에 응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렇게 들었다』의 전반적인 이해를 위해서 일백 오십 편의 시를 다 열거할 수 없는 까닭에 시집을 관통하는 핵심을 짚어보고 그 특징 몇 가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글을 이어볼까 한다.

 

 

■ 나는 이렇게 보았다

 

 

나는야

산골 논배미 한 가운데

외다리 목발을 한 허수아비다.

 

속없는 지푸라기 몸통에

문종이를 둘둘 말아

개구리참외 머리를 하고

눈 찢고 코를 그려

이빨을 악물었다.

 

갈가리 헤진

적삼 하나 걸치고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외로운 지킴이 일뿐

 

풋 나락 흰 뜨물이

황금빛 낟알이 될 때까지

여름 내내 무거운 햇살

거센 비바람도 이겨내야 한다.

 

내 지킴안의 터전에서

마지막 대궁이 잘려나가고

버려진 짚단위에 또 버려질지라도

이 또한 내 생애의 갈마가 아니겠는가.

- 「자화상 自畵像」전문

 

 

석존 釋尊은 이 세상의 실상을 제법무아 諸法無我로 규정하였다. 내 것이 아닌데도 마치 내 것인 양 착각하거나 탐진치의 삼독 三毒이 내 안에 있음을 알지 못할 때 우리는 망상의 너울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다. ‘갈가리 헤진/ 적삼 하나 걸치고/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외로운 지킴이 일뿐’인 인간 존재는 끝내 버려지고 말 것이다. 경 經 은 논 論 하거나 소 疏 로 풀 수는 있어도 시 詩 로 풀어내기는 지난한 일이다. 「자화상 自畵像」은 노자의 추구 芻狗를 연상하게 한다. 만물은 평등하고 만물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은 무심하다는 것. 그러나 인간사의 무용 無用은 ‘이 또한 내 생애의 갈마가 아니겠는가.’의 마지막 결구로 인해 돌연 생기를 회복한다. 갈마는 불교의식의 용어이다. 계 戒 를 받거나 참회의 의례를 치루는 행위인 것이다. 허수아비는 ‘참된 나’가 아니다. ‘참된 나’는 ‘버려진 짚단위에 또 버려지는’ 시련의 너머에 있는 것이다. 자비는 남에게 베푸는 일일 뿐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삶을 맹렬히 바라보고 미숙한 자아에게 던지는 용기의 말과 같다.『나는 이렇게 들었다』는 한 편의 시「나는 이렇게 들었다」인 동시에 불경에 자주 등장하는 아시여문 我是如聞과 뜻이 가깝다. 그러나「나는 이렇게 들었다」는 조선조 명신 名臣인 오성과 한음의 일화를 차용하고 있다. 틀에 박힌 명분에 얽매이지 않고 육담 肉談을 뛰어넘는 한음의 발설에 ‘신수봉행信受奉行하고 싶다’는 시인의 파격은 장애의 편벽을 뛰어넘는 해학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장애의 편벽이란 무엇인가? ‘보이는 것을 본다’라고 하고 ‘들리는 것을 듣는다’ 라고 하는 것은 각각 눈과 귀라는 기관의 기능에 얽매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별을 넘어설 때 우리는 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무애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여행이라는 화두의 참 의미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여행은 듣는 행위보다는 보는 행위에 그 의미가 두드러지는 법이다. 시「나 홀로의 여행 (2)」은 시인의 여행이 호사스런 여가활동이 아니라 만행 卍行에 가까운 것임을 증명해 준다. 이 시의 마지막 연은 현대인의 스트레스 해소용으로서의 여행과는 거리가 먼, 스스로 고독해지고 슬퍼지는, 급기야 홀로 떠날 수밖에 없는 이승과의 작별연습과도 같다. 그래서 쉬임 없는 시인의 여행길은 산과 섬과 산사를 넘어가는 초극의 길과 잇닿아 있다.

 

 

나 홀로의 여행은

오고 갈 시간이 자유롭고

볼 곳, 들을 것을 쪼개지 않아서 좋다.

 

눈은 언제나

처음을 감탄하고

고즈넉한 옛것에 마음이 치우친다.

 

비켜 지난 볼거리,

놓쳐버린 순간들의 아쉬움 뒤에는

꿈길에도 말 대신 소를 타고 간다.

 

‘혼자라서 외롭다’ 는 말은

호사스런 사람들의 겉치레 일 뿐

 

아름답고 슬픈 여행

길은 멀어야 생각이 깊어지고

산이 높을수록 나를 이기게 한다.

 

 

■ 망팔 望八의 즐거움

 

망팔은 팔십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71세를 일컫는다. 70세를 종심 從心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공자가 말한 바 종심소욕불유구 從心所慾不踰矩 즉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심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느 연구에 따르면 조선 후기의 평균 수명이 50을 넘지 않았다고 하니 오늘날의 노년은 얼마든지 종심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주어진 행복한 시간일 수도 있다. 많지 않은 시들을 통해 시인은 손자의 재롱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건강이 주어지지 않아 홀로 여행을 떠나면서 느끼는 반려자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함을 술회하는 마음을 넌지시 비치기도 한다. 이 모든 오욕칠정은 살아있음을 전제로 하여 발생하는 생명의 활동인 까닭에 ‘인간다움’으로 향해가는 살얼음판이거나, 외줄타기라고 할 수도 있고, 자신을 매섭게 단련하는 행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마음 다잡기 나름인 것이다. 오는 세월, 가는 세월을 막지도 붙잡지도 못할 것임은 당연지사일 것이나 세월에 대응하는 마음가짐에 따라 더 넓고 깊은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망팔望八

 

여물지 못한 늦잠이 지친 새벽을 깨운다.

 

창가에 걸린 눈썹달이

베개 옆에 돋보기를 보고

행복한 한때라고 위로를 하고 있다.

 

하늘을 물끄러미

고개를 돌려 씩 한번 웃고 만다.

 

꿈속에서도

찾아 나선 길은 신작로에서 끊어지고

느린 발걸음에

열차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하늘을 향해 물끄러미/ 고개를 돌려 씩 한 번 웃고 만다’ 는 행위는 아마도 의식적인 행동은 아닐 것이다. 손자의 탄생과 재롱은 시인 자신의 옛일을 되돌아보는 것이고, 거동이 힘든 아내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것은 자신의 병고를 되짚어보는 동병상련 同病相憐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런 동병상련이 확대되면 ‘하얗게 타서도 죽지 않은 너는 / 산동네 아이들의 발끝에서 웃음이 되고 / 눈 내리던 겨울날 / 어머니의 빈 생선 그릇을 받쳐주는 제설제가 되는’ (시「연탄」마지막 부분) 희생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아스라하게 멀어져 간 사람을 그리워하는 애절함을 되살려 보기도 하게 되는 것이다.

 

지평을 넓히기에는 턱없이 모자라서

토막 촛불을 끈다.

 

엎드려 쓰기 힘이 들어 몽당연필도 버린다.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 생각을 뒤집다가는

다시 천장을 물끄러미

 

그리고 또 그려보다가

보이지 않는 생각마저 잃어버렸다.

 

내려오다가

그만

먼동에게 들키고 만다.

 

그렇게 긴긴

동지 날밤을 꼬박 놓치고 말았다.

- 「그 사람 이름은」 전문

 

물론 이 시에서의 그 사람이 실제로 존재했던 정인 情人이었던지, 아니면 고통 끝에 탄생하는 한 편의 시를 가리키는 것인지를 가늠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대상에 몰두할 수 있는 열정, 대상을 향해 달려가겠다는 뜨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인의 망팔은 아직도 청년의 심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청연 선생의 시편들은 이와 같이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고 명징한 사리를 표명하는 일관성을 보여줌으로서 삶의 즐거움, 채우지 않고 여백으로 남겨지는 세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 여백의 향유를 위하여

 

노익장 老益壯은 부족함을 채우려는 일체의 긍정적 활동이라는 정의는 뭔가 부족한 설명이라는 느낌이 든다. 나이 들수록 장대해지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의 힘이기 때문이다. 세월을 기다리지 않고 세월에 맞선다 한들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 내일 죽을 것처럼 일하라./살아가는 하루하루를’ (시「참 쉽다」)분투하는 노력은 아쉬운 여백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좌망 坐忘, 해탈 解脫 활연관통 豁然貫通의 기 氣 로서 시간을 무화 無化하려는 노력을 거듭하게 된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만물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은 꽉 차 있는 듯 하나 비어 있고 그 비어있음을 통해서 만물이 화생 化生하는 섭리를 목도하게 된다. 자연은 말 뜻 그대로 인간의 의지로는 조작할 수 없는 신의 경지에 있는 것이다. 시「배경」은 자연과 더불어 있으나 자연에 예속되어 있는 인간의 처지를 간결하게 보여주고 있는 예이다.

 

태어날 때부터 산은 내 뒤에 서 있었다.

나를 밀어내거나 추월하지 않았다.

그가 푸를 때 내가 푸르고

그가 헐벗을 때 나는 가난했다.

하얀 눈이 내리는 날

그는 나에게 등을 내어주었다.

 

오늘날의 문명은 인간의 풍요를 위해 산을 깎아내리고 산을 착취하고 산을 내버린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만 되돌려 보면 山是山 水是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의 관점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종속의 관계, 여백의 관계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자연은 인간에게 있어서 극복과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끝내 인간의 정신으로는 채울 수 없는 상징 너머의 여백으로 존재한다. 그리하여 『나는 이렇게 들었다』는 홀연히 신령스런 산을 우리 앞에 내놓는다

 

산을 오를 때 정상을 보지 마라.

 

큰 산은 잘난 채 교만함을 거부하고

깊은 물은 가벼이 요동함을 싫어하며

자연은 함부로 내뱉는 넋두리를 용서치 않는다.

 

호사스런 꽃은 쉬이 꺾임을 당하고

성가시게 웃자란 잡풀에는 호미 날이,

꼿꼿한 재목은 톱날이 먼저 와 닿는다.

 

드넓은 하늘은

귀와 면이 고루 모자람과 넘침이 없도록

낮은 곳에 버려지는 잡목으로 숲을 이루고

뻐드러진 솔가지로 선산을 지키게 한다.

 

- 시 「선산先山」전문

 

생명이 가득하면서 또한 죽음이 공존하는 선산은 정상을 정복하려는 마음으로 오르는 산이 아니라 늘 겸허와 추모의 고개숙임으로 그 품에 안기는 산이다. 선인들이 ‘산을 오른다’ 하지 않고 ‘산에 든다’라고 한 까닭을 위의 시는 단아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다. 용 用 과 무용 無用의 잣대는 한갓 인간이 만들어낸 허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시인은 오래 걸어 온 지금에야 깨닫게 된 것일까? 어설프게나마 살펴 본 청연 선생의 시편들은 아무 거리낌없이 儒佛道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무위인 듯 하면 예가 나타나고, 인위가 드러나면 윤회의 업이 가로 막는다. 이런 자유자재의 필법은 현대시의 활달한 상상력과 형상화의 완숙과는 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이 마저도 부지불식간에 뛰어넘는 근기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이제 짧은 소견을 마칠 때가 되었으므로 청연 선생의 만수 강건을 기원하면서 감히 몇 마디 소회를 흩뿌린 것은 아닌 지 두려움 마음을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