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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 이야기 1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0. 10. 28. 13:50

 

‘선의 고장’ 중국 쓰촨성을 가다 <상>

                                                              - 500나한 오른 ‘신라 왕자’ 무상 선사

 

                         흙 먹으며 동굴 수행 15년 … 달라이 라마도 “무상 선사는 대단한 분”

 

 

 

 

 중국 쓰촨성 자중현에 있는 영국사 입구. 우측 기둥에 ‘범목가사전사신라삼태자(梵木袈裟傳嗣新羅三太子, 달마 대사가 인도에서 가져 온 목면가사가 신라의 삼태자에게 전해졌다)’는 구절이 적혀 있다.

 

중국 쓰촨성(四川省)에는 예부터 선사(禪師)가 많이 배출됐다. 쓰촨성의 성도인 청두(成都)를 찾았다. 그곳에서 무상 선사와 마조 선사의 자취를 만났다. 둘은 한때 한 스승(처적 선사) 아래서 공부를 했던 도반이다. 그리고 각자 선(禪)의 일가를 이룬 큰 물줄기가 됐다. 그 물줄기가 중국은 물론 신라의 구산선문(9개 선문 중 3개에 영향)까지 적셨다. 선적지를 순례하는 내내 그들의 안목에 젖었다. 2회 시리즈로 소개한다.중국에는 500나한(아라한)이 있다. 석가모니의 제자인 아난·가섭, 달마, 그리고 중국의 역대 조사 등 깨달음을 이룬 이들이다. 모두가 인도인과 중국인이다. 그런데 딱 한 명의 예외가 있다. 500나한 중 455번째 나한이다. 그는 인도 사람도 아니고, 중국 사람도 아니다. 다름 아닌 신라 사람이다. 그가 바로 신라 성덕왕의 셋째 왕자인 정중무상(淨衆無相·684~762) 선사다.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도 “무상 선사는 대단한 분”이라고 찬탄한 적이 있다. 13~18일 무상 선사의 자취를 좇아 청두를 찾았다. 불교 조계종 중앙신도회 부설 불교인재원 주관으로 고우 스님(조계종 원로의원·봉화 금봉암 주석), 철산 스님(문경 대승사 선원장)과 38명의 순례객이 참가했다. 청두는 중국 서녘의 관문이다. 그곳에서 무상 선사가 머물렀던 절, 흙을 파먹으며 수행했던 동굴, 스승과 나누었던 선문답, 티베트에 처음 선(禪)불교를 전했던 일화 등이 고국의 순례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1200년 세월이 흐른 뒤에 말이다. 

 

 

 

 

 

 

◆신라 왕자는 왜 출가했나=궁금했다. 신라의 왕자가 왜 출가했을까. 그것도 중국 땅 서쪽 깊숙이 와서 말이다. 드라마틱한 이유가 있었다. 왕자에겐 막내 누이동생이 있었다. 누이는 불교에 심취했다. 혼담이 오가고 결혼해야 할 처지에 놓이자 누이는 칼로 자신의 얼굴에 상처를 냈다. 출가를 통한 수행자의 삶을 원했던 것이다. 그걸 본 왕자는 “가냘픈 여인도 절조(節操)를 안다. 하물며 사내인 내가 가만히 있을 손가”라며 출가를 결심했다는 기록이 있다. 왕자는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지금의 시안)으로 갔다. 그런 뒤에 다시 청두로 갔다. 거기서 처적 선사를 만났다. 처적은 지선 선사의 수제자였다. 지선은 육조 혜능과 함께 오조 홍인 대사로부터 법을 받은 인물이었다. 처적은 신라의 왕자를 만나주지 않았다. 결국 왕자는 자신의 손가락을 태웠다. 그걸 본 뒤에야 처적 선사는 왕자에게 ‘무상(無相)’이란 법명을 내리고 제자로 맞았다. 그의 구도심을 본 것이다.

 

 

                  영국사 법당의 좌우 벽에는 무상 선사가 손가락을 태우고, 동굴에서 수행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달마의 가사가 신라 왕자에게

 

 14일 청두에서 자중현(資中縣)의 영국사(寧國寺)로 갔다. 사찰 입구에 기다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범목가사전사신라삼태자(梵木袈裟傳嗣新羅三太子)’란 구절이 눈에 띄었다. ‘인도에서 온 목면가사를 신라의 삼태자에게 전했다’는 뜻이다. 흥미로웠다. ‘목면가사’가 뭔가.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인 달마 대사가 인도에서 가져와 이조 혜가-삼조 승찬-사조 도신-오조 홍인을 거쳐 육조 혜능에게 전해졌던 깨달음의 징표다. 당시 측천무후는 즉위 후에 혜능 대사를 황궁으로 초청했다. 혜능은 병을 핑계로 거절했다. 측천무후는 “그럼 대신 달마 조사가 물려준 가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혜능 대사는 가사를 보냈다. 혜능은 빠졌지만 측천무후는 신수·지선·현약·노안·가은 선사 등 당대에 내로라하는 ‘10대 고승’을 황궁으로 초청했다. 그리고 물었다. “화상들은 무슨 욕망이 있습니까?” 지선 선사를 제외한 나머지의 대답은 똑같았다. “욕망이 없습니다.” 측천무후가 지선 선사에게도 물었다. “화상도 욕망이 없습니까?” 지선 선사가 답했다. “욕망이 있습니다.” 뜻밖의 대답에 측천무후가 다시 물었다. “어찌해서 욕망이 있습니까?” 지선 선사가 말했다. “일으키면 욕망이 있고, 일으키지 않으면 욕망이 없습니다.(生則有欲 不生則無欲)”이 말을 듣고 측천무후는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리고 달마로부터 내려오는 목면가사와 칙명으로 새로 번역한 『화엄경』 한 부를 지선 선사에게 내렸다. 지선 선사의 답은 명쾌했다. 욕망이 뭔가. 마음이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러니 “욕망이 없다”고 말한 이들은 “마음이 없다”고 답한 셈이다. 그건 숨 쉬지 않는 돌멩이와 같다. 지선 선사의 답은 달랐다. 그는 “일으키면 욕망이 있고, 일으키지 않으면 욕망이 없다”고 답했다. 그 답은 숨을 쉰다. 들숨과 날숨이 자유롭다. 우리의 마음도 숨을 쉰다. 일으키는 마음이 날숨이고, 내려놓는 마음이 들숨이다. 지선 선사의 마음은 그렇게 들락날락했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게 왜 가능한가. 답은 간단하다. 욕망의 실체, 다시 말해 마음의 실체를 봤기 때문이다. 그게 온전히 비어있음을 말이다. 그걸 알면 어떠한 마음을 일으키고, 쓰고, 내려놓고, 다시 일으켜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아무리 주먹을 세게 움켜쥐어도 허공을 붙들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마음이 ‘허공(비어있음)의 작용’임을 깨친다면 말이다. 그래서 마음을 일으킨 뒤와 일으키기 전이 하나로 통하는 거다. 측천무후는 혜능 대사에게 “전승 가사를 지선 선사에게 줘 잘 보관 공양토록 했다”는 칙서와 함께 따로 가사 한 벌과 비단 500필을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혜능 대사의 목면가사가 지선 선사에게 가게 됐다는 것이다. 그 가사가 수제자인 처적 선사에게, 다시 수제자인 무상 선사에게 전해졌다는 기록이 『역대법보기(歷代法寶記)』에 등장한다.(일부에선 지선이 아닌 처적 선사가 측천무후에게서 가사를 받았다는 기록도 있다.) 영국사 법당에는 지선 선사가 황궁에서 가사를 받는 장면, 처적 선사 앞에서 신라의 왕자가 손가락을 태우는 장면, 무상 선사가 중국인 대중에게 법을 설하는 장면 등이 좌우 벽면에 가득 그려져 있었다. 

 

 ◆15년간 수행했던 무상의 바위동굴

 

 영국사에서 버스를 타고 40분쯤 달려 천곡산에 도착했다. 시골이었다. 밭두렁을 30분쯤 걸어 어하구(御河溝)란 골짜기로 들어섰다. 거기에 무상 선사가 15년간 수행했던 바위동굴이 있었다. 순례객들은 그 동굴 앞에 섰다. 침묵이 흘렀다. 동굴 안은 빗물이 고여 아예 웅덩이로 변해 있었다. 무상 선사는 그곳에서 수행을 했다. 풀로 옷을 엮어 입고, 음식이 떨어지면 흙을 먹었다고 한다. 너덜너덜한 옷에 머리카락과 수염도 길었다. 지나던 사냥꾼이 짐승으로 착각해 활을 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15년을 수행했다. 스승인 처적 선사가 무상에게 물었다. “너는 천곡산에서 무엇을 했느냐?” 무상이 답했다. “한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바쁘지도 않았습니다.(總不作 只沒忙)” 그 말을 듣고 처적 선사가 말했다. “너와 그가 바쁘면, 나 또한 바빠진다.(汝與彼忙 吾亦忙矣) 이 문답은 무상 선사의 견처(見處·깨달은 경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굳이 풀면 이렇다. “천곡산에서 무엇을 했는가?”라는 스승의 물음에 무상은 “늘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스스로 만든 착각 때문에 바쁘지도 않았습니다”라고 답을 한 셈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는 바쁘지 않다. 허공을 가르는 바람도 바쁘지 않다. 가을에 물드는 단풍도 바쁘지 않다. 자연과 이치에는 바쁨이 없다. 그걸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바쁠 뿐이다. 왜일까. 착각 때문이다. 비와 바람, 자연과 우주의 이치에 대한 착각 때문이다. 처적 선사는 “너와 그가 바쁘면, 나 또한 바빠진다”고 답했다. 무슨 뜻일까. 내가 바쁘면 세상이 바쁘고, 내가 고요하면 세상이 고요해진다. 깨달음도 그렇다. 내가 눈을 뜨는 순간, 온우주가 눈을 뜬다. 내가 눈을 감으면, 온우주가 눈을 감는다. 그래서 처적 선사는 “네가 눈을 감으면 나 또한 눈을 감게 된다”고 한 것이다. 제자의 명쾌한 답에 스승은 그렇게 맞장구를 쳤던 것이다. 무상 선사 수행동굴은 웅덩이처럼 변해 있었다. 고인 물 위로 불상의 머리만 보였다. 순례객들은 그 불두(佛頭)를 향해 합장을 했다. 천년 세월이 흐른 뒤, 고국에서 온 순례객과 무상 선사의 시선은 그렇게 마주쳤다. 

 

◆이치를 깨쳐라, 탐착이 멸한다

 

쓰촨성에서 무상 선사는 유명해졌다. 그는 대중에게 ‘인성염불(引聲念佛)’이란 수행법도 제시했다. 신라 사람으로 중국 땅에 정중종(淨衆宗)이란 종파도 세웠다. 안록산의 난(755년)이 일어나자 당 현종은 쓰촨성으로 피신했다. 그때 무상 선사와 만났다. 무상은 현종에게 제왕으로서 선정을 베푸는 것에 대해 선법(禪法)을 설했다. 난이 끝나자 현종은 무상 선사에게 대자사(大慈寺)란 절을 내렸다. 무상 선사는 티베트에서 온 사신에게 처음으로 선(禪)불교를 전하기도 했다. 티베트 고대역사서인 ‘바세’전에도 무상 선사에 대한 기록이 등장한다. 사실 ‘신라 왕자 무상 선사’는 역사 속에서 잊힐 뻔했다. 1907년 영국인 탐험가 스테인이 돈황석굴에서 발굴한 『역대법보기(歷代法寶記)』를 통해 되살아났다. 거기에 담긴 무상의 어록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이치를 깨달았을 때 비로소 탐착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바람이 비었음을 안다. 그래서 바람이 생기고, 바람이 불고, 바람이 사라짐을 볼 뿐이다. 누구도 바람을 움켜쥐려고 하진 않는다. ‘바람이 무엇인가’라는 이치를 알기 때문이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무엇인가’라는 이치를 알면 움켜쥘 수가 없는 법이다. 1200년 전, 무상 선사는 그걸 설했다.

 

청두(중국)=글·사진 백성호 기자 [중앙일보] 입력 2010.10.21 00:29 / 수정 2010.10.21 00:29

* 중앙일보 2010.10.28 37면에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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