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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고아원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0. 5. 23. 12:45

올림픽도로에서 경춘고속도로 들어서기 직전 왼편에 낯선 간판이 숨어 있다.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 328-2번지, '나무고아원'이다. 생긴 지 딱 10년 됐다.

2000년 4월 꽃가루 날린다는 혐의로 목 달아나게 생긴 플라타너스 가로수 672그루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만5000여 그루가 들어왔다. 병들고 버림받은 못난이들이 이 공간을 웬만한 공원보다 더 멋지게 만들었다.

발단은 가로수 정비였다. 2000년 하남시는 꽃가루가 날린다는 민원이 폭주하면서 버즘나무, 즉 플라타너스를 대거 이팝나무로 교체했다. 그때 시에서는 이 비운의 버즘나무들을 미사리 풀밭에 이식했다.

굵은 가지 다 잘리고 전봇대처럼 막대기만 남은 버즘나무들이 그 들판에 심어졌다. 고아원 관리인 김종일(41)씨는 "이후 건설현장이나 도로공사 때 베일 운명에 놓인 나무가 나오면 전국 어디든 가리지 않고 가서 받아왔다"고 했다.

식물도 고아가 있다. 사람에게 버림받고 상처입은 나무들이 경기도 하남 나무고아원에 살고 있다. 박종인 기자

그 해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있던 한 군부대가 건물 신축작업에 한창이었다. 신축부지에 자라던 나무들이 골칫덩이였다. 부대가 내린 결론은 '베어낸다'였다. 그 나무들도 지금 고아원에 있다.

팔당댐 옆에는 솔숲이 있었다. 봄이면 소풍나온 초등학생들이 나무그늘 아래에서 김밥 먹고 나무 밑동에서 보물을 찾곤 했다. 댐 옆으로 신작로가 뚫리면서 건설회사는 이 솔숲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이 노송들 또한 지금 고아원으로 데려왔다.

2002년 도로확장과 함께 이곳으로 들어온 40년 된 수양버들은 아예 몸 전체가 썩어 지난달에 한쪽면을 도려내고 인공수피를 붙이는 대수술을 받았다. 주민들이 무심코 부르기 시작한 '나무고아원'이라는 이름이 결국 2001년 정식 명칭으로 굳었다. 소문이 퍼지자 전국에서 나무를 기증하겠다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고아원 오른쪽에 있는 느티나무 숲도 기증받은 것이고 산책로 왼편에 있는 모과나무도 기증받은 것이다.

고아원 옆 한강변 산책로에는 나무고아원에서 3년 동안 살다 2007년부터 입양된 느티나무로 가로수를 심었다. 느티나무들은 어른 눈높이쯤에서 몸통이 잘려나가 있고 그 위로 잔가지들이 다시 뻗어 있다.

김씨는 "나무들이 어디서 와 어떤 대접을 받고 어디로 입양됐는지 족보를 만들고 있다"며 "가능하면 입양 보내는 일 없이 이곳을 생태공원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고아원에는 또 새들이 먹을 열매를 맺는 나무들도 대량 심었다. 김씨는 "봄이 되면 탐조객들이 카메라를 들고 대거 나타나고, 고사리랑 쑥을 캐는 사람들로 붐빈다"고 했다.

 

조선일보  박종인 기자 sen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