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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그 감춤의 시법 시의 은폐(隱蔽) 지향성·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0. 1. 24. 20:23

상징, 그 감춤의 시법 시의 은폐(隱蔽) 지향성·


                                              임보


―상징구조(象徵構造)


모든 언술(言述)은 욕망의 기록이다. 언술 속에는 화자의 소망 곧 의도한 바가 담겨 있게 마련이다. 대개의 경우는 그 의도가 양성적으로 드러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시의 대표적인 표현기법 가운데 하나는 감춤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의도하는 바를 노골적으로 적나라하게 표현하기보다는 은근히 숨겨서 드러내고자 하는 은폐 지향적 경향이다. 직설보다는 암시가, 직유보다는 은유가 시에서 소중히 다루어지고 있는 것에서도 그러한 경향을 느낄 수 있지만 감춤의 대표적인 장치는 역시 상징(象徵)이라고 할 수 있다.


막강한 군사력과 일사불란한 통치체재를 자랑하던 당국도 속수무책이었다. 소리없이 내습한 안개는 퇴치할 수도 없고, 해산시킬 수도 없고, 연행 구금할 수도 없었다. 교통이 일체 두절됨에 따라 생필품 공급이 중단되어 경제적 마비 상태가 발생했고, 불가시현상의 지속으로 인하여, 폭행·약탈·살상 등 사회적 혼란이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천문기상학적으로 규명할 수 없는 이 이상한 안개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서 나온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떠돌았다.


                                            ―김광규 「마감 뉴스」 부분


이 작품은 안개의 내습 때문에 한 나라가 마비되어 극도의 혼란 속에 빠져들고 있는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그 안개는 현실적인 안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마지막 행에서 넌지시 암시한다. 여기서의 안개는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그 무엇을 대신하는 매체(vehicle)다. 그러나 말하고자 하는 주지(tenor)가 무엇인가를 추적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서 나온 것'으로 미루어보아 백성들의 '저항' '불신' '증오' '태업(怠業)' 등 다양하게 추정할 수 있다. 말하자면 주지가 확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미확정적인 개방성을 지닌다. 이것이 상징의 구조다. 은유는 비록 주지가 숨어 있는 경우라 할지라도 하나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추정이 비교적 용이하지만, 상징의 경우는 주지를 다양하게 추정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모호성을 유발한다.


꽃이보이지않는다. 꽃이향기롭다. 香氣가滿開한다. 나는거기墓血을판다.묘혈도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속에내가들어앉는다. 나는눕는다. 또꽃이향기롭다. 꽃은보이지않는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잊어버리고再처거기묘혈을판다. 묘혈은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로나는꽃을깜박잊어버리고들어간다. 나는정말눕는다. 아아. 꽃이또향기롭다. 보이지않는꽃이―보이지도않는꽃이.

                               ―李箱「절벽(絶壁)」전문


이 작품은 '꽃'과 '묘혈'에 대한 두 진술로 이루어져 있다. 꽃이 향기롭지만 보이지 않고 묘혈을 파지만 역시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이 작품을 읽어보고 여기서 언술되고 있는 꽃과 묘혈이 사물 그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곧 현실적 정황이 아닌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꽃과 묘혈은 말하고자 하는 무엇인가를 숨기면서 그것을 대신하고 있다. 숨기고 있는 그것이 무엇일까? 이것을 풀어 보는 일이 곧 상징의 장치를 여는 재미이기도 하다. 묘혈이 죽음을 상징한다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다. 묘혈을 파는 행위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꽃은 무엇의 상징인가. 꽃은 생명체인 식물의 삶의 절정을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 곧 꽃은 삶의 상징으로 추정할 수 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삶은 얼마나 매혹적[향기]으로 다가오겠는가. 그러나 불치의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때때로 삶의 매혹도 잊고 죽음의 유혹에 사로잡히기도 할 것이다. 삶과 죽음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도 없으면서[보이지 않는다] 상반된 두 세계에 반복적으로 경도(傾倒)되는 심리적 갈등을 표출하고 있다. 살고도 싶고 죽고도 싶은 이율배반의 모순 심리를 되풀이하여 맛보면서 화자는 진퇴양난의 절박함에 이른다. 그래서 '절벽'이라고 했으리라.


은유와 구별되는 상징구조의 또 다른 특징은 주지와 매체의 관계가 추상적인 것과 구상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즉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정황을 구체적인 사물로 바꾸어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생각하면 상징구조는 감춤의 성질과 아울러 들춤(과장성)의 의도도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시인들은 자신이 의도한 바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은근히 감추어 표현하려는 것인가. 그런 은폐 지향적 성향은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S. 프로이트의 견해에 의하면 우리의 무의식 속에는 욕망(id)을 검열 통제하는 도덕적 자아(super ego)가 있어서 욕망이 분출하지 못하도록 억제한다고 한다.

그래서 욕망(id)은 감시자(super ego)의 눈을 피해 변장된(감추어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것이 꿈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꿈은 욕망의 상징인 셈이다.

시인들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가 상징의 구조를 갖게 된 것은 심층심리의 본능적 관습에서 연유된 자연스런 결과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감추고자 하는 성질을 선천적으로 강하게 타고난 것 같다.

인간의 사회에 고도의 거짓말이 횡행하고 의상과 화장술의 발달을 보게 된 것이

결코 우연의 소치만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상징은 고급 위장술이다. 그러니까 시인들은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수준 높은 위장술사인 셈이다.

                                            ―졸저『엄살의 시학』pp.53∼56


수사학에서는 상징의 구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즉 정신이나 사상, 관념 같은 불가시(不可視)의 세계를 감각적인 사물 곧 물질과 같은 가시(可視)의 세계로 바꾸어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불가시의 세계(A)--------------→가시의 세계(B)

idea (관념, 사상)--------------→image(감각적 사물)

정신--------------------------→물질


예를 들자면 '평화'나 '구원' 같은 손에 잡히지 않은 추상적인 정황을 구체적인 형상을 지닌 '비둘기'나 '십자가' 같은 사물을 끌어다 표현하는 기법입니다. 주지인 (A)대신 매체인 (B)로 나타냅니다. 이미 비유의 구조를 설명할 때 주지(원관념, tenor)와 매체(보조관념, vehicle)를 거론한 바 있지요? 상징도 두 사물의 결합 양식이니까 넓게 보면 비유의 범주 속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상징에서는 주지는 숨고 매체만 드러납니다. 전에 '은유의 세 유형'을 설명하면서 제시했던 '생략의 구조'를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상징은 바로 그 주지가 생략된 은유 구조와 흡사합니다. 이 두 구조에서 우리는 감춰진 주지를 암시에 의해 추정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은유와 상징은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은유에서의 주지는 하나로 고정되어 있는데

상징에서의 주지는 다양하게 상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① '밤하늘의 눈들이 지상을 지켜보고 있다.'


②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①에서의 '눈'은 '별'을 지칭하는 것임이 단순하게 드러납니다. 즉 주지와 매체의 관계가 1 : 1이므로 누구든 그 주지를 쉽게 추정할 수 있습니다. '눈'은 '별'의 은유입니다.

그러나 ②의 글(한용운의「님의 침묵」)에서의 '님'의 주지는 단순하게 추정되지 않습니다.

보는 이에 따라 '조국, 불타, 애인, 진리, 自我…' 등 다양한 상정이 가능합니다. 이처럼 상징은 하나의 매체를 통해 다양한 주지를 상기시키는 모호한 구조입니다.

상징의 구조에 대해서 좀 이해가 가나요? 나는 앞에 인용한 내 글에서 프로이트의 이론에 의지하여 상징 구조의 배후를 설명해 보려고 시도했습니다만, 이해하기가 까다롭다면 그냥 쉽게 생각해도 상관없습니다. 상징은 숨기면서 말하는 것으로 상대방을 전복시키는 한 전략입니다. 숨기는 가운데 상대방을 사로잡는(혹은 골려주는) 인간만이 구사할 수 있는 고급 술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