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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의 경향과 분석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0. 4. 22. 22:46

현대시의 경향과 분석

 

                                                        나호열 (시인, 경희대학교 사회교육원 교수)

 

 

좋은 시란 다소의 특색과 공감대와 시대정신 것이 투영돼 있는 것들이다.

                                                                                - 좋은 시 2010

1. 외형적조건

 

 

 담론은 무성하지만 철학이 부재하는 시대, 다양성이라는 패러다임이 은폐하고 있는 극심한 혼란과 분열의 시대, 무제한의 정보 속에서 깊이를 상실한 시대, 담론의 생성과 소멸이 유행을 타는 시대, 기발한 조합이 미덕인 시대, 통속 비극만이 존재하는 희극의 시대, 물질에 의해 정신이 완패한 시대. 이 모두는 우리 시대가 지니고 있는 특수성이면서 동시에 문제성이다. 【엄경희 시정신을 위한 몇 가지 전제 : 시와 정신】

 

 

 광고문안과 같은 짧고 쉽고 자극적인 단문이 정교한 사고와 섬세한 감정을 보장하는 문장들을 밀어냈다. 게다가 알아들을 수 없는 시집들이라니!

마지막으로 개인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가 활성화되면서 시집 판매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영화에서 음반 시장에 이르기까지 불법 다운로드의 대상이 되지 않은 시장이 없지만, 적어도 언어 예술의 분야에서는 시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권혁웅 지금이 바로 시의 시대다.】

 

 

2. 세부적 진단

 

 

21세기, 독자들은 정보용 읽을거리를 찾고 감정순화 방식도 스토리텔링의 형식을 원한다. "현대사회의 복잡하고 상대적인 현상과 가치들은 그것을 해석하기 위한 명석한 관찰자의 산문적 통찰을 요구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고(故) 김현 씨는 1976년 <산업화시대의 시>에서, 산업사회가 난숙기에 접어들면 시를 안 찾을 것이라는, '죽은 시(詩)의 사회'의 도래를 예견한 바 있다.

 

 

 실천문학사 손택수 주간은 "국내 시집 시장의 절대 다수는 386세대였는데, 이들의 시적 감수성이 최근 젊은 문단의 감수성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3. 시의 난해성에 대하여

 

 

 2000년대 등단해 2005년을 전후로 첫 시집을 발표한 김경주, 김민정, 황병승 등이 보여준 '새로운 감각'은 이후 '미래파'란 이름으로 명명되기도 했다. 미래파 논쟁과 그를 둘러싼 전위적인 시 세계를 펼치는 시인들이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문학계 전면에 나섰고 그들을 지지하는 젊은 비평가 그룹이 담론의 중심에 있다. 이후 5년이 흘렀고 지난 해부터 올해까지 그들의 두세 번째 시집이 주요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텍스트 해석 불가' 논란을 넘어 하나의 시류가 된 것이다.

 

 

4. 한국현대시의 문제점

 

 

 90년대 이후 일상에 대한 발견과 복귀, 그것의 가치에 대한 옹호는 추상적 거대담론을 벗어나 구체적 생활 공간으로 우리의 관심을 옮기게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상성과 일상적 존재에 대한 미시적 탐구가 그것 이상의 세계를 배제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8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 페미니즘, 생태주의, 탈식민주의, 몸담론, 동양학의 부활, 마술적 상상력으로서 환상, 타자이론 등 우리에게도 매우 유용한 사유의 지평이 활성화된 것이 사실이다.

 

 

 이는 비평과 창작이 함께 이러한 담론에 대해 반응하면서 수많은 문학 잡지에서 특집을 기획했던 테마들이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외국의 다양한 이론과 국내 연구자들의 저서가 단행본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이명원은 외국 이론의 수입에 대해 "어떠한 문학이론이든 한 사회의 정치·경제적 역학관계 속에서 도출될 때 이론의 적절성을 검증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의 수용에 있어서 우리 사회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기계적인 도입은 상당한 문제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파문}, 새움, 2003년, 255쪽)라고 말하고 있다.

 

 

5. 새로운 지향점

 

 

1) 시대의 우울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진실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시는 그 이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는 본질적으로 낭만적 정신의 소산이다.

 

2) 시는 언제나 사는 세상과 살고 싶은 세상 사이에서 태어난다

 

3) 시는 독자와 친해지려고 노력해서는 안 된다. 시인들에게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쓸 것을 강요하는 완고한 주문이 있어 왔으나, 그것은 시와 시인을 망치는 어리석은 주문이다. 좋은 시는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는 시가 아니다(시가 눈높이교육이라면 독자가 초등학생이란 말인가?). 좋은 시는 독자에 맞추어 언어의 수준을 낮추는 시가 아니라, 언어에 맞추어 독자의 수준을 높이는 시다. 좋은 시는 어려울 수도 있고 쉬울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시의 난이도가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정확하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구현했느냐다

 

 

6. 좋은 시를 쓰기 위한 현실적 전략 10가지

 

 

첫째, 언어에 대한 믿음을 갖고 언어에 대해 회의하지 말 것이며 말장난도 하지 말것.

둘째, 마스터베이션 하지 말고 감동의 소통에 힘쓸 것.

셋째, 지적, 이념적 콤플렉스, 열등감에 절대 빠지지 말 것.

넷째, 현대시작법, 낯설게 하기와 메타포의 시궁창에 빠지지 말 것.

다섯째, 리듬을 탈 것.

여섯째, 자유시, 산문시 양식을 잘 활용할 것.

일곱째, 어조를 생각할 것.

여덟째, 아무리 기발한 발상이나 메타포라도 시 전체에 도움이 안 된다면 과감하게 버릴 것.

아홉째, 섹스를 팔지 말 것.

열째, 아프고 슬프고 위악적인 제스처 취하지 말 것.

 

【이경철(문학평론가) 한국현대시의 시성회복을 위한 고언】

 

 

 

<인용한 글들>

 

권혁웅, 「지금이 바로 시의 시대다」

엄경희, 「시정신을 위한 몇 가지 전제」

이윤주, 「그 많던 시집, 어디로 갔나 」인터넷한국일보,2010/04/06

김남조, 이유경, 유재영, 정일근,선 『좋은 시 2010』 싦과 꿈

 

 

<예문시>1

 

 

식구 / 이정록

 

 

 

그릇 기(器)라는 한자를 들여다보면

개고기 삶아 그릇에 담아놓고

한껏 뜯어먹는 행복한 식구(食口)들이 있다

작은 입이 둘이고 크게 벌린 입이 둘이다

그중 큰 입 둘 사라지자 울 곡(哭)이다

식은 개고기만 엉겨붙어 있다

개처럼 엎드려 땅을 치는 통곡이 있다

 

아니다, 다시 한참을 들여다보면,

 

기(器)란 글자엔 개 한 마리 가운데에 두고

방싯방싯 웃는 행복한 가족이 있다

옹기종기 그릇이 늘어나는 경사가 있다

곡(哭)이란 글자엔, 일터로 나간 어른 대신

남은 아이들 지키느라 컹컹 짖는 개가 있다

집은 제가 지킬게요 저도 밥그릇 받는 식구잖아요

밤하늘 별자리까지 흔들어대는 목청이 있다

 

 

 

<예문시> 2

 

11월 /엄원태

 

 

불현듯 사방이 어두워졌다

마음에 스위치 꺼지듯, 딸깍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자주 깜빡이는 추억에도 점멸장치가 있어

한동안 꺼놓았다가 필요할 때 켤 수 있으면 좋겠다

 

 

만상이 그렇게 한 순간에 늙어간다

슬픔도 속살 메마르고 까칠해서, 부지불식간이다

 

축생, 혹은 먼지같은 날들,

 

생이 마냥 누추해지는 한 시절 있다

추억이란, 어둠 속으로 제 추운 그림자를 밀어넣는 일.

 

 

검은 외투를 걸친 어느 후생의 저녁은

설핏 뒷모습만 보여주고 가뭇없다.

 

 

허공에 총총하던, 무당거미들이 사라진 11월,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 아라파호 인디언들이 11월을 지칭하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