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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의 승화, 우주를 껴안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8. 10. 3. 21:07

이 계절의 시

                     이 채 민

                  


              외로움의 승화, 우주를 껴안다


                       - 박제전의 「풍류의 집」(시와 상상 2007년 가을호 게제)




화순 적벽에 갔더니

천년된 은행나무에 은행이 열린단다

가마니로 은행을 거둔단다

수나무가 사라졌어도

물에 드리운 제 모습을 서방님 삼아

은행알을 낳는단다

물속 제 모습에 남아 있는 서방님의

냄새며, 소리며, 흔들거리는 자취까지

온 가슴으로 받아들인단다


내 친구 풍류객이

상처한 내게 위로삼아 들려주는

그 말씀 듣자니,

갑자기 천년만년 사는 기분,

한 여자가 수 백명으로 늘어나는 기분,


옳거니,

이제는 이 강산 나들이길, 어디나

하나같이 내집이렸다.













  회자정리 會者定離 그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나 막상 일을 당하고 보면 그 슬픔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느 사람은 그 슬픔이 지나쳐 병이 들고 어느 사람은 허상과도 같은 그리움으로 일상을 그르치기도 한다. 아무리 마음을 굳게 다지고 연습을 한다한들 생生과 사 死를 가르는 고통을 어찌 피할 수 있을 것인가!


  아내가 죽었는데 두 다리를 펴고 앉아서 술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른 사람이 장자 莊子이다. 그의 친구 혜시 惠施가 문상을 가서 그 광경을 보고 너무하다 싶어 말을 건네니 장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니 나도 슬펐다네. 그러나 다시 생각을 돌이켜 보니 이 세상 살아 있기 전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생명도 없었고, 형상도 없었고 본래 기질도 없었다. 내 아내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을 뿐, 내 아내는 우주를 거실로 삼아서 편안히 누워 잠자고 있는데 내가 슬피 호곡을 한다면 내 스스로 운명을 통달하지 못한 것 같아 울음을 그치게 되었다네” 장자 至樂篇에 나오는 이 일화가 감히 범인 凡人이 체득할 수 없는 경지를 이르는 말씀이라면 공자가 설파한 애이불상 哀而不傷 이 좀 더 우리에게 위로의 말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시 「풍류의 집」은 두 가지 풍경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수나무가 없이 절절한 그리움으로도 튼실한 은행 열매를 맺는 천년된 아름다운 은행나무를 통해서 지극한 사랑의 경지를 보여주는 것이 그 하나요,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그 풍경을 통해서 짝을 잃어도 그 외로움을 승화시켜서 만물동근 萬物同根의 이치를 깨달아 이 우주를 품에 가득 안게 되는 기쁨의 삶이 있다는 말씀이다. 자기 것이라 여기면 온통 어여삐 하다가 그것을 잃으면 애통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좁은 마음을 트이게 되면 이 세상 그 무엇도 내 것이 아닌 것이 없다는 넉넉한 풍경에 다다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은 또 온통 ‘풍류의 집’으로 활연관통하여 녹녹한 노래가 절로 나오지 않겠는가!


  짝이 내 곁에 있을 때에 그 짝을 통해서 사랑을 배우고, 빈 곳을 열심히 채우는 공력을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인지를 「풍류의 집」은 넌지시 일러준다. 행간 곳곳에 스며드는 애절한 사부곡 思婦曲을 넘어, 애이불상 哀而不傷을 넘어 외로움으로 우주를 껴안으며 커다란 슬픔과 마주하게 하는 완강한 정신 하나가 올곧은 나무처럼 내 앞에 서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