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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훈장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8. 8. 21. 17:33

문인의  훈장

                   김우종


재작년 한 해가 저물어 갈 무렵에 북에서 온 한 여인을 셋이서 만나고, 그녀가 전해 준 북쪽 소식을 소재로 수필 한 편씩을 써서 발표했다. 사실 증언이 되는 문학은 수필밖에 없다.

투박한 함경도 사투리, 깡마른 몸매에 울긋불긋 지도가 그려진 얼굴. 그녀는 사회교화소에서 온몸에 옴이 번져 얼굴이 그 꼴이 되었다고 한다. 체중이 25킬로그램까지 떨어지고 옴까지 번져 컴컴한 토굴 한 구석에서 숨이 넘어가던 그녀를 구출해 내고 얼마 후 압록강을 넘겨 준 남편의 이야기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보려면 천국이 아니라 그런 지옥을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 해에 수조 원의 음식을 쓰레기로 버리는 나라에 와서 1년이 넘었으면 이젠 살도 좀 찌고 그까짓 옷차림도 남들 버리는 것만 주워 입어도 된장녀 흉내쯤 어렵지도 않을 터인데 여전히 한심한 탈북자 차림이 아닌가?

그때 만나고 1년 반이 지나서 아까시꽃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는 지난 5월에 우리 셋은 다시 그녀를 만났는데 처음엔 누군지 못 알아볼 뻔했다. 성형수술로 코를 세우고, 날씬한 몸매에 입은 옷도 때깔이 벗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화장도 했지만 얼굴의 지도도 많이 사라졌다. 마침내 ������남한 부르즈아 년들������처럼 성형수술까지 따라가나 보다 했는데, 이유는 딴 데 있었다. 얼굴이 알려져선 안 될 사정이 있었다.

며칠 전에 이 여인은 미국 의회 인권청문회에 불려가서 증언하고 돌아왔다. 국내 TV에서도 자주 보는 얼굴들과 찍은 사진들을 보여 주며 그 동안에 일어났던 일들을 전했다.

이 여인의 얘기로 북쪽 나라 슬픈 이야기를 썼던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은, 우리들의 글이 그녀를 세계무대에 올려놓았다고 했는데 물론 그것은 아닐 것이다. 이 나라 문예지는 그런 글을 반기지 않아서 우리가 우리 돈으로 만든 작은 문예지에 냈는데 제대로 읽어 준 사람이 몇이나 있었으랴!

그러나 독자가 한 명이든 만 명이든 문인으로 살아간다는 입장에서 그런 문학활동은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엾게 죽어 가고 있는지, 성경 한 번 본 것 때문에 그녀가 15년형의 기독 간첩으로 죽음의 수순을 밟아야 했던 그곳은 어떤 나라인지,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이런 이야기들은 누가 읽어 주든 말든 우리가 마땅히 써야 할 일이고, 그것은 쓰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


마땅히 해야 할 일 중에는 이런 것도 있을 것이다.

며칠 전 손녀의 일본 수학여행 스케줄을 보니 그 중에 교토의 윤동주 시비 탐방이 들어 있었다. 나는 십여 년 전에 그 시비를 세우려고 무던히 애썼는데, 도시샤 대학 당국이 허락하지 않아서 할 수 없이 등굣길 교포가 사는 집 마당에 세우려 했고, 그것이 거의 성사되었는데 그때서야 대학 당국이 스스로 세우겠다고 나선 것이 지금의 시비다. 나는 그때 윤동주 추모 행사단 50명을 이끌고 후쿠오카형무소 뒤뜰에서 50주기 추모제를 마치고, 다음날 교토로 날아가 시비 제막식에 참가하고, 윤동주 심포지엄도 강당을 빌려서 거기서 열었었다. 이것 역시 한국 문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했던 것이다.

그때는 그 일이 국내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그 시비를 찾아서 수많은 한국인들이 찾아가고 있다. 대학 수위실에선 방문자들을 위해서 윤동주 시비에 관한 홍보 팸플릿까지 비치해 놓고 있다.

한국 전체 중학생 중 반의 반의 반만 그곳을 탐방한다고 해도, 그리고 다른 여행객들까지 합하면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거기 가서 윤동주의 시를 한 줄이라도 읽고 가슴에 새기게 될 것인가? 임진왜란의 귀무덤이 있는 일본 교토에서 만나는 윤동주는 의미가 사뭇 다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결과가 좋을 때도 있지만 이런 결과에 대한 기대만으로 글을 쓰고 행위에 나설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문인은 베스트셀러 작가도 되고, 문학상도 주렁주렁 매달고 죽고 나면 매스컴이 온 세상에 장송곡을 울려 주고 훈장이 추서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죽어서도 신문 한 귀퉁이에 부고 소식 한 줄도 안 나간다.

그렇지만 이런 결과는 그의 문학적 업적과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베스트셀러에다 문화훈장에다 매스컴 스타까지 거의 다 해 봤고, 죽은 뒤의 결과만 아직 못 알아봤지만 확언하건대 문인의 업적과 그런 사회적 보상은 90퍼센트 이상 엉터리 채점인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문인에 대한 사회적 응답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이렇게 광우병처럼 미쳐 가고 있으니까 문인이 정말 자기 역할에 확신과 긍지를 갖는다면 그 따위 사회적 인기와 보상은 무시하고 초연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비로소 진정한 자유인으로서 소신껏 활동이 가능하며 그런 자유인이 아니면 인생 자체가 싸구려가 된다.

한국 문인이라면 결코 외면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역사의 축 속에 문학의 뿌리를 내리는 일이고, 또 하나는 한반도 전체적 문학 공간 속에 뿌리를 내리는 일이다.

북쪽의 눈물겨운 소식들을 온 세상에 알리는 작업은 한반도 전체의 문학 공간 속에 뿌리를 내리는 일이고, 항일이나 친일이나 광복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양심적 비판의식을 갖는 것은 역사의 축 속에서 문학을 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북쪽도 엄연히 우리의 문학적 영토인데도 통일과 민족을 외치는 문인들까지도 북쪽의 한숨과 눈물은 외면한다. 이것은 문학정신의 배신이며, 이렇게 남쪽 동네에만 웅크리고 앉은 한국 문인은 누구도 국제사회에 나가서 자기가 한국 문인을 대표하는 양 까불 권리가 없다.

또 항일 문인이든 친일 문인이든 우리 역사를 잊는 문인은 한국을 말할 자격이 없으므로 한국 문단에 사표를 내야 옳다.

이런 뜻에서 한국 문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기본적 역할을 다한다면 남들이 귀를 막든 말든 그것은 할 일을 다한다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다. 그리고 아무런 사회적 대가도 무시해 버리고 적극적으로 이런 문인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수정처럼 맑은 그 순수성 때문에 더 귀하고 더 당당하고 자기 내면을 살찌게 하는 진정한 훈장이 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광우병 검역처럼 얼렁뚱땅 넘어가는 문학상 심사나 매스컴이 제조하는 인기도나 결국은 모두 빈 껍데기임이 드러나는 것인데 그런 걸 위해 고달프게 원고지를 채우며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 그런 원고 쓰려면 차라리 그 시간에 멀리 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 한 장이라도 쓰는 것이 훨씬 인생을 살찌게 해 줄 것이다.

 

                                               월간문학    2008년 8월호  권두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