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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문화 : 디지털, 그 새로운 문화의 문법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6. 7. 24. 21:31

디지털문화 : 디지털, 그 새로운 문화의 문법
                 -놀이의 재발견, 혹은 디지털 놀이의 즐거움 / 이용욱   
 
I.머리말

디지털이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불과 10년 만에 일어난 이 엄청난 디지털 혁명은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과 인터넷 이용자의 급속한 증가와 맞물려 별다른 충격 없이 우리의 일상을 급속히 변화시키고 있다. 우리나라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은 2005년 12월 기준 25.4%로 아일랜드에 이어 세계 2위이며, 국내 인터넷 이용자 수는 이미 3000만 명을 넘어섰다. 2006년 3월 현재 조사대상 인구 중 74.1%에 해당하는 3010만 명(월 1회 이상 인터넷 사용기준)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1)

네 가구당 한 집씩 초고속 인터넷이 깔려 있고, 국민 10명 중 7명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은 ‘인터넷’이 단순한 매체 그 이상의 영향력을 갖고 있음을 말해준다.2)

인터넷은 그 자체로 엄청난 문화 충격을 우리에게 주었다. 실시간과 쌍방향이라는 소통방식은 인류가 발명해낸 그 어떤 커뮤니케이션 도구보다도 선진적이며, 익명성의 보장을 통해 성별, 연령, 직업 등에 구애없이 누구에게나 자유로운 담론 생산의 기회가 제공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터넷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충격은 문화생산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관여하고 참여함으로써 수동적 문화소비자가 아니라 능동적 문화생산자로 대중을 재구조화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재구조화된 대중(大衆)을 우리는 다중(多衆)이라 명명할 수 있다. 다중은 “특정한 지배 장치에 의해 구조화되기보다는 자신들의 개별 고유성을 소통하면서 공통성을 키워나가는 주체적인 사람들을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획일화되고 매체에 의해 주조되며 수동적인 대중(mass)과는 달리 다중(multitude)은 자신들의 주체적인 욕망과 주장들을 결집해 나가는 무리들을 일컫는 말이다.”3)

네티즌은 디지털 문화가 창조해낸 새로운 시민계급이며 다중이다. 따라서 이들이 창조해내고 있는 디지털 문화 역시 대중적인 시각이 아니라 다중적인 시각에서 해석하고 이해해야 한다. 다중으로서의 네티즌이 새롭게 창조해내고 있는 디지털 문화의 키워드는 ‘놀이’이다.

‘놀이’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접근한 대표적인 학자로 호이징가가 있다. 호이징가(Johan Huizinga 1872-1945)에게 문화는 곧 놀이일 뿐만 아니라, 놀이는 문화를 창조한다. 인간의 문화는 놀이로부터 나왔으며, 또한 ‘놀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견해에 따르면 19세기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놀이로서의 문화’라는 양상은 급격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노동과 생산에 과도한 가치를 부여하게 됨에 따라 문화와 놀이가 분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성과물을 가져다주지 않는 놀이를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단순히 놀기 위한 놀이는 퇴폐적인 것으로 죄악시되기 시작한다. 호이징가는 이후 현대에 있어서도 문명은 놀이적 요소를 점점 상실해가고 있다고 말한다.4)

호이징가가 『호모루덴스』를 저술했을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현대 아날로그 문명이 놀이를 화석화시켰음은 분명하다. 아날로그 문명의 총화인 TV는 ‘놀이’를 함께 참여하여 즐기는 것이 아니라 보고 듣고 대리만족하는 수준으로 격하시켰다. 아날로그식 놀이문화는 보는 즐거움만을 제공함으로써 대중에게서 문화의 창조라는 역할을 제거해버렸다. 대중은 수동적, 정서적, 비합리적 존재로 전락했고 놀이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TV에 의해 쉽게 조작되는 무기력한 이성으로 집단화되었다.

그러나 정보화 혁명을 통해 새롭게 등장한 디지털은 우리에게 놀이의 주체로서의 권리를 다시 되돌려 주었다. 인터넷은 거대한 놀이판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시간과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으며, 일상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진정한 놀이터이다. 인터넷에서 우리가 뛰어놀기 시작한 지 10년이 되었고, 전 국민의 70% 이상이 그 공간에서 놀고 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새로운 문화가 창조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네티즌들은 놀이를 통해 그들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창조하고 있으며, ‘디지털 문화’라 일컬을 수 있는 이 새로운 문화는 아날로그식 문화와는 다른 독특한 문법을 가지고 있다.5)

II. 디지털 시대의 신인류-디지털 유목민

최근에 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발표한 2005년 하반기 정보화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만 6세 이상 국민 가운데 71.6%가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연령별 인터넷 이용률을 살펴보면 30대의 91.0%, 50대의 35.7%가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 이는 2000년에 비해 각각 2.6배, 6.3배가 증가한 것으로 우리 국민의 인터넷 이용률이 불과 5년 사이에 큰 폭으로 성장하였음을 보여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우리나라 만 3-5세 유아 47.9%, 이 가운데 만5세의 64.3%가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6) 이 조사에서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컴퓨터와 인터넷이 친숙한 2-30대와는 달리 세대적인 거리를 느낄 수밖에 없는 50대의 인터넷 이용률이 30대의 이용 증가율보다 3배가량 더 높다는 결과와 만 5세 아동의 절반 이상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통계만 보더라도 이제 인터넷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일상공간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터넷이 놀이의 공간으로서의 일상성을 획득함으로써 생성된 디지털 문화의 문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티즌과 구분하여 인터넷의 새로운 시민계급을 지칭하는 ‘네티즌’의 의식 성향을 파악하여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신인류라 할 수 있는 네티즌의 행동패턴은 아이러니하게도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행동양식인 유목문화와 맞닿아 있다. 네티즌을 ‘디지털 유목민’이라 칭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양한 정보를 다양한 시간에 능동적으로 요구하는 특정인에게 전송시키는 쌍방향 대중매체인 인터넷의 등장으로 탄생한 디지털 유목민은 대중과는 달리 적극적이며 자기중심적이다. 대중은 문화를 선택할 권리가 없으므로 자본에 의해 조작된 권위에 의지하지만, 디지털 유목민은 클릭의 권리를 최대한 활용하여 문화 아이콘을 선택하는데, 이때 선택의 기준은 기존의 권위보다는 자기 판단을 우선한다. 구성원을 조직하는 무형의 수준에 있어 집단은 전체집합이지만 커뮤니티는 부분집합이다. 따라서 디지털 유목민의 소속감은 그가 자의로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를 떠나지 않는 한, 집단 속의 익명의 존재인 대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디지털 유목민이 커뮤니티에 속해 있을 때 그는 그곳에서만 유효한 아이디를 갖게 되는데, 대중이 집단 안에서 스스로의 이름을 지우는 반면에 디지털 유목민은 커뮤니티 안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각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문화생산자의 지위에 위치시킨다.

디지털 유목민의 특성은 먼저 끊임없이 이동한다는 것이다. 이때 이동은 공간에서 공간으로의 웹서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의 이동까지도 포함한다. 먼 옛날 유목민은 살아본 적 없는 땅을 헤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폐허의 장소에서도 가능할 수 있는 삶의 형태를 찾은 것이다. 유목민은 성을 쌓기보다 길을 닦아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생존 방식이었다. 7)디지털 유목민 역시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느 순간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와 관심사에 놀라울 정도로 집중하지만 그것에 흥미를 잃으면 미련없이 다른 곳으로 관심을 옮긴다. 얼마전 문화현상으로까지 분석되었던 ‘폐인 신드롬’은 디지털 유목민들의 결속력과 순간집중력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8) 정착이나 안주보다 방랑을 선택하는 디지털 유목민의 이동성향은 인터넷 소설의 유행주기가 현실 공간의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다는 것으로 확인된다. 정착민들과 달리 유목민들에게 속도는 효율이자 생명이었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전쟁과 싸움을 벌여야 했던 이들에게 속도는 가장 큰 경쟁력이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정보들이 생산되고 또 소멸되는 인터넷에서 정보검색의 유용성은 속도에 의해 판가름난다. 디지털 유목민의 수시이동성향은 그 무의식적 기저에 속도에 대한 강박관념이 깔려 있다.

디지털 유목민의 두 번째 특징은 강한 내부결속력과 배타성이다. 인터넷은 그 자체로 거대한 커뮤니티 공간이며, 동시에 무수히 많은 커뮤니티의 집합체이다. 커뮤니티는 구성원들이 약속으로 정한 동일한 무언가(그것은 취향이나 성향이 될 수도 있고, 경험이나 기억이 될 수도 있다)를 공유하는 공동체이다. 국가나 가족, 학교 같은 현실공간의 공동체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타자에 의해 가입했거나 가입해야 하는 데 비해 인터넷 커뮤니티는 철저하게 본인의 의사를 존중한다. 따라서 어떤 커뮤니티에 가입했다는 것은, 그것이 비록 일시적일지는 모르지만, 자의적인 판단의 결과이며 커뮤니티의 규약을 따르기로 스스로 약속한 것이다. 디지털 유목민은 자신과 무언가를 공유하는 사람들과는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지만 동일한 차원에서 자신과 다른 것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는 심한 적대감을 드러낸다.9)

마지막으로 디지털 유목민은 소비자보다는 생산자라는 마인드가 강하다. 대중이란 용어 안에는 개별성이나 타자성이 전혀 개입해 들어가지 못하며, 불특정 다수를 지칭하는 복수형이다. 대중은 사회구성원 전체이며 문화의 수동적인 소비자이다. 그러나 디지털 유목민이란 용어는 그 자체가 개별자이다. 유목민은 집단을 지시하는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단수형으로 읽힌다. 농경정착사회의 시민들은 분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역할분담을 터득했다. 농사꾼은 농사를 지었고 상인은 물건을 팔았다. 미장이는 집을 지었고 이발사는 머리를 깎았다. 그들은 각자 자신이 맡은 영역 안에서 생산자였지만 사회라는 거대한 집단 안에서 자연스럽게 융화되기 위해서는 여타 영역의 소비를 일상화하여야만 했다. 그러나 정착생활을 할 수 없었던 유목민들은 분업보다는 협업체제를 선택하였다. 그들은 집단이 요구하는 모든 수준의 노동을 함께하였고 부여된 노동의 생산자로 스스로를 인식했다. 인터넷 역시 분업보다는 협업의 공간이다. 개인의 정보들이 모여 거대한 정보의 바다를 형성하였고, 그 안에서 디지털 유목민들은 웹서핑과 검색을 통해 자신만의 정보를 재창조해낸다. 정보를 검색하는 데 있어 네티즌들은 결코 자신이 기존의 정보를 소비하고 있다고 인식하지 않는다. 정보를 찾아내고 그것을 배열하고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가공하는 일련의 행위를 그들은 새로운 정보의 생산이라고 믿는다.10)

‘끊임없는 이동’과 ‘강한 결속력’, ‘완강한 배타성’, ‘생산자 마인드’로 목록화할 수 있는 네티즌의 의식성향은 그들이 생산해내는 문화를 해석하는 데 유효한 키워드로 작용한다.

III. 디지털문화의 새로운 문법

디지털문화가 유목문화와 겹쳐지고, 네티즌들이 디지털 유목민이라는 사실은 그들의 놀이문화가 ‘약탈’과 ‘정복’의 메커니즘을 갖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인터넷문화인 ‘펌’은 약탈의 속성을 세련된 방식으로 내면화하고 있다. ‘펌(퍼나르기)’은 다른 장소에 있던 정보를 자신이 원하는 장소로 옮겨가는 것을 일컫는 인터넷 용어이다. 해당 정보가 충분히 옮길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었을 때 퍼나르기가 행해지는데 이때 그 정보의 저작권은 전혀 보호받지 못한다. 이는 네티즌들의 저작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이 약탈을 놀이로 생각하는 유목민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인터넷 문화인 ‘드라마 폐인’은 ‘정복’의 속성을 강하게 갖고 있다. 한 드라마가 인기를 얻게 되면 방송국 홈페이지에 개설된 해당 게시판은 삽시간에 폐인들에 의해 정복된다. 그들은 그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그 게시판에 상주하며 마치 그 드라마의 주인인 양 행세한다. 배우의 연기에 대해 품평하고 간섭하며, 작가에게 드라마의 내용을 바꾸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관철되지 않을 때는 동료 폐인들과의 강한 연대감을 바탕으로 집단행동도 불사한다. 동일한 시간대에 방영되는 다른 드라마에 대해서는 지극히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며 드라마 종영이 가까워올수록 광기에 가까운 아낌없는 애정을 그들이 정복한 게시판에 쏟아붓는다. 그러나 드라마가 종영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정복의 대상이 사라졌기에 그들은 다시 새로운 정복지를 찾아 나설 것이다.

‘약탈’과 ‘정복’이 디지털 문화의 놀이 메커니즘이라면, 이것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 문화의 문법은 놀이의 양상에 따라 다음과 같이 범주화된다.

1. 커뮤니티:놀이로서의 일상, 일상으로서의 놀이

커뮤니티는 인터넷 문화의 핵심이다. 매체가 사람과 사람을 소통시켜 주는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상기해보면 커뮤니티 기능을 빼놓고 인터넷을 이해할 수는 없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다음카페와 같은 집단형 커뮤니티이다. 여기서 ‘카페’란 동호회와 같은 개념으로, 같은 취미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만나 정보를 공유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곳이다. 다음카페는 인터넷 전체 이용자의 75%가 이용하는 한메일 서비스를 기반으로 급속하게 발전하여 2005년 10월 기준으로 약 46만 개의 카페가 개설되어 있다. 두 번째는 싸이월드로 대표되는 개인형 커뮤니티이다. 표준화, 공개화, 범주화되어 있는 다음카페와는 달리 싸이월드는 미니홈피라는 독특한 인터페이스를 제공하여 개성화, 인맥화, 일상화를 커뮤니티에 접목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하는 젊은 세대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마지막으로 네이버 블로그 같은 혼합형 커뮤니티이다. 혼합형 커뮤니티는 집단형과 개인형의 장점을 수용한 것으로 친목보다는 정보 교환이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는 집단형 커뮤니티와 유사하지만, 정보 수집의 책임과 공개의 권한이 개인에게 주어진다는 점에서는 개인형 커뮤니티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자발적’ ‘임의적’ ‘비면대면’ 커뮤니티라는 점에서 현실 공간의 커뮤니티와 다르다. 바로 여기에 인터넷 커뮤니티가 놀이로서 갖는 문화적 의미가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그것이 집단형이든 개인형이든 간에 그 중심에 개별적 주체인 ‘나’가 위치해 있다. 호이징가는 놀이는 엄격한 규칙성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집단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놀이에 해당한다. 집단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집단이 이미 만들어놓은 규칙을 존중할 의무가 있지만 ‘나’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커뮤니티는 개인적인 선택과 판단이 중요할 뿐 이미 만들어진 규칙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11) 디지털 문화는 생래적으로 규칙을 거부하고 자유의지를 우선시한다. 현실공간의 커뮤니티가 전경화하고 있는 ‘사회성’이 감소하는 대신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 기초한 ‘개인주의’가 확장됨으로써 인터넷 커뮤니티가 보여주는 상호작용은 집단의 놀이가 아니라 개인의 놀이로 전도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은 일상이지만 그것이 어떠한 책임과 의무도 동반하지 않는다면 아주 순수한 의미에서 놀이가 된다. 남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즐거워야 하는 것이 놀이의 제 1 원칙이라면,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나만의 즐거움을 위해 존재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는 그 자체로 이미 놀이이다. 즐겁기 위해 가입하고 재미없으면 언제든 탈퇴할 수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는 놀이를 일상화시키면서 동시에 일상마저도 놀이화하고 있는 디지털 유목민들의 즐거운 놀이터인 것이다.

2. 온라인 게임:체험과 몰입의 서사

인터넷 커뮤니티가 친목도모와 정보교환의 수단이라면, 온라인 게임은 커뮤니티에서 공익성을 제거한 오직 즐거움만을 위한 가상 공동체이다. 우리 나라 온라인 게임의 수준과 열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2005년에 이르러 온라인 게임은 이제 단순한 놀이를 넘어 대학생의 문화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더 나아가 어린 청소년층과 중장년층에게도 새로운 여가문화로서 서서히 그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사이버 올림픽을 지향하는 E-Sports 세계대회 WCG(World Cyber Games)는 이미 세계 70여 개국에서 2천만 명 이상이 예선에 참가할 정도로 그 위상이 높아졌으며, 국내에서는 연간 140여 개의 게이머대회가 개최되고 그 상금 규모만도 40억 원에 이르고 있다. 프로게임단과 프로게임리그가 생겨났으며, 억대 연봉을 받으며 수십만에 이르는 팬클럽을 보유한 프로게이머도 탄생했다.12)

디지털 문화가 창조해낸 새로운 서사 양식이라는 점에서 온라인 게임은 단순한 게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온라인 게임 서사의 서사 경험은 ‘하기doing’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하기’는 체험의 선행 조건이다. 체험을 통해 이루어지기에 온라인 게임 서사가 만들어내는 세계는 문학이 재현하고 있는 세계와는 분명하게 다른 양상을 보인다. 허구의 세계이지만 실재 세계처럼 인식되며, 실재 ‘나’와 게임 캐릭터 ‘나’ 사이에 의식적 거리가 존재하지 않으며, 게임 플레이어 ‘나’는 스스로 서사를 만들어 나가면서 실시간으로 그것을 따라가야 하는 작가인 동시에 독자이다.

잘 꾸며낸 이야기는 우리에게 우리 바깥의 어떤 것을 제공해주고(왜냐하면 이것은 우리 아닌 어떤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우리의 감정을 투사한다. 이러한 강력한 몰입의 경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우리는 내적으로 하나의 역설적인 일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가상세계라는 것은 ‘거기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실재한다’고 우리는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상세계를 현실과 가상 어느 한쪽으로 붕괴되지 않게 하면서, 동시에 몰입의 경계선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유지해야 할 것이다. 몰입의 경계란 본질적으로 너무도 쉽게 허물어질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서사 예술 형식은 끊임없이 그것을 지속시키기 위한 방법을 발달시켜 왔다. 그러한 방법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참여를 금지시키는 일이다.13)

전통적인 서사에서는 몰입은 허용하지만 독자가 텍스트의 흐름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시켰기에 스토리-시간과 텍스트-시간이 구분될 수 있었다. 그러나 게임 서사는 행동을 통한 직접적인 참여를 통해 몰입을 극대화시키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스토리-시간과 행위-시간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었고, 이같은 중첩은 결과적으로 현실과 가상의 경계선조차 모호하게 만들었다. 게임 서사에서 우리가 몰입의 경계선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현실과 가상, 실재와 허구를 혼동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의 서사 문법은 ‘체험’과 ‘몰입’을 통해 완성된다. 체험과 몰입이 놀이를 완성하는 필요충분 조건이라면 디지털 문화는 우리에게 인류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놀이문화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3. 글쓰기 : 노출과 관음의 시학

인터넷 공간은 그 자체로 글을 쓰고 읽는 거대한 게시판이다. 당연히 글을 쓰는 작가와 글을 읽는 독자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존재방식이 디지털문화와 연결되면 엄숙함과 진지함은 사라지고 재미난 놀이로 변주된다. 작가와 독자, 쓰는 것과 읽는 행위의 근본적 차이에 대해 프랑스 철학자 미셸 드 세르토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작가는 자신의 공간을 만드는 창설자이며, 언어의 땅을 경작하는 옛 농부의 상속인이며, 우물을 파는 사람이며, 집 짓는 목수다… 독자는 여행객이다. 남의 땅을 이곳 저곳 돌아다니고 자기가 쓰지 않은 들판을 가로질러 다니며 밀렵하고, 이집트의 재산을 약탈하여 향유하는 유목민이다.”14) 정착민과 유목민으로 작가와 독자를 명쾌하게 구분한 미셸 드 세르토의 지적은 그러나 모든 시민계급이 유목민인 인터넷 공간에서는 지시력이 모호해진다.

누구나 약탈자인 공간에서는 생산자 역시 약탈자 중에서 탄생한다. 약탈을 통해 창조적 영감을 얻고 그것을 글쓰기로 연결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작가와 독자의 정체성은 훼손되거나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엄숙함과 진지함 대신에 오히려 글쓰기와 글읽기 과정에 관여하는 것은 ‘노출’과 ‘관음’의 심리학이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노출의 욕망은 인터넷의 익명성과 비대면성에 힘입어 폭발적으로 활성화된다. 특히 인터넷 글쓰기에서 창작의 가장 큰 동인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읽히고 싶어하는 욕망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치고 싶어 안달했던 대중들은 그러나 현실공간에서는 뒷동산 대나무숲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였다. 인터넷은 바로 그 뒷동산 대나무숲처럼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바람처럼 들려준다.

관음은 약탈의 메커니즘과 연관된다. 자신이 갖고있지 못한 무언가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네티즌들은 경이와 질시의 이중적 감정에 휩싸인다. 이중적 감정의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그것을 약탈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펌’을 통해 네티즌들은 독자에서 순식간에 작가가 될 수 있다.

인터넷 글쓰기와 글읽기가 비록 부정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나 ‘글文’에 대한 우리의 기대지평에서 진지함과 엄숙함을 삭감시키고 그 자리를 재미있는 놀이로 대체한다면 그 순간 인터넷 글쓰기는 아주 유쾌한 재미를 제공해줄 수 있다. 우리가 언제 이토록 신나고 역동적인 글쓰기와 글읽기를 경험했던 적인 있었던가를 생각해본다면 글이 놀이의 자리로 옮겨간다 해서 그리 우려할 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IV. 맺음말

디지털 문화는 단언컨대 놀이의 문화이다. 유목민들에 의해 신나게 놀고 즐기면서 만들어지고 있는 인터넷 문화는 그래서 기왕의 시선으로 보면 불편하고 낯설 수도 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우리가 점차 잊고 있었던 진정한 놀이의 즐거움을 디지털로 복원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타율적, 지배적, 면대면 커뮤니티의 엄격함과 의무적으로 부여되는 책임감에서 잠시 벗어나 일탈의 즐거움을 제공해주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느슨함, 그 어떤 놀이문화도 제공해주지 못했던 완벽한 몰입과 체험의 서사인 온라인 게임의 오락성, 엄숙주의와 진지함에서 벗어나 욕망에 충실한 인터넷 글쓰기의 가벼움은 디지털 유목민들이 누릴 수 있는 문화적 특권이 아닌가.

지금 우리는 인터넷에서 ‘놀이’의 ‘즐거움’을 ‘재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 筆者 : 문학평론가  이용욱 | 전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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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디지털타임즈」 4월 21일자 기사 참조
2) 물론 TV가 인터넷보다 더 많이 보급되었고 더 대중적이지만 문화의 생산과 소비가 시간     의 거리를 두고 일방향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실시간’ ‘쌍방향’의 소통매체인 인터넷     에 비해 매체로서의 파괴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3) 안토니오 네그리, 네그리 하트 공저, 윤종수 역,「제국」(이학사, 2001) 재인용
4) J. 호이징가 지음, 김윤수 옮김, 호모루덴스, 까치, 1989.
5) 이 글은 ‘연감’의 성격을 갖기에 10년 동안 진행되어 온 디지털 문화를 다루기에는 적절     치 않다. 따라서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약 일년 동안의 디지털 문화 현상만을 대상으     로 삼고자 한다.

6) 한국인터넷진흥원 홈페이지 참조(http://www.nida.or.kr/)

7) 김종래, 「유목민 이야기」, 지우출판, 2002. (부분 인용)

8) KBS 수목드라마 ‘굿바이 솔로’가 드라마 폐인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인터넷 매체에서 떠    들고 있지만 그들은 드라마가 방영될 때까지만 폐인일 뿐이다. ‘굿바이 솔로’가 종영되면    폐인들은 다시 다른 드라마로 그들의 관심을 이동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9) 일개 변방의 유목민족에 불과했던 몽골인들이 전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을 수 있었던 것     도, 훈족이 그들보다 월등한 문명을 자랑했던 로마제국을 위협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유목민족 특유의 강한 결속력 덕분이었다.

10)졸고,「인터넷 소설의 문학적 성격」, 내러티브 제8호, 한국서사학회, 2004.(부분 인용)

11)다음에 개설돼 있는 카페의 경우 규모가 큰 곳은 회원수가 2-30만이 넘기도 한다. 그러     나 그 중 실제 게시판을 통해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하는 회원은 1%도 되지 않는다. 나     머지 99%는 가입만 했을 뿐 전혀 활동하지 않는 유령회원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가입 조건이 까다롭지 않을 뿐 아니라 회원으로서의 의무를 강제하는     규칙이 회원들에게 무시 되거나 아예 없기 때문이다.

12)http://blog.naver.com/speedtax?Redirect=Log&logNo=60011268162

13)자넷 머레이 저, 한용환 외 공역,「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안그라픽스, 2001,             pp.114-115.

14)한국일보 문화면, 2006년 4월 7일자 기사 부분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