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대한민국 만든 보물들… 현대사 특별전, 45일 만에 13만명 관람
10대부터 80대까지 인기… 가족 단위 관람객이 60%
“이 사람은 홍수환 아냐? 세계 챔피언이야! 권투선수.”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앞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전시실. 홍수환 선수의 챔피언 벨트 앞에서 관람객 배영기(64·경기 안양)씨가 두 자녀 앞에서 신이 난 듯 설명해 줬다. 당시 경기 장면을 상영하는 흑백 TV를 만져보며 “이렇게 채널을 돌리는 거야”라고 하자 30대 직장인인 배씨의 아들과 딸은 어머니의 말을 듣고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배씨는 “내가 커 온 과정이 담겨 있는 전시물을 보고 그 시대의 추억에 젖었다”고 했다.
이 전시는 지난해 12월 5일 개막해 중반을 넘긴 ‘나의 보물, 우리의 현대사’ 특별전. 대한민국 명사 60명의 실물 소장품을 통해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되짚어 보는 취지의 전시로, 본지에 2023년 4월부터 1년 반 동안 연재된 시리즈 기사 ‘나의 현대사 보물’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지난 21일까지 한달 반 동안 이 특별전을 관람한 인원은 모두 13만8792명에 이른다. 박물관 측은 “평소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찾는 인원보다 15~20% 늘어난 숫자”라고 밝혔다. 좋지 않은 시국에, 늘 시위가 벌어지는 광화문 앞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많은 인원이라고 했다.
관람객의 연령은 10대부터 80대까지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 가족 단위로 찾는 사람이 전체의 60%가 넘는 것도 특이한 상황이다. 3대가 함께 박물관을 찾은 경우도 많았다. 한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건물 바깥과는 달리 전시 공간이 무척 평화롭다는 걸 보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신다”며 “지금 우리나라가 힘든 상황이지만, 이렇게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이뤄 놓은 저력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위안을 얻는다는 분이 많다”고 했다.
관객의 반응은 연령에 따라 조금 달랐다. 장년층은 대체로 곳곳에서 감회 어린 표정을 지었고, 때론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도 있었다. 젊은 관객들은 주로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반응이었다. 고교생 오성현(17·인천 서구)군은 “20세기에 대해 막연하게 경직된 사회였을 것이라 짐작했는데, 그때도 문화계가 활발하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방송작가 이환경씨의 드라마 ‘야인시대’ 대본 옆 벽에 쓰인 ‘좋다, 4딸라’라는 대사를 보고선 “이거 아직도 유명한 말이잖아!”라며 반가워하는 20대 커플도 눈에 띄었다.
권기준 학예사는 “관람객이 특히 흥미 있게 봤다는 전시물이 몇 가지 있었다”고 했다. ‘어머니의 방명록’은 신달자 시인의 어머니가 20일 동안 한글 글자를 외운 뒤 딸의 첫 시집 출판기념회에 찾아와 쓴 것으로 ‘일생의 잇지(잊지) 못할 날일세, 엄마에 깁뿜(기쁨)이다’란 글씨가 잔잔한 감동을 줬다는 것이다. 가수 양희은의 ‘아침이슬’ 음반과 청바지, 양정모 선수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획득한 대한민국 첫 올림픽 금메달, 이길여 가천대 총장이 1960년대 산부인과 의사 시절 사용한 청진기, 허정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의 사인을 모아 소장한 축구공 등도 큰 관심을 끌었다.
관람객은 “광복과 함께 되찾은 우리말 코너, 정신적 가치를 일깨워주셔서 감사하다”(75세 남성) “평범한 사람들의 일기가 역사가 되는 걸 알 수 있었다”(40대 여성) “이렇게 잘 기획된 전시라는 걸 미처 몰랐다”(19세 여성)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시는 다음 달 16일까지 계속된다. 설날(29일) 당일만 휴관한다.
☞‘나의 보물, 우리의 현대사’ 특별전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가수 남진, 소설가 이문열 등 명사 60명의 실물 소장품 등을 통해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재구성한 전시다. 본지에 2023년 4월 18일부터 65회 연재된 ‘나의 현대사 보물’ 기획 기사를 바탕으로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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