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36㎞ ‘느린 열차’ 타고… ‘아련했던 추억’이 돌아왔다
[박경일기자의 여행]
- 문화일보
- 입력 2025-01-16 09:42
의정부역을 출발해 송추역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교외선 열차. 레트로 느낌으로 도색한 디젤기관차가 2량의 열차를 끈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의정부 ~ 고양… 21년만에 다시 달리는 교외선 (2)
재운행 첫날 첫차부터 ‘만석’
기관·발전차 3량에 객차 2량
출퇴근 시간대에 주로 배치돼
수요 늘면 낮 시간대 운행 확대
이번 개통엔 디젤기관차 도입
30.3㎞ 거리 50분 걸쳐 주행
번듯한 驛舍 ‘일영역’이 유일
BTS의 ‘봄날’ 뮤비 등장 영향
장흥역 주변 명소 ‘토탈미술관’
국내 최초의 사설미술관 명성
국내 피자집의 효시격 ‘효인방’
그 옆 청암민속박물관도 볼만
고양·양주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 재운행 첫날 첫차의 좌석은 매진
좌석승차권 매진. 재운행 첫날인 지난 11일 교외선 첫차는 만석이었다. 2량뿐인 객차 좌석은 금방 찼다. 입석 손님까지 가득 태우고서야 열차는 출발했다. 교외선 열차는 5량 편성으로 운행한다. 앞뒤로 기관차 2량에 발전차가 1량. 나머지 2량이 객차다. 동력에 소용되는 차량이 3량인데, 승객이 타는 객차가 2량이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이제 막 재운행을 시작한 교외선은 차량 편성이나 운행 간격 등에서 여러모로 ‘수비’ 태세다. 기대대로 수도권 교통을 분담할 수 있을 거란 전망이 썩 밝지 않아서다. 21년 만에 다시 운행을 시작한 단선 구간의 ‘저속’ 열차는 과연 지속가능 할만큼의 수요를 끌어들일 수 있을까. 교외선 열차 재운행을 ‘추억 열차의 귀환’이라며 여론은 반겼지만, 실제 타보니 살아난 건 ‘추억 열차’가 아니라 ‘통근 열차’였다.
재운행을 시작한 교외선이 전적으로 기대고 있는 건 ‘출퇴근 직장인’이다. 열차 운행 시간을 보면 그게 쉽게 읽힌다. 교외선 열차는 하루 편도 각 4회씩 총 8회 운행한다. 한쪽 끝 대곡역에서 4번 출발하고, 반대쪽 끝 의정부역에서 4번 출발한다는 얘기다. 그 4번이 다 출퇴근 시간에 맞춰졌다. 출근 시간(오전 6시와 7시대)에 2번, 그리고 퇴근 시간(오후 6시대와 7시대)에 2번이다. 수요를 봐서 점차 운행횟수를 늘려 낮 시간대에도 운행하겠다는 게 한국철도공사의 설명이다. 관광과 추억의 수요가 증명되면 더 늘릴 수 있다는 얘기. 그 전까지는 당분간 교외선 열차로 추억여행을 다녀오겠다면 ‘출퇴근하듯’ 다녀오는 수밖에 없겠다.
# 교외선 끌던 증기기관차의 퇴역
사실 교외선의 변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교외선이 승객 감소로 쇠퇴하기 시작하자 1994년에는 아예 작심하고 ‘레트로’로 밀어붙였다. 시대극에나 나올 법한 증기기관차를 중국에서 수입해 교외선에 투입했던 것. 한 세대 전쯤인 1967년에 국내에서 완전히 퇴역한 증기기관차를, 관광목적으로 중국에서 들여와서 다시 운행을 시작한 것이다. 식당차를 ‘결혼예식 전용객차’로 개조해 교외선에 매달고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별 소용이 없었다. 처음에는 반짝 승객이 늘었으나 불과 두 달 만에 승객이 격감했다. 경의선 일대의 관광지들이 쇠락을 거듭하면서 결국 증기기관차는 멈춰 섰다. 중국 창춘(長春) 조차장에서 만든 증기기관차 901호는 불과 6년 만인 2000년 퇴역해 경북선 점촌역 철도체험 학습장에 전시되는 신세가 됐다. 체험 학습장이 문을 닫자 증기기관차는 점촌역에서 다시 풍기역으로 옮겨졌다. 지금 증기기관차 901호는 풍기역 한쪽 구석에서 붉게 녹슨 채 방치돼 ‘고철 덩어리’가 돼가고 있다.
녹슬어가는 증기기관차는 다시 운행을 시작한 교외선의 도전이 쉽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과연 교외선은 운행을 계속할 수 있을까. 과거의 전성기 시절만큼은 아니더라도, 추억을 실어나르는 선로로 남을 수 있을까.
# 아직 남아있는 철길 건널목
교외선은 근래 개통한 다른 노선의 철도와는 여러모로 다르다. 가장 크게 다른 건 전철 구간이 아니라는 것. 교외선 열차는 디젤기관차가 끈다. 주로 화물운송 등에 쓰이던 기관차다. 교외선 운행에 맞춰 기관차에는 레트로 느낌의 색과 문양을 입혔다. 선로가 단선(單線)이라는 것도 다른 철도와는 다른 점이다. 단선 철로란 레일 하나를 상하행선이 같이 쓴다는 의미. 하나의 철로로 이쪽과 저쪽에서 출발해서 딱 중간인 송추역에서 교행한다. 송추역에 먼저 도착한 열차가 맞은 편에서 오는 열차를 기다렸다가 두 가닥으로 만든 선로 구간에서 비켜 운행한다.
속도가 ‘느리다’는 것도 교외선의 다른 점이다. 시속 250㎞를 넘나드는 KTX나 도심구간을 시속 180㎞로 달리는 GTX 노선에 대면, 교외선 디젤기관차는 그야말로 하품 나는 수준이다. 교외선의 설계속도는 시속 70㎞. 그런데 영업 거리 30.3㎞를 50분에 걸쳐 달리니 시속을 구하면 설계속도의 절반쯤인 시속 36㎞다. 물론 역에 정차하는 시간을 뺀 것이니, 실제 운행 중에는 이것보다 빠르긴 하다. 교외선이 특별한 점 또 하나는 기차가 ‘땅에 붙어서’ 달린다는 점이다. 근래 새로 놓는 철로는 대개 고가도로처럼 높여 짓는다. 토지보상비 절감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안전 때문이다. 이렇게 지으면 철길 건널목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교외선은 전 구간을 예전의 선로로 다닌다. 요란한 종소리와 함께 차단기 내려오는 열차 건널목이 교외선에는 아직 남아있는 이유다.
교외선 장흥역 앞의 벽화. 지난 2011년 진행된 미술프로젝트의 흔적이다.
# 달라진 것과 달라지지 않은 것
교외선 대곡역이나 의정부역 주변은 ‘상전벽해’라 할 수 있겠고, 송추역도 기차역에 딱 붙어서 24층짜리 고층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격세지감이다. 하지만 이런 몇 곳을 빼면 교외선 선로 주변은 예나 지금이나 농촌도, 도시도 아닌 개발 지체의 어정쩡한 풍경이다. 기찻길 주변 풍경이 과거와 그리 다르지 않은 건, 경기 북부지역이 그린벨트와 군사보호지역, 수도권정비계획법 등의 이중삼중 규제에 포위돼 있기 때문이다.
교외선에서 과거와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역(驛)이다. 출발·도착지 역인 대곡역과 의정부역을 빼면 번듯한 역사가 있는 기차역은 일영역이 유일하다.
일영역은 옛 기차역의 뼈대를 그대로 두고, 전체적으로 ‘다시 짓는 수준’으로 리뉴얼중이다. 역 안에다 옛 기차 여행을 추억할 수 있는 자그마한 박물관과 사이다, 계란 등 옛 열차 간식을 판매하는 카페도 들여놓을 예정이다.
송추역이며 장흥역 등 다른 교외선 역은 역사가 없다. 승객을 위한 시설이라고는 그냥 투명유리로 마감한 대합실 하나가 전부다. 역사도, 개찰구도 없다. 예전의 기차역 감성은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으니 기대하지 말 것.
일영역을 ‘특별대접’하는 건 전적으로 방탄소년단(BTS)의 영향 때문이다. BTS의 뮤직비디오 ‘봄날’에 일영역이 나온다. 첫 장면에서 일영역의 빛바랜 표지판을 배경으로 털모자를 쓴 BTS 멤버 뷔가 등장한다. 유튜브 조회 수는 자그마치 5억4000만 회. 뮤직비디오가 나오자마자 한적한 시골 폐역에 BTS 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리뉴얼 후에도 일영역 플랫폼이 뮤직비디오에 나온 그 모습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 건 BTS의 힘이다. 일영역은 아직 공사 중이다. 공사 시작이 늦어지는 바람에 오는 3월쯤 완공한다.
# 송추·일영계곡의 상전벽해
이제 교외선 열차가 서는 역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자. 그 시절 주말이나 휴일 교외선은 나들이객으로 붐볐다. 교외선 열차를 타고 갔던 곳은 주로 계곡과 유원지였다.
당시 계곡과 유원지에는 바가지요금이 횡행했다. 무단 점유한 상인들이 천막 아래 돗자리를 깔고 자릿세까지 뜯었다. 계곡마다 무법천지의 상혼이 극성을 부렸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서민들은 이런 곳에서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시절에는 ‘있는 집’이나 ‘없는 집’이나 비슷비슷한 곳을 다녔다.
대곡역에서 출발한 교외선 열차는 유원지로 이름났던 일영역과 장흥역, 송추역을 순서대로 지난다. 먼저 일영역. 역 바로 옆 건물 2층에 ‘구파발쯤은 나가야 있던’ 다방이 있었는데, 건물 전체가 사라지고 없다. 역 앞에는 퇴락해 곧 쓰러질 것 같은 집들이 저희끼리 의지하고 서 있다. 교외선 열차가 북적이던 시절에는 ‘목 좋은 가게’였는데, 간판을 걸었던 자리만 희미하다. 추억보다 안쓰러운 마음이 훨씬 앞선다.
일영역 주변에는 물놀이하기 좋은 유원지가 많았다. 도봉산 계곡 물이 송추를 지나면서 공릉천이 돼서 일영역 주변으로 흘러내렸다. 일영유원지는 ‘계곡’이라기보다는 ‘천변’에 가까웠다.
여름이면 천변을 따라 계곡을 마치 제 것처럼 불법점유한 무허가 음식점들로 가득했다. 그러던 것이 2019년 강제 철거로 계곡 주변이 말끔히 정리됐다. 지금 일영계곡에는 허가받은 말끔한 펜션이나 ‘가든’ 이름을 단 음식점이 계곡을 따라 띄엄띄엄 들어서 있다. 산중 계곡이었던 송추계곡은 더하다. 아예 어디가 어딘지 모를 정도. 자릿세 내던 시절의 정취가 더 좋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드는 건, 순전히 그게 ‘젊은 시절의 추억’이기 때문이다. 불법 업소의 자릿세 갈취와 바가지 횡포가 뭐 그리 좋았다고….
아직도 일영유원지에서 물놀이를 즐길 수 있을까. 그만큼 계곡 물이 깨끗할까. 이 질문에 일영유원지 맞은편의 ‘카페 다시올’의 주인이 답했다. “그때보다 물이 깨끗합니다. 압축성장의 시절에는 환경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오염문제를 해결할 여력도 없었지요. 30∼40년 전이 역사적으로 가장 환경오염이 심했던 시기였을 겁니다.” 계곡이 정비되면서 오염원이 사라진 지금 계곡 물이 그때보다 훨씬 더 깨끗하다는 설명이었다.
# 장흥에는 토탈미술관이 있었다
장흥역으로 간다. 장흥역 바로 앞에는 특이한 폐건물이 있다. 허물어져 가는 집과 건물에 ‘도깨비꽁방’이니 ‘장수사진관’이니 하는 간판이 걸려있다. 2011년 미술로 도시재생을 시도했던 공공미술프로젝트 ‘장흥 오라이’의 흔적이다.
이 프로젝트는 미술가들이 지역주민과의 소통을 통해 지역의 가치를 발견하고 지키겠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프로젝트의 결과는 보는 바와 같다. 건물은 쓰러져가고 있고, 내부는 쓰레기 처리장을 방불케 한다. 흉물도 이런 흉물이 없다. 여기 쏟아부었을 적지 않은 예산을 생각하면 입맛이 쓰다.
억지로 되살리지 않아도, 장흥에는 그 시절의 공간을 이어오는 곳이 있다. 가장 먼저 꼽을 곳이 ‘토탈미술관’이다. 교외선 장흥역을 명실상부한 ‘문화의 명소’로 자리매김해준 곳이 여기였다. 1984년 장흥에 문을 연 토탈미술관은 국내 최초의 사설미술관이었다. 문화소비 시장이 일천했던 40여 년 전에 민간이 자기 돈으로 미술관을 차렸다.
토탈미술관은 야외조각공원 형태의 미술관이었다. 자연과 조각작품이 근사하게 어우러졌다. 가장 아름다웠던 때는 가을이었다고 기억한다. 미술관 주변에는 은행나무가 많았는데, 은행잎으로 노랗게 물든 미술관 정원은 정말 근사했다.
명물은 미술관 조각정원 가운데 있던 너와집 카페였다. 모닥불이 타오르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뒤에 기념으로 자기가 마신 머그잔을 가져갈 수 있었다.
토탈미술관은 주변에 러브호텔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쇠락하자 2005년 말 가나아트센터에 미술관을 넘겼다. 그 대신 1992년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문을 연 복합문화공간에 몰두했다.
토탈미술관을 인수한 가나아트는 공간을 다시 설계해 인수 이듬해 ‘가나아트파크’란 이름으로 다시 열었다. 가나아트파크는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관람객 중심의 미술관이다. 아트파크 안에는 가나어린이미술관이 있고, 피카소 어린이미술관, 어린이 체험관 등이 있다. 토탈미술관 시절과 마찬가지로 야외 정원이 돋보인다. 정원에는 앙투안 부르델, 조엘 셔피로, 필리프 페랭 등 세계 근현대 조각작가의 작품 50여 점이 설치돼 있다.
장흥의 가나아트파크 옆 스타벅스 카페. 백마역에서 옮겨온 화사랑이 있던 자리다.
미술관 한쪽 끝에는 스타벅스 커피숍이 있다. 지난주 소개한 백마역의 ‘화사랑’이 일산신도시개발로 쫓겨나 장흥으로 옮겨왔던 그 자리다.
# 피자의 시작을 알린 곳…효인방
장흥에는 피자집 ‘피자성 효인방’이 있다. 1987년 5월에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개업 38년을 맞는다. 국내 피자 전문레스토랑의 효시라는 워커힐호텔의 ‘피자힐’이 문 연 게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그보다 1년 앞선 것이니 효인방의 개업은 보통 빠른 게 아니었다. 서울 종로나 강남도 아니고, 양주 장흥이라는 걸 감안하면 더 놀랍다.
2대째 효인방을 운영하고 있는 정석원(46) 씨의 회상. 효인방을 개업한 아버지 정복모(75) 씨는 교외선 명소로 떠오른 장흥에서 장사를 준비하며 ‘뭔가 색다른 것’을 고민하다가 당시만 해도 생소한 메뉴였던 피자 전문 레스토랑을 냈다. 어쩌다 한두 번 먹어보긴 했어도 피자 레시피를 알 방도가 없던 그는, 친척이 근무하는 미군 부대 쓰레기통까지 뒤져 찾아낸 소스 통과 재료 포장으로 추정해 레시피를 알아냈다.
효인방은 문을 열자마자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새로운 음식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지만, 효인방이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건 정 씨의 수완 때문이기도 했다. 정 씨는 피자의 느끼한 맛에 거부감을 느끼는 손님들을 위해 ‘한국식 피자’를 개발했다. 대표적인 게 ‘쑥 피자’다. 피자 반죽에다 제주도에서 공수한 생 쑥을 갈아 넣은 쑥 피자는 대를 이어 아들 석원 씨가 운영하는 지금까지도 효인방의 인기 메뉴다.
청암민속박물관의 야외공간, 함석 벽에 옛 포스터를 붙여놓았다.
사실 장흥의 효인방에 가면 피자보다 더 눈에 띄는 게 있다. 효인방이 운영하고 있는 ‘청암민속박물관’ 얘기다. 효인방은 청암민속박물관, 그리고 ‘박물관 옆 카페’까지 함께 운영하고 있다. 피자집과 박물관, 카페가 하나로 묶인 사업장인 셈이다. 피자집을 하다가 박물관에 손댄 건, 순전히 옛 물건을 수집하는 아버지의 취미 때문이었다.
수집 취미가 있던 아버지 정 씨는 민속품 등을 모았다. 분재 나무와 야생화 등에도 관심이 많았다. 가게 옆의 빈터에다 모은 민속품을 가져다 놓고 꽃밭을 가꿨다. 취미 삼아 시작한 일이었는데, 피자집을 찾은 손님들이 좋아했다. 손님의 칭찬과 감탄을 격려 삼아 민속품 수집에 더 열을 올렸다. 열정적으로 모은 민속품이 어지간한 전시관 하나를 차릴 만큼이 되자, 정 씨는 박물관을 열었다. 그게 25년 전쯤의 일이다.
민속박물관 이름을 달고 문을 열었을 때는 박물관에 전시한 공간은 먼 과거였다. ‘민속’이란 이름을 앞세워 전시했던 건 오래전 농경사회의 농촌 중심의 유물이었다. 지게, 우물, 돌절구, 연자방아, 소쿠리, 농기구…. 뭐 그런 것들이다.
그러던 것이 점점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왔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여기다가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 끼어들었다. 새마을호 열차와 대폿집, 연탄판매소, 이발소, 만화방, 구멍가게…. 당시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게 인형을 넣어서 추억의 장면을 연출했다.
청암민속박물관 실내에 재현해놓은 시골집 단칸방의 겨울밤. 박물관을 만든 정복모 씨의 유년시절 기억이 담긴 공간이다.
# 추억의 여정이 가닿는 곳
청암민속박물관은 박물관이라기보다는, 근현대사 시대물을 촬영하는 세트장에 가깝다. 주제에 따라 꾸며진 전시공간마다 한두 세대 전쯤의 풍속도가 재현돼 있다. 진열한 풍경이 가까운 과거일수록, 그리고 감쪽같이 사라진 장면일수록 추억의 농도는 짙다.
한여름 날에 등목하는 시골마을의 우물가, 시장통의 뻥튀기 장사, 난로 위에다 양은 도시락을 쌓아놓은 교실 풍경, 군불로 밥을 짓는 부엌 모습…. 그곳에서 떠올리는 건 오래전의 추억이다.
민속박물관은 생각보다 규모가 크다. 민속종합박물관인 1관부터 체험공간인 4관까지 주제도 다양하다. 그런데 어쩐지 좀 초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시절 풍경이 누추해 보이는 거야 당연한 일. 그런데 그걸 재현해 놓은 방식까지 초라한 듯 보인다. 공간 연출 솜씨와 전시 기법도 낡았다. ‘레트로’를 재현하는데, 그걸 재현하는 방법까지 ‘레트로’ 스타일이다. 그게 묘하게 향수를 자극한다. 뭉클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안쓰러운 느낌도 든다.
세트장처럼 만든 공간에는 아버지 정복모 씨의 개인사가 있다. 잊을 수 없는 자신의 생애사 몇 장면을 거기 연출해놓은 것. 그중 하나가 교실을 재현한 공간 앞에 전시한 자신의 국민학교 입학식 사진이다. 사진 속의 그는 또래보다 키가 작았는데, 서너 치수는 커 보이는 모자와 헐렁한 교복 차림이다. 그때는 그랬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에게 다 그렇게 입혔다. 그가 살던 시골집 단칸방을 재현해놓은 공간도 있다.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재봉틀로 삯바느질하는 어머니 옆으로, 여섯 명의 아이들이 이불을 덮고 눕거나 공부를 하고 있다. 정 씨의 형제는 9남매였다는데, 그중 셋이 도시로 유학을 가서 공부했다고 했다.
전시해놓은 건 어머니와 시골에 남은 여섯 아이가 누추한 단칸방에서 보내는 장면이다. 전시공간에는 실제 그때 쓰던 물건을 가져다 놓았다. 벽지 대신 누더기처럼 벽에 붙인 신문지까지도 그 시절의 것이란다. 정 씨가 관람객들에게 펼쳐 보여주는 건 ‘돌아갈 수 없는 자신의 어린 날’이다.
재운행하는 교외선 열차를 타고 오래전의 유원지를 찾아가는 여정이 선물하는 건 과거의 추억이다. 가나아트파크가 된 토탈미술관이나 청암민속박물관처럼 그 시절의 공간이 여태 남아있다면 반갑겠다. 한때 통나무 레스토랑으로 유명했던 ‘예뫼골’처럼 폐허가 돼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해도 좋다. 추억 여행의 진짜 목적지는 실재의 공간이 아니라 어렴풋한 기억 속이니까. 어쩌면 사라져 버려 더 오래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
■ 황사영의 묘
송추역에서 장흥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가에 ‘황사영의 묘’가 있다. 조선 천주교 박해의 실상과 청나라의 무력 동원을 요청하는 ‘백서’를 중국 베이징(北京)의 프랑스 선교사에게 전달하려다가 발각돼 순교한, 그 황사영이다. 신앙의 자유를 얻어내기 위해 청나라 간섭이나 서양의 무력사용을 요청한 것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지만, 교회사적으로는 ‘신앙인의 귀감’으로 평가받고 있다. 황사영 묘는 180년 동안 찾지 못하다가 1980년 후손과 학자가 발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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