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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해돋이’ 여기서 봤다, 2025년 꼭 걸어야 할 10곳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12. 31. 12:27


쉴 땐 뭐하지 호모 트레커스

‘인생 해돋이’ 여기서 봤다, 2025년 꼭 걸어야 할 10곳
카드 발행 일시2024.12.31에디터 김영주

호모 트레커스는 올해 한 주도 빠지지 않고 길을 걸었습니다. 약 30여 군데의 둘레길과 트레일을 다녔습니다. 지난 1~2월 47일 동안 강원 고성군 진부령(해발 520m)에서 지리산 천왕봉(1915m)까지 700㎞를 종주했으며, 지난 9~10월엔 다시 지리산에서 태백산(1567m)까지 백두대간 길을 한 번 더 걸었습니다. 한여름엔 울릉도 라운드 트레일(총 65㎞)을 걸었고, 산림청이 야심차게 준비 중인 동서트레일(총 849㎞) 중 경북 울진과 충남 태안·서산 구간을 모두 답사했습니다. 또 해남의 달마고도를 연결한 ‘땅끝 길’, 인제 아침가리 트레일 등 기존 걷기길에 더해 새로운 코스를 걷기도 했습니다. 호모 트레커스와 함께 걸었던 전문 산악인과 고산 식물학자, 새소리 전문가 등 ‘걷기 콘텐트’를 갖춘 이들 덕분이었습니다. 올해 총 50회에 걸쳐 연재한 걷기 길 중 10곳을 선정했습니다. 호모 트레커스가 추천하는 2025년에 ‘꼭 가봐야 할 길’입니다.

① 겨울 눈꽃산행 백미, 덕유산 향적봉~삿갓봉 10㎞

                                                           덕유산 능선. 김영주 기자

전북 무주군 덕유산 정상(향적봉·1614m)에서 남쪽 삿갓재대피소(1225m)로 내려가는 총 10㎞의 길. 겨울 눈꽃산행으로 이만한 데가 없다. 설악산(1708m)·소백산(1439m) 등도 겨울 산행 명소로 꼽히지만, 향적봉은 누구나 갈 수 있는 ‘만인의 산’이라서 특별하다. 산 아래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향적봉 바로 아래인 설천봉(1520m)까지 올라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백두대간 종주를 하는 동안 향적봉대피소에 들렀을 때도 곤돌라로 대피소에 온 이들이 꽤 있었다. 초등학생 아들·딸을 함께 온 30대 여성, 대피소에서 낭만적인 하룻밤을 기대하고 온 70대 노부부, 향적봉 일출을 촬영하기 위해 무거운 촬영 장비를 메고 온 사진동호회 등이다. 물론 산행을 하려면 겨울 산행 장비를 단단히 챙겨야 한다.

주말 산행으로 향적봉~삿갓재대피소 구간을 걷는다면, 금요일 저녁에 곤돌라를 이용해 향적봉대피소에 묵은 다음 이튿날 약 10㎞를 이동해 삿갓재대피소에서 묵고, 다음날 남동쪽 방향 황점마을(경남 거창)로 하산하는 게 좋다. 그러면 총 14㎞를 걷게 된다. 1박 2일로 코스를 잡는다면 향적봉에서 약 2㎞를 내려온 뒤, 여기서 남서쪽 탈출로인 안성탐방지원센터로 내려오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 산행 거리는 약 7㎞가 된다. 눈과 추위가 걱정된다면 향적봉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묵고 후 이튿날 향적봉 일출을 감상한 다음, 다시 설천봉으로 내려와 곤돌라로 하산하는 방법도 있다.

올해 두 번 향적봉대피소에 묵은 후 인생에서 기억에 남을만한 해돋이를 경험했다. 지난 2월엔 구름 한 점 없는 해돋이, 또 지난 9월엔 구름 사이에 가려져 은근한 해돋이를 감상했다. 한겨울 눈 내린 다음 날, 깨끗한 해돋이를 볼 가능성이 높다. 단, 겨울 산행 장비와 식량·간식 등은 철저히 챙겨야 한다.

② 4월의 곶자왈, 애월 한대오름 트레킹

                                          상산 향 가득한 한대오름 가는 길. 김영주 기자

제주 애월읍 봉성리 공치왓 평원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가면 한대오름(921m)과 노로오름(1070m, 노루오름), 족은바리메(725m)를 차례로 맞는다. 연둣빛 새잎이 무성히 돋는 4월 제주의 숲 트레킹이다.

한대오름으로 향하는 트레일은 예전 애월 사람들이 한라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나물을 뜯으러 가기도 하고, 숯을 만들러 가기도 하고, 소를 끌고 가던 길이다. 이 시기에 가면 다양한 식생을 만난다. 우거진 숲을 걷다 보면 길섶으로 햇고사리와 두릅 새순이 흔하다.
한대오름 가는 길은 곶자왈 지대다. 제주로 말로 곶은 숲, 자왈은 덤불이란 뜻이다. 수풀이 우거져 또렷하진 않지만, 길바닥에 검은 현무암이 드문드문 보인다. 이 돌길 아래로 물이 흐르고 있다.

트레일엔 상산(常山) 나무 향이 가득하다. 상산은 더덕처럼 강렬한 향을 내뿜는 키 작은 식물로 잎을 한두개 따서 손바닥에 비비면 알싸한 향을 풍긴다. 때에 따라선 약간 역한 냄새가 나기도 한다. 안개 자욱한 날에 맡으면 더 진하다. 제주 사람들은 장례식 때 시신을 부패하지 않도록 상산을 썼다고 한다. 또 여름에 모기를 쫓는 데도 쓰였다.

한대오름에서 노루오름 가는 길은 삼나무 숲길을 가로지른다. 상산 향과는 다른 삼나무 피톤치드 향이 강하다. 노루오름은 주변에 노루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노루오름에서 바리메로 가는 길은 삼나무 숲이 끝없이 펼쳐진 가운데 정갈한 임도가 펼쳐진다. 바리매와 족은바리메는 두 오름이 붙어 있는데, 망아지가 어미 말을 쳐다보는 형상이다. 세 오름을 모두 걸으면 약 15㎞. 걷는 내내 상산 향이 끊이지 않는다.

③ 늦봄의 서정, 인제 아침가리 트레일 6㎞

                                             인제 아침가리골 자작나무숲. 김영주 기자

강원도 심심산골 인제군 아침가리골(朝耕洞)의 봄은 다른 어떤 곳보다 늦게 온다. 아침가리 계곡을 지나 구룡덕봉(1388m)·방태산(1443m)으로 이어지는 이 트레일도 늦게 열린다. 남쪽에서 꽃이 피는 춘삼월에도 눈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또 4월은 산불 통제 기간이라 닫혀 있다. 그래서 아침가리골 트레킹은 연둣빛 새잎이 필 무렵인 5월 15일 이후에 열린다. 반면 한겨울을 지나 이른 봄까지 사람의 발자국을 허락하지 않은 트레일에 들어서면 청정한 기운이 가득하다.

트레일 코스는 다양하다. 아침가리골 입구에서 계곡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도 되고, 임도를 따라 걸어도 된다. 아침가리골은 10여년 전부터 물길을 따라 걷는 ‘계곡 트레킹’ 명소로 자리 잡았다. 계곡 트레킹은 작은 오솔길과 뼝대(절벽)가 있어 계곡 이쪽저쪽을 오가며, 길을 찾아야 한다. 대여섯번 정도 계곡을 건너야 마칠 수 있다.

계곡 트레킹 종점인 조경교에서 다시 아름다운 숲길이 이어지는데, 구룡덕봉까지 약 13.5㎞ 구간이다. 여기서 직진하면 월둔마을로 빠지고, 오른쪽 트레일로 들어서면 방태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월둔마을로 내려오면 약 5㎞, 방태산 정상에 올라 자연휴양림 방면으로 내려오면 약 15㎞ 거리다. 아침가리골 트레킹과 구룡덕봉·방태산을 거쳐 돌아오면 약 35㎞의 장거리 트레일이 완성된다. 도전적인 트레커에게 추천한다. 또 아침가리골을 왕복하면 약 10㎞, 아침가리골을 거쳐 월둔마을로 하산하면 25㎞의 길이다.

인적 뜸한 길이라 산양처럼 귀한 산짐승을 만나기도 한다. 지난 5월 이 트레일에서 우람한 체격을 갖춘 산양을 봤다. 수놈으로 보이는 산양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트레일에 나타나 처음엔 물끄러미 기자를 쳐다보더니, ‘사람이다’ 깨닫는 순간 “꽥” 소리를 지르고 순식간에 달아났다.
조경교에서 월둔마을까지는 백두대간 트레일의 일부다. 홈페이지(baekdutrail.or.kr)를 통해 사전에 예약하고 가야 한다.

④ 연인과 함께 부부가 같이, 충주호 종댕이길 4㎞

                                                고즈넉한 숲길, 충주호 종댕이길. 사진 김영주 기자

충북 충주 충주호(湖) 옆에 봉긋하게 솟은 심항산(385m) 아래 트레일. 산자락과 호숫가를 따라 걷는 호젓하고 아늑한 길이다. 종댕이란 말은 근방에 자리 잡은 상종·하종 마을에서 유래했다. 가까운 곳에 정선 전씨 집성촌이 있어 이 마을 사당을 ‘종당’이라 불렀다고 한다. 예전 마을과 마을을 잇는 고샅길로 산길이라기보단 산책로에 가깝다. 심항산 아래 트레일에 ‘종댕이 고개’가 있다.

충주시는 이 길을 ‘연인끼리 걷기 좋은 길’로 소개한다. 이런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트레일 곳곳에 여러 장치를 해두었는데, ‘모자(母子)나무’도 그중 하나다. 한 뿌리에서 나온 두 개의 가지가 허공에서 맞닿으면서 생긴 공간에 마치 어머니의 뱃속을 연상 시킨다고 붙인 이름이다. 두 가지가 서로 맞붙은 ‘연리지’ 나무와 같다. 길을 걷다 보면 연리지가 제법 보이는데, 예전부터 연리지는 화목한 부부나 연인 사이를 일컫기도 했다. 그 중엔 ‘키스나무’라는 이름표가 달린 나무도 있다.

실제로 종댕이길은 부부나 연인이 많은 찾는다고 한다. 길을 걷다 보면 손을 잡고 걷는 커플이 자주 눈에 띈다. 이른 봄날 연둣빛 새잎이 돋아날 때 부부끼리 산책하기에 좋은 길이다.

종댕이길은 찻길에서 시작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돌면 약 4㎞. 쉬엄쉬엄 2시간 거리다. 줄곧 호수를 따라 걷다, 호수와 면한 지점이 끝나는 데서 산길로 접어든다. 외곽으로 길게 도는 길도 있지만, 그러면 도로를 걸어야 한다. 짧은 코스는 쉬엄쉬엄 걸으면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한 바퀴 돌고 나와 모바일에 표시된 종댕이길의 GPS 궤적을 보니, 하트 모양이 그려져 있다. 토요일 오전, 부부끼리 연인끼리 걷기에 좋은 ‘하트 길’이다.

⑤ 비 오면 더 낭만적인, 홍천 도사곡 9㎞

                                         비오는 날의 홍천 '68 도사곡' 길. 김영주 기자

지난 9월, 강원 홍천의 ‘마중 시인’ 허림(64)과 시베리아 호랑이를 촬영한 최기순(61) 다큐 감독과 같이 걸었던 길이다. 도사곡 트레일을 걷는 3시간 내내 비가 내렸지만,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길 폭이 넓고 바닥은 잘 다져져 있으며, 숲은 우거지고 걷는 사람은 많지 않아 호젓하다.

1968년 전국 최초의 임도로 개통한 ‘68도사곡’은 홍천읍 상오안리 며느리고개에서 시작해 석장재(해발 약 500m) 넘어 도사곡 마을로 이어지는 약 6㎞의 길이다. 허림 시인은 “내촌면 군유동, 내면 살둔과 함께 홍천의 무릉도원으로 불릴만한 곳”이라고 했다. 36년 전 개통한 임도이지만, 지금은 차도 사람도 거의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아늑하고 운치 있다. 68도사곡 길은 아늑하고 운치 있었다. 도사곡 사람들은 이 길을 홍천의 ‘마중길’로 이름을 짓는 절차를 밟고 있다. 허림은 가곡 ‘마중’의 노랫말로 유명한 시 ‘마중’을 쓴 시인이다.

며느리고개에서 약 2.5㎞를 가면 석장재 고갯마루다.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임도로 쉬엄쉬엄 가면 1시간 정도 걸린다. 고개엔 둘레가 3m가 넘는 큰 소나무가 서 있다. 수령이 약 200년 정도 된 소나무로 “도사곡 숲의 정령”이라 할 수 있다. 비 오는 날엔 더 영험해 보인다.

석장재에서 도사곡 마을까지는 줄곧 내리막이다. 고갯마루 왼편으로 작은 계곡이 흐르는데, 10여㎞를 흘러가 한강(남한강)에 합류한다. 한강 발원지인 셈이다. 도사(沙)곡은 마을 앞 개울에서 사금을 채취한 데서 유래했다. 예전엔 금모래라고 불렸다고 한다. 200년 전에 화전민이 일군 마을이라고 하며, 예전엔 금모래로 불렸다고 한다.

상오안리에서 도사곡 마을까진 약 9㎞로 나올 때는 택시를 불러야 한다. 도사곡 마을엔 캠핑장이 갖춰져 있다.

⑥ 흑비둘기 우는, 울릉도 학포-태하령-남양 9㎞

                                                         태하령의 솔송나무. 김영주 기자

울릉도 라운드 트레일은 약 65㎞다. 울릉도 일주도로 40㎞가 해안가를 끼고 도는 찻길이라면 라운드 트레일은 산과 해안 사이로 난 둘레길이다. 섬의 중심인 성인봉(984m)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어느 곳이든 숲이 우거져 있다. 비가 적당히 오는 봄이나 여름날 이 길에 들어서면 빳빳한 고어텍스 재킷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를 음미하며, 걷게 된다. 라운드 트레일 중 추천하고 싶은 길은 섬 서쪽 학포항에서 태하령(462m)을 넘어 남쪽 남양항으로 내려오는 약 9㎞의 트레일이다. 특히 태하령 오르는 길과 남양으로 내려오는 약 5㎞의 길이 백미다.

지난 6월 서울은 찜통더위가 이어질 때 이 길을 걸었다. 그리 덥지 않았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잎 큰 나무 등이 터널을 이루고 있어 거의 온종일 그늘이기 때문이다. 특히 태하령 인근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솔송나무·섬잣나무·너도밤나무 군락을 볼 수 있다.

기자는 태하령 길을 혼자서 해 질 녘에 걸었다. 호젓한 길도 좋았지만, 해 질 녘에 맞춰 끊임없이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있어 특별했다. 이 숲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울릉도 흑비둘기가 산다. 흔히 알고 있는 비둘기 소리 “구구구” 아니라 “후두두 후두두” 소리를 낸다. 처음엔 중후하게 들리지만, 나중에 귀신 소리 같기도 하다. 아무도 없는 숲에서 처음 들었을 땐 몸이 오싹해지기도 했지만, 자꾸 듣다 보면 정겹게 들린다.

태하령 정상 바로 아래엔 솔송나무 아래 작은 벤치가 놓여 있다. 앉기도 해도 명상에 빠져드는 운치 그윽한 장소다. 천연기념물인 솔송나무가 주는 그늘과 흑비둘기 노랫소리, 바닥에서 올라오는 젖은 솔잎 향을 맡을 수 있다. 나흘 동안 걸었던 울릉도 라운드 트레일 중에서 가장 평안함을 느낀 장소였다.

태하령 고갯길 정상엔 이정표가 없다. 고갯마루 오른편, 스러져 가는 정자만이 이곳이 태하령 꼭대기였음을 짐작하게 했다. 정상 벤치에서 남쪽으로 3.5㎞ 내려오면 남양항에 닿는다. 남양은 따뜻한 울릉도 중에서도 가장 따뜻한 마을이다.

⑦ 새들의 오케스트라, 가평 중미산휴양림 3㎞

                                     중미산휴양림 숲길에서 새소리를 듣는 양경모 씨. 김영주 기자

중미산휴양림 관리사무소 옆으로 난 오솔길이다. 예전엔 임도로 쓰였지만, 지금은 거의 차가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봄부터 가을까진 길바닥에 풀이 무성히 자라나 있다. 입구에 차를 통제하는 차단기가 있는데, 이를 이정표 삼아 들어가면 된다.
이 길은 생태교육 전문가인 양경모(66) 씨가 새소리를 찾아 나서는 길이다. 한반도에 여름 철새가 날아드는 3월부터 6월까지 거의 매일 이 길을 걷는다고 한다. 그는 새소리를 듣기 위해 거처를 중미산 아래로 옮기기까지 했다.

길에 들어서자마자 멧비둘기, 벙어리뻐꾸기, 산솔새 등의 소리가 들린다. 평소 숲에서 들을 수 있지만, 무심코 지나쳐버린 새소리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도 앱을 이용해 새소리를 구분할 수 있다. 휴대폰에 ‘버드넷(BirdNET)’이라는 앱을 깔고 소리를 녹음하면 잠시 후 판독한 뒤 어느 새인지 알려준다. 마치 ‘귀가 뜨인 듯’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임 씨는 동트기 전에 숲에 들른다고 한다. 새벽 4~5시(봄·여름 기준)가 되면 숲의 모든 새가 노래하는 ‘돈 코러스(dawn chorus)’ 시간이다. 이때 숲에 들르면 입체적인 새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는 “철새가 한반도를 찾는 봄·여름, 새벽 숲에선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 소리로 이뤄진 또 다른 세상, 눈으로 보는 것보다 자연을 더 깊게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차가 다닐 수 있도록 만든 길이지만, 평소엔 차량을 통제해 호젓하다. 임도를 따라 왕복 2㎞. 해 질 녘 새소리를 들으며, 명상하기 좋은 길이다.

⑧ 혼자 걸으며 정진, 정선 운탄고도 10㎞

                                                           정선 운탄고도 5길. 김영주 기자.

올해 강원 정선군 운탄고도(運炭高道)를 두 번 걸었다. 한번은 30~40년 전 이곳에서 석탄을 캐던 정선의 광부들과 함께 걸었고, 지난 6월 하이원리조트가 주최한 ‘스카이런’ 트레일러닝대회에 참가해 운탄고도와 백운산(1426m) 트레일 등을 이은 트레일러닝 코스 42㎞를 달리기도 했다. 한해 두 차례 갔지만, 늘 만족스러운 길이었다.

하이원리조트 뒤편 백운산 뒤편에 난 운탄고도는 1960년대 이곳에서 캔 석탄을 인근 기차역까지 실어나르던 찻길이다. 당시 강제 징집된 청년들이 마땅한 장비도 없이 곡괭이와 삽으로 낸 길이 지금이 걷기 좋은 길이 됐다.
5월에 가면 노란 괴불주머니를 비롯해 야생화가 만발한다. 또 6월께 백운산 능선으로 올라가면 박새 등이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고, 같은 시기 하이원리조트는 샤스타데이지 등 야생화 축제를 열기도 한다. 하이원팰리스호텔에서 시작하는 운탄고도 5길은 석탄을 운반하던 임도를 걷는 길도 있지만, 능선을 타고 가는 길도 있다.

백운산 7부 능선에 자리한 운탄고도는 폭 3~4m의 평탄한 길이다. 바닥은 거무스름한 돌무더기와 마사가 섞여 있고, 길옆으로 수령이 50~60년 된 참나무 가지가 이리저리 얽혀 터널을 이뤘다. 임도와 다른 점이 있다면 바닥이 검다는 것이다.

본래 운탄고도 5길은 정선 사북읍 화절령(1200m)에서 시작해 하이원리조트 위 백운산을 돌아 만항재(1330m)까지다. 방향이 북쪽에서 남쪽이다. 그러나 이 길이 조금 더 힘들다. 하이원팰리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하이원리조트 방면으로 향하면 발걸음이 수월하다.

⑨ 고운 단풍 길, 태백 늦은목이~도래기재 16㎞

                                                                 도래기재 단풍. 김영주 기자

소백산 자락 늦은목이에서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선달산(1236m), 옥돌봉(1242m) 넘어 도래기재 (770m)로 내려오는 16㎞의 대간 길. 백두대간 중에서도 깊고 깊은 경북 봉화의 1000m 높은 산과 고개를 차례로 지난다. 지난 10월 14일, 두 번째 백두대간 종주를 할 때 걸었던 길이다.

지난가을, 백두대간 능선의 단풍은 여름 폭염이 지속한 탓에 잎이 그대로 말라버려 단풍이랄 것도 없었다. 아쉬움을 달래며 능선을 걷던 중 선달산·옥돌봉 구간에서 곱게 물든 단풍을 봤다. 전국에서 지난한 폭염이 지속했지만, 해발 1000m 산 능선은 상대적으로 덜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침 산안개가 자욱할 때 단풍이 더 선명하게, 한낮에 볕을 한껏 받았을 때 눈 부신 빛을 발했다. 걷는 동안 내내 감탄사를 연발했던 길이다. 지리산에서 출발해 도래기까지 약 한 달을 걸어오며 지친 심신이 이 구간을 걸으며, 달랠 수 있었다.

특히 옥돌봉~도래기재 구간은 철쭉 군락이 터널을 이룬다. 길 양쪽으로 빼곡하게 자리 잡은 철쭉이 노랗게 물들어 '단풍 터널'을 이룬 가운데, 이 길을 허리 숙여 지나가야 한다. 숲 아래서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가을 풍경이 그지없이 아름답다. 철쭉 길은 수백m, 철쭉 터널은 수십m 이어진다.
근방엔 둘레 약 1m, 키 높이 약 5의 철쭉나무가 있다. 수령이 약 560년이라고 한다.  도래기재는 우구치로도 불린다. 우구치 아래 봉화 춘양면에 호랑이 숲이 있는 백두대산수목원이 있다. 호랑이숲에 가면 진짜 호랑이를 볼 수 있다.

⑩ 가을과 겨울 사이, 해남 달마고도~땅끝 20㎞

                                            해남 땅끝전망대 근방 '스카이워크' 길. 김영주 기자

강원도에 눈이 내리는 11월 말, 땅끝 해남 달마산(489m)은 단풍이 남아 있다. 갈수록 날씨가 포근해지는 최근엔 더 그렇다. 만추 산행으로 달마산만 한 곳이 없다. 달마산은 백두산에서 시작된 한반도의 산줄기가 바다로 떨어지기 직전에 솟은 산이다. 기암절벽과 아름다운 사찰 미황사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엔 달마고도를 찾는 이들이 늘었다. 달마산 산 중턱 7부 능선을 따라 만들어진 달마고도는 옛길을 복원한 길이다. 달마산 자락 암자에 기거하던 스님들이 땅끝을 향해 걷던 길이고,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땔나무하고 사냥할 때 다니던 길이다.
달마고도는 2017년 당시 미황사 주지였던 금강스님이 직접 감독을 했다. 스님은 인부들에게 삼겹살까지 대접하며, 길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고 한다. 작고 예쁜 오솔길을 만들기 위해 장비를 동원하지 않고, 사람의 힘으로만 길을 닦았다고 한다.

그래서 걷기에 좋다. 사람 한두명이 걸을 수 있는 오솔길에 돌과 자갈, 황토가 적절히 섞여 있어 걷기 편하다. 가을에 가면 솔잎을 비롯해 색바랜 낙엽들이 길을 덮을 정도다. 또 아직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 길도 잘 보전돼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달마고도 라운드 트레일은 약 17㎞. 한 바퀴 도는데 6시간 정도 걸린다. 라운딩하지 않고, 남쪽에서 땅끝기맥을 따라 10㎞ 정도 내려가면 땅끝에 닿는다. 연말 한 해를 보내는 때 또는 연초 새해를 다짐하는 시기에 마음을 다잡으며, 걷기 좋은 길이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3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