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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세설신어

(202) 금불급고(今不及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11. 26. 14:32

[정민의 세설신어]

(202) 금불급고(今不及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3.03.20. 03:05
 
 
 

 

 

근세 홍콩의 저명한 서화 수장가 진인도(陳仁濤·1906~1968)가 쓴 '금궤논화(金匱論畵)'를 읽었다. 지금 그림이 옛것만 못한 원인을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림에서 지금이 옛날에 미치지 못하는(今不及古) 것은 무엇 때문인가? 옛사람은 생활이 간소하고 질박해서 먹고살 도리를 구해야 하는 급박함이나 세상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일생토록 기예를 익혀, 오랜 뒤에는 절로 신묘한 조화를 두루 갖추게 된다. 지금 사람은 물질의 유혹에 빠져 생활에 아등바등한다. 입고 먹는 것을 다만 그림에만 의지한다. 조잡한 작품을 마구 그려 대량 생산하거나, 이름난 거장의 그림을 따라 익혀 어떤 풍을 이룬다. 이래서야 어찌 훌륭하기를 바라겠는가! 하물며 이런 상업의 시대를 만나고 보니 온갖 것이 다 선전에 기댈 수밖에 없다. 화가 또한 그 방법을 답습해서, 다투어 헛된 명성을 뽐내 겉만 번지르할 뿐 실함이 없다. 예술의 타락이 더더욱 심하니, 슬프다."

다음 단락은 또 이렇다.

"그림을 그릴 때 붓질은 점과 선에 지나지 않는다. 용묵(用墨)은 농담(濃淡)을 벗어남이 없다. 그림 한 폭이 이뤄지는 것은 오로지 점과 선의 조직이 적절한지와 수묵의 농담이 정도를 얻었는가에 달려있다. 그 방법을 얻은 자는 신묘하여 아무 걸림이 없고, 이 법칙을 어긴 자는 종이와 비단에 재앙만 안겨다 준다. 털끝만 한 차이가 천리 거리를 낳는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에는 기쁨이 고이지 않는다. 좋아서 하고,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할 때 보상은 저절로 따라온다. 설령 보상이 끝내 없어도 내면에 차오르는 기쁨만으로도 그 길을 기꺼이 갈 수가 있다. 어디 그림만 그렇겠는가? 학문도 그렇고 예술도 그렇고, 온갖 일이 다 그렇다. 비싼 값에 그림 팔아먹을 궁리만 하는 화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정치판이나 기웃거리는 교수, 어떻게 해야 남이 나를 알아줄까 하는 생각뿐인 장인(匠人), 다 민망한 풍경이다. 다들 염불은 딴전이고 잿밥에만 마음이 쏠려 있다. 건성으로 하는 염불에 잿밥이 모일 리 있나. 그럴듯한 가짜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은 속안(俗眼)뿐이다. 속이는 저 자신이 이미 제가 가짜인 줄을 알고 있다. 거기에 또 속으니 안쓰럽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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