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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호명사회, 서로의 이름을 부르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9. 12. 13:22

호명사회, 서로의 이름을 부르다
중앙일보
입력 2024.09.12 00:22

송길영 Mind Miner

감나무집 둘째, 김수영씨는 개구지고 흥겨운 아이였습니다. 감나무에서 떨어져 깁스를 하고 다니던 일은 그의 부산함의 증거로 이웃들의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공부도 곧잘 해 도시의 학교로 진학해서 번듯한 직장을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따금 고향에 내려와서 인사를 해도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잘 떠올리지 못합니다. 그의 존재가 단독자로 인식되기 어려웠던 이유는, 동네의 터줏대감 감나무 집 둘째라는 관계와 맥락이 훨씬 큰 존재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도시의 학교는 한 반에 50명도 넘던 콩나물시루처럼 과밀했고, 한 학년에 10반이 넘는 규모로 더해졌습니다. 전체 학생이 2000명이 넘던 시기, 학생들의 이름을 교사가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의 미션과 같았기에 언제나 호칭은 번호로 대신 되었습니다.

AI·초연결로 무장한 핵개인들
권위적 조직으로부터 독립 선언
이름이 ‘나라는 상품’의 브랜드
대등한 연대의 호명사회 도래


일러스트=박용석

교육을 받고 구한 직장에서는 입사와 동시에 직급이나 직함으로 불리는 사회와 마주했습니다. 이름으로 불리는 시점은 ‘사원’의 초년생 기간에 한정되었습니다. 눈칫밥을 먹으며 조직의 생리를 이해할 무렵, ‘대리’의 직급을 부여받는 순간 그의 호칭은 ‘김대리님’으로 격상되었습니다. 수직적 시스템 속 직급은 계급처럼 다가왔기에, 승진을 통해 얻은 직급은 영예로운 호칭으로 자리 잡으며 사회의 성적표로 여겨졌습니다.

조직에서 정년을 마친 이들은 이따금 만나는 옛 동료들과의 만남에서 여전히 조직에서의 마지막 직급으로 서로를 부른다 합니다. 그만둔 지 20년이 되었어도 김상무와 박전무로 서로를 부르는 모습에서 그 명칭이 그 시대의 정체성과 같았음을 확인합니다.

10년 전 강연에서 만난 노신사는 인자한 표정과 총명한 눈빛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우아한 매너와 사려 깊은 질문으로 상대를 배려한 그가 건네준 명함에 새겨진 그의 소개는 ‘전 OO 기업 사장’이었습니다. 이는 조직을 제거한 그의 존재는 객관적으로 다가오기 어려움을 설명합니다. 김교장과 박지점장은 조직에서 성취한 훈장과 같이 은퇴 후에도 그들을 부르는 존칭처럼 지금도 쓰이고 있습니다.

지난 200년간 인류가 이룬 것은 그 이전의 인류의 역사 30만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풍요로움입니다. 문명의 혜택을 모두가 누리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욕망은 더 빠르게 커졌고 그에 비례해 각자의 일은 급격히 정교해졌습니다. 이처럼 혼자서 무엇인가를 온전히 해내기 어려울 만큼 우리의 일이 복잡해지며, 개인들은 조직을 통해 서로 규합하고 함께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증강된 인간’이 출현합니다. 인공지능과 초연결로 무장한 핵개인은 물리적으로 모여서 협업하지 않아도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생산의 과정을 자동화하고, 결과를 네트워크로 전 세계에 전파하는 ‘핵개인’은 예전의 조직이 준다는 안정성과 그 보상의 크기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더욱이 생애주기가 늘었음에도 재직 기한은 여전히 제한되기에, 자신의 늘어난 생산성에 비해 보상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과도한 책임을 세금처럼 조직으로부터 부과받는다고 느낀 이들은, 결국 독립을 선언합니다.

이렇듯 내가 바로 상품이 되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상품의 브랜드로서의 ‘나의 이름’입니다. 세상과 직접 조우하며 나의 진정성을 설명하는 표상은 바로 나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조직의 일원으로서, 그 조직 내 직급이 직함이 되고 나의 명칭이 되었다면 이제 내 이름을 되찾고 싶은 사람들은 그 겹겹이 쌓인 장막을 벗어나고자 합니다.

대량 생산 시스템이 경제를 주도한 동안, 개인은 조직과의 생산성 경쟁에서 이길 수 없었습니다. 구둣방을 지키며 한땀 한땀 바늘 코를 메우던 장인이 기계화로 무장한 거대기업과의 싸움에서 필패했던 것이 지난 200여 년의 전쟁이었다면, 이젠  전 세계를 묶어내는 플랫폼의 힘으로 권토중래의 반격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품질로도 진정성으로도 개인이 기업과 견주어 절대 부족하지 않은 새로운 전쟁에서, 몸이 가벼운 기사는 더는 무모한 돈키호테가 아닙니다.

핵개인의 새로운 연대는 누구도 착취하지 않는 대등한 연대로 결속합니다. 그들은 서로를 직급이나 소속이 아닌, 각자의 이름으로 부르며 예우합니다. 스스로 각성한 핵개인은 호오와 조예로 무장한 동류를 만났을 때 애정과 존중의 태도로 환대합니다. 이는 각자가 성취에 이르기까지 겪어야만 했던 험난한 여정을 공감하기에, 자신과 같은 그의 치열함에 보내는 격려와 같습니다.

조직의 일원로서의 자신이 아닌, ‘나’의 전부를 온전히 ‘나의 이름’으로 설명하는 사회, 호명 사회가 오고 있습니다. 이름을 걸고 진정성으로 세상과 마주해야만 하는 사회, 하지만 더욱 따뜻하게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고 온전히 인정해 주는 사회입니다.

송길영 Mind Miner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7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