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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시 노래한 ‘한국의 율리시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6. 13. 13:26

[삶과 추억]

일상의 시 노래한 ‘한국의 율리시스’

중앙일보

입력 2024.06.10 00:10

 
 
 
 
 
 
 
 
 
 

한국 모더니즘 시의 전통을 이어온 것으로 평가받는 김광림 시인이 9일 9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은 생전 18권의 시집을 출간했고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냈다. [사진 한국시인협회]

“꽃은 꺾인 대로 화병에 담아 채우면 / 금시 향기로워 오는 / 목숨인데 / 사람은 한번 꺾어지면 / 그만 아닌가 (중략) 사람도 그만 향기로울 데만 있으면 / 담아질, 꺾이어도 좋은 / 꽃이 아닌가” (1959년 ‘사상계’에 발표한 시 ‘꽃의 반항’)

일상의 기쁨과 슬픔, 삶과 죽음의 의미를 성찰적인 시어로 노래했던 문단의 원로 김광림(본명 김충남) 시인이 9일 별세했다. 향년 95세.

1929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8년 단신으로 월남했다. 홀로 시를 습작하던 중 청록파 시인 박두진의 권유로 ‘연합신문’을 통해 시 ‘문풍지’로 등단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육군 소위로 참전하기도 했던 그는 전후인 1959년 첫 시집 『상심하는 접목』을 펴냈다. 1961년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김종삼·김요섭 시인 등과 함께 문예지 ‘현대시’의 창간 동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2009년 청마문학상을 수상한 『허탈하고플 때』까지 총 18권의 시집을 출간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의 시는 정지용·김기림에서 시작해 김광섭·박남수 등으로 이어져 온 한국 시의 모더니즘 전통을 잇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필명 ‘광림’은 존경하던 시인인 김광균의 ‘광(光)’과 김기림의 ‘림(林)’을 따서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9년 발표한 그의 시 ‘꽃의 반항’은 꽃과 인간의 속성을 대비시키며 전쟁 후의 황폐한 내면을 담아낸 작품으로 호평받았다. 이후 그의 시들은 일상에서 느낀 다양한 감정을 해학과 풍자에 담아 대중들에게 다가갔다. 1989년 출간된 시집 『말의 사막에서』에 실린 ‘덤’에선 “나이 예순이면 / 살 만큼은 살았다 아니다 / 살아야 할 만큼은 살았다 / 이보다 덜 살면 요절이고 / 더 살면 덤이 된다 / 이제부터 나는 덤으로 산다(후략)”며 나이 드는 예술가의 회한과 다짐을 노래하기도 했다.

화가 이중섭(1916~56)과의 인연도 널리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해방 직후인 1947년 원산에서 만나, 화가가 작고한 1956년까지 우정을 이어갔다. 이중섭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은박지 그림’은 김광림 시인에 의해 탄생했고, 세상에 살아남았다. 그는 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외출을 나올 때마다 이중섭의 요청으로 보급품 박스 속에 있던 양담배 은박지를 모아 전해줬다고 한다. 이후 예술 활동에 회의를 품은 이중섭이 “내 그림은 다 가짜”라며 모두 불살라버리라고 부탁했지만, 그는 잘 보관했다가 이후 이중섭과 같이 머물던 소설가 최태응을 통해 돌려줬다. 그는 2006년 펴낸 『진짜와 가짜의 틈새에서-화가 이중섭 생각』이란 책에 이런 두 사람의 인연을 기록하기도 했다.

1992~94년 제28대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낼 땐 일본·대만 등의 시인들과 교류하며 한국시를 세계에 알리는 데 힘썼다. 1990년 세계시인대회 당시 일본의 유명 시인 시라이시 가즈코(白石かずこ)가 ‘오늘의 율리시스’라는 시를 낭독하자, 김 시인은 “나는 북에서 온 한국의 율리시스”라고 답했다. 이 일화가 알려지며 ‘한국의 율리시스’란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1999년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 2001년 국가유공자증서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 아들 김상수(바움커뮤니케이션 회장)·상일(조각가)·상호(대만 과기대 학장 겸 대만 현대시인협회장)씨, 딸 김상미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 발인은 11일 오전 10시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