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한국시낭송연합회초청 강릉 시낭송회 (2019)

한국시낭송연합회 강릉 시낭송 초청(2019.06)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4. 8. 18:10

강릉명주예술회관
시집; 사인회
인사말

 

 

 

눈물이 시킨 일

한 구절씩 읽어가는 경전은 어디에서 끝날까

경전이 끝날 때쯤이면 무엇을 얻을까

하루가 지나면 하루가 지워지고

꿈을 세우면 또 하루를 못 견디게

허물어 버리는,

그러나

저 산을 억 만년 끄떡없이 세우는 힘

바다를 하염없이 살아 요동치게 하는 힘

경전은 완성이 아니라

 

생의 시작을 알리는 새벽의 푸르름처럼

언제나 내 머리맡에 놓여 있다

나는 다시 경전을 거꾸로 읽기 시작한다

사랑이 내게 시킨 일이다

- 시집 눈물이 시킨 일(2011)

 

 

밤에 쓰는 편지 / 나호열

먹을 갈아 정갈해진 정적 몇 방울로 편지를 쓴다

어둠에 묻어나는 글자들이 문장을 이루어

한줄기 기러기 떼로 날아가고

그가 좋아하는 바이올렛 한 묶음으로 동여맨

그가 좋아하는 커피 향을 올려 드리면

내 가슴에는 외출중의 팻말이 말뚝으로 박힌다

내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그의 먼 안부

동이 트기 전에 편지는 끝나야 한다

신데렐라가 벗어놓고 간 유리구두처럼

발자국을 남겨서는 안 된다

밤에 쓰는 편지는 알코올 성분으로 가득 차고

휘발성이 강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그가 깨어나 창문을 열 때

새벽 하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푸르러야 한다

맑은 또 하나의 창이어야 한다

오늘도 나는 기다린다

어둠을 갈아 편지를 쓰기 위하여

적막한 그대를 호명하기 위하여

시집 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2001)

 

타인의 슬픔.1 / 나호열

 

문득 의자가 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의자에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으므로

제 풀에 주저앉았음이 틀림이 없다

견고했던 그 의자는 거듭된 눌림에도

고통의 내색을 보인 적이 없으나

스스로 몸과 마음을 결합했던 못을

뱉어내버린 것이다

이미 구부러지고 끝이 뭉툭해진 생각은

쓸모가 없다

다시 의자는 제 힘으로 일어날 수가 없다

태어날 때도 그랬던 것처럼

타인의 슬픔을 너무 오래 배웠던 탓이다

 

- 시집 타인의 슬픔(2008)

 

 

북은 소리친다

속을 가득 비우고서

가슴을 친다

한 마디 말 밖에 배우지 않았다

한 마디 말로도 가슴이

벅차다

그 한 마디 말을 배우려고

북채를 드는 사람이 있다

북은 오직 그 사람에게

말을 건다

한 마디 말로

평생을 노래한다

 

시집 당신에게 말걸기(2007)

 

어머니를 걸어 은행나무에 닿다

구백 걸음 걸어 멈추는 곳

은행나무 줄지어 푸른 잎 틔어내고

한여름 폭포처럼 매미 울음 쏟아내고

가을 깊어가자 냄새나는 눈물방울들과

쓸어도 쓸어도 살아온 날보다 더 많은

편지를 가슴에서 뜯어내더니

한 차례 눈 내리고 고요해진 뼈를 드러낸

은행나무 길 구백 걸음

오가는 사람 띄엄띄엄 밤길을 걸어

오늘은 찹쌀떡 두 개 주머니에 넣고

저 혼자 껌벅거리는 신호등 앞에 선다

 

배워도 모자라는 공부 때문에

지은 죄가 많아

때로는 무량하게 기대고 싶어

구백 걸음 걸어 가닿는 곳

 

떡 하나는 내가 먹고

너 배고프지하며 먹다 만 떡 내밀 때

그예 목이 메어 냉수 한 사발 들이켜고 마는

 

나에게는 학교이며

고해소이며 절간인 나의 어머니

 

 

시집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2017)

 

건봉사, 그 폐허

온몸으로 무너진 자에게 또 한 번 무너지라고

넓은 가슴 송두리째 내어주는 그 사람

봄이면 이름 모를 풀꽃들에게 넉넉하게 자리 내어주고

여름에는 우중첩첩 내리쏟는 장대비 꼿꼿이 세워주더니

가을에는 이 세상 슬픔은 이렇게 우는 것이라고

풀무치, 쓰르레미, 귀뚜라미

목청껏 울게 하더니

겨울에는 그 모든 것 쓸어담아 흰 눈으로 태우는

건봉사, 그 폐허

나도 그에게로 가서

그대의 폐허가 되고 싶다

아무렇게 읽어도 사랑이 되는

사랑을 몰라도 눈물이 되는

바람의 집

그대의 종이 되고 싶다

시집 우리는 서로에게 슬픔의 나무이다(1997)

 

 

아무도 부르지 않는 노래 5 (반생)

 

유채꽃밭에 서면 유채꽃이 되고

높은 산 고고한 눈을 보면 눈이 되고

불타오르는 노을을 보면 나도 노을이 되고

겨울하늘 나르는 기러기 보면

그 울음이 되고 싶은 사람아

어디서나 멀리 보이고

한시도 눈돌리지 못하게 서 있어

눈물로 씻어내는 청청한 바람이려니

지나가는 구름이면 나는 비가 되고

나무를 보면 떨어지는 나뭇잎 되고

시냇물을 보면 맑은 물소리가 되는 사람아

하루 하루를 거슬러 올라와

깨끗한 피돌기로 내 영혼에 은어떼가 되리니

나는 깊어져 가고

너는 넓어져 가고

그렇게 내밀한 바다를 만들어가는

어디에 우리의 수평선을 걸어 놓겠느냐

목숨아, 사랑아

 

사진시집 아무도 부르지 않는 노래 (1991)

 

 

당신에게 말 걸기

 

이 세상에 못난 꽃은 없다

화난 꽃도 없다

향기는 향기대로

모양새는 모양새대로

, 이쁜 곷

허리 굽히고

무릎도 꿇고

흙 속에 마음을 묻은

, 이쁜 꽃

그걸 모르는 것 같아서

네게로 다가간다

당신은 참, 예쁜 꽃

 

시집 당신에게 말걸기 (2007)

 낭송회 회장단

짧은 강연

 

기념촬영

 

삼척문인협회 회장 강동수 시인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