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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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놀다 (2022.12)

밤에 쓰는 편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1. 15. 15:15

 

밤에 쓰는 편지

 

 

먹을 갈아 정갈해진 정적 몇 방울로 편지를 쓴다

어둠에 묻어나는 글자들이 문장을 이루어

한줄기 기러기 떼로 날아가고

그가 좋아하는 바이올렛 한 묶음으로 동여맨

그가 좋아하는 커피 향을 올려드리면

내 가슴에는 외출중의 팻말이 말뚝으로 박힌다

내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그의 먼 안부

동이 트기 전에 편지는 끝나야한다

신데렐라가 벗어놓고 간 유리구두처럼

발자국을 남겨서는 안 된다

밤에 쓰는 편지는 알코올 성분으로 가득 차고

휘발성이 강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그가 깨어나 창문을 열 때

새벽 하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푸르러야 한다

맑은 또 하나의 창이어야 한다

오늘도 나는 기다린다

어둠을 갈아 편지를 쓰기 위하여

적막한 그대를 호명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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