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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지금은 나무들이 간신히 노동의 수고를 갈무리하는 계절입니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9. 27. 11:04

[나무편지]

지금은 나무들이 간신히 노동의 수고를 갈무리하는 계절입니다

  ★ 1,199번째 《나무편지》 ★

  큰 나무 그늘에 자리잡고 보랏빛 앙증맞은 꽃을 그리도 예쁘게 피워내던 맥문동 꽃송이가 시들어 떨어졌습니다. 그 자리에 지난 계절을 견뎌온 흔적으로 동그란 열매가 돋아났습니다. 지상의 모든 생명을 먹여 살릴 양분을 지으려 빛과 물과 바람을 엮어내는 광합성의 긴 노동의 계절을 갈무리하는 신호입니다. 아직은 노동의 수고를 내려놓을 때가 아닙니다. 어쩌면 꽃 지고 잎까지 지고난 지금이 이 작은 생명에게는 가장 치열한 순간일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북풍한설의 겨울을 무사히 보내고 다시 다가오는 계절에 잎 돋우고 꽃 피울 후손을 키울 씨앗을 키울 막중한 임무가 남아있으니까요.

  가을 바람 선선합니다. 바삐 살아가느라 온전히 떠올리기조차 힘들었던 어머니 아버지를 떠올리고, 산소도 찾아야 하는 한가위 명절, 추석입니다. 계절의 흐름이 요동치는 이 즈음, 우리네 살림살이의 신호인 절기가 딱 맞아 떨어지지 않아, 부모님 차례상에 먼저 올리고 우리가 함께 나눠 먹어야 할 가을 곡식과 과실들이 아직 제대로 익지 않은 것도 많고, 잘 익은 과실들은 제법 비싼 값을 치러야 구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 이 땅에 우리를 살게 하신 부모님들을 떠올려야 하는 추석 날 아침 차례 상에 올릴 과일과 곡식만큼은 잘 골라내야 하겠지요. 명절 며칠 앞둔 주초부터 마음이 분주해지는 까닭입니다.

  지금은 나무들도 한창 분주합니다. 주말에 들러본 바닷가 숲의 나무들은 너나없이 모두가 씨앗을 돋워올리고 한해를 마감하느라 안간힘을 다 하고 있었습니다. 잎 한 장 없이 피어난 꽃무릇 꽃 화려한 숲의 길섶에 서 있는 모든 나무들에 갖가지 빛깔의 씨앗 열매들이 올라왔습니다. 이제 막 돋운 열매들이어서 빛깔은 거개가 연초록 빛입니다. 보석처럼 아름다운 빛깔의 열매가 있기는 해도 대개는 아직 덜 익은 빛깔입니다. 바람 더 선선해지기 전에 나무들은 남은 힘을 다해 열매를 키울 겁니다. 그래야 언제나처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으니까요.

  오늘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리는 열매의 사진은 위에서부터 맥문동, 다정큼나무, 벽오동 열매이며, 맨 끝의 사진은 좀 지나면 새빨갛게 익어갈 호랑가시나무 열매입니다.

  올 추석 연휴는 개천절까지 이어지며 긴 편이지요. 고향 다녀오시는 길이 조금은 편안할 수 있지 싶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편안하게 뵙고 넉넉한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23년 9월 25일 아침에 1,199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규홍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