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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세설신어

[161] 과언무환(寡言無患)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8. 28. 16:30

[정민의 세설신어]

[161] 과언무환(寡言無患)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6.05. 23:08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급한 사람은 책을 읽거나 남이 말하는 것을 들을 때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질문을 던진다. 어떤 사람이 '맹자'의 공손추 장을 배우고 있었다. '맹자께서 평륙(平陸)에 가서 그곳의 대부에게 말했다'는 대목이 나오자, 대뜸 스승에게 물었다. "선생님! 평륙 대부는 이름이 전해지지 않나요?" 선생님이 말했다. "좀 더 읽어 보아라." 더 읽자 '이것은 거심(距心)이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가 다시 물었다. "이름은 알겠는데, 성은 뭡니까?" "그 밑의 글을 더 읽어 보렴." '그 죄를 아는 자는 오직 공거심(孔距心)이다.' 그가 그만 머쓱해져서 경솔히 물은 조급함을 후회했다.

 

하천도정(夏川都正)이라 불린 종실(宗室)이 있었다. 성품이 사납고 난폭하다는 풍문이 있었다. 그가 세상을 뜨고 몇 해 뒤에 지체 높은 관리들이 공적인 자리에서 하천도정을 헐뜯는 말을 했다. 그 중 어떤 사람이 그의 악함에 대해 비난했다. 좌중에 있던 한 사람이 문득 정색을 하더니 낯빛을 고쳐 말했다. "하천은 돌아가신 내 아버님이오. 당시 종친 중에 못된 자가 있어 마을에서 제멋대로 악행을 일삼으면서 선인의 이름을 빙자한 일이 있었소. 선인께선 실제로 그런 일이 없었소." 좀 전의 사람은 진땀을 흘리며 얼굴이 시뻘겋게 되어 죽을 죄를 일컬으며 땅속이라도 파고 들어갈 듯이 했다. 홍길주(洪吉周)의 '수여난필(睡餘瀾筆)'에 나오는 일화다.

 

한번은 손님 중에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자가 있었다. 홍길주가 천천히 말했다. "내가 지금 몹시 피곤해서 말하기가 어렵다네. 그대가 꼭 말해야겠거든 내가 대답할 필요가 없는 말만 골라서 하는 것이 어떻겠나." 또 말 많은 사람이 있었다. 홍길주가 말했다. "여러 사람과 모여 얘기할 때마다, 누가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자네가 모두 대답을 하는군. 그렇지 않으면 자네가 먼저 말을 꺼내곤 하지. 자네 물러나서 말의 많고 적음을 한번 헤아려 보게. 자네 혼자 말한 것이 다른 사람이 말한 것을 합친 것보다 같거나 더 많을걸세. 말 많은 것을 경계하는 것은 잠시 접어두더라도 이렇게 한다면 어찌 정신이 손상되지 않겠는가?"

 

말이 적으면 근심이 없다(寡言無患). 말을 삼가면 허물이 없다(愼言無尤). 세상 구설이 다 말 때문에 생긴다. 어이 삼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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