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20년간 써온 ‘조용헌 살롱’의 대부분은 전남 장성군 축령산의 편백숲에서 썼다. 처음 살롱을 쓸 때는 일주일에 3회를 썼는데 심리적인 부담감이 뒤따랐다. 하나 쓰고 나면 다음 날개가 다가오는 풍차 밑에 앉아 있는 심정이었다. ‘나는 전생에 어떤 업보가 있길래 이처럼 원고 마감에 시달리고 살아야 하는가’라는 자문자답을 하였다. 원고 부담이 들 때마다 편백숲으로 들어갔다. 조상 혼령들의 계시에 의하여 편백숲 들어가는 초입에 글방인 ‘휴휴산방’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편백숲은 피톤치드가 풍부하다. 피톤치드 탓인가. 60년 넘게 자란 쭉쭉 뻗은 편백나무 숲을 2시간 정도 걸어 다니다 보면 이상하게도 머리가 상쾌해졌다. 칼럼 제목이 떠오르고, 기승전결 줄거리가 잡혔다. 흐릿한 생각이 명료해졌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흐뭇해 지면서 낙관적인 상태로 변하곤 하였다. 숲은 사람을 낙관으로 만든다. ‘아! 문필업자에게는 숲길 산책이 생명이로구나.’ 알고 보니까 괴테, 디킨즈, 헤밍웨이 같은 문호들도 바로 옆에 산책할 수 있는 숲길이 있었다. 희랍의 소요학파도 숲길이 낳은 학파였다. 교토학파가 걸었던 ‘철학의 길’도 난젠지(南禪寺)부터 시작되는 2.5㎞의 개울가 숲길이었다.
휴휴산방에서 살면서 인생이 즐겁다고 느낄 때는 시인, 소설가, 사진작가, 화가 친구들과 같이 저녁을 먹고 어두컴컴한 편백숲길을 걷는 일이었다. 밤이지만 하늘의 달빛이 서로의 가슴을 비춰줄 때 나누는 그 정담은 ‘빨리 죽지 말고 조금 더 살다가 죽자’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존재의 기쁨을 어디서 느낄 것인가? 울진 금강송의 소나무 향기가 묵직한 베토벤 같다면 나에게 장성 편백숲은 상쾌한 모차르트 같다. 그 피톤치드의 상쾌함은 ‘치유의 숲’이라는 호칭을 얻게 하였다. 그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병을 앓는 환자들이 이 숲을 많이 찾는다. 하루 6~7시간을 숲속에서 보낸다. 깔개를 깔고 앉아서 놀기도 하고 낮잠도 자는 숲이다.
1956년부터 조림가 임종국(林種國,1915~1987) 선생이 자기 생명과 재산을 바쳐서 100ha에 걸쳐 조림한 편백숲. 70년의 세월이 축적된 편백숲은 ‘죽지 마’라고 외치는 치유 공간이다. 그러나 이 숲도 파괴될 운명에 처했다. 금강송은 산불이 문제이지만 편백숲은 개발업자들의 ‘돈독’이 문제이다. 숲속에 폭 8.6m 아스팔트 도로를 내겠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난개발의 조짐이다. 장성군의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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