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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곡조의 동요를 떠올리며 돌아보게 된 슬픈 전설의 ‘눈꽃나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5. 9. 17:56

[나무편지]

슬픈 곡조의 동요를 떠올리며 돌아보게 된 슬픈 전설의 ‘눈꽃나무’

 

  ★ 1,179번째 《나무편지》 ★

  어린이날에서 시작해 어버이날 스승의날이 이어지는 '가족의 달' 오월입니다. 라디오에서도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이 이어집니다. 엊그제 어린이날도 그랬습니다. 어린이날에 맞추어 어린 시절에 부르던 노래들이 흘러나왔습니다. 굳이 집중하지 않고 귓등으로 흘려 들었지만, 우리가 어릴 때 불렀던 노래들은 대부분 슬픈 가락을 가졌다는 걸 새삼 돌아보게 됐습니다. 모든 일이 즐겁고 희망으로 가득차야 할 어린 시절에 우리는 저리 슬픈 노래를 불렀던 겁니다. 가락은 단조로 이어지고, 노랫말은 ‘돌아온다던 오라버니’는 돌아오지 않고, ‘굴 따러 나간 어머니’를 홀로 기다리던 아이는 지쳐 잠드는 걸로 돼 있습니다. 죄다 슬픕니다.

 

 어린이날 즈음에 활짝 피어나는 이팝나무 꽃에 담긴 전설도 어이없을 만큼 슬픕니다. 옛날 몹시도 가난하게 살던 한 여자 아이가 잘 사는 집으로 시집을 갔지요. 고된 시집살이에 힘겹게 살던 중에 제사를 올려야 하던 날, 생전 하얀 쌀밥을 지어본 적 없던 그 아낙은 제삿밥을 잘 지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부뚜막을 지키다가 솥뚜껑을 열고 밥이 잘 지어졌는지 한술 떠 맛을 보았습니다. 그때 마침 시어머니가 부엌문을 열고 들어오며 ‘제삿밥을 먼저 떠먹는 못된 며느리’라고 심하게 트집을 잡았습니다. 그렇잖아도 시집살이가 힘들던 차에 억울함을 견디지 못한 아낙네는 뒷동산으로 뛰어가 목을 매어 죽었어요. 그리고 얼마 뒤 여인의 무덤가에서 한 그루의 나무가 자랐고, 그 나무에서는 쌀밥 구경 제대로 못했던 가난한 여인의 한을 풀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쌀밥을 닮은 하얀 꽃이 소복히 피어났습니다.

  이팝나무에 얽혀 전해오는 전설입니다. 예전에 이팝나무는 우리나라의 중부지방에서는 자라기도 어려웠을 만큼 따뜻한 남부지방에서만 자라던 나무입니다. 그래서 오래 된 이팝나무는 중부지방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유행처럼 우리의 중부지방에서도 이팝나무를 가로수로 심어 키우게 됐지요. 예전의 남부지방만큼 따뜻해진 중부지방에서 이팝나무를 볼 수 있게 된 것이 고작해야 10년 조금 넘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대개는 남부지방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팝나무는 오월 오일 어린이날 즈음에 꽃 피우기 시작해서 가족의 달인 오월의 끝자락에 이를 때까지 계속 꽃을 달고 우리의 도시를 환하게 밝혔습니다.

  꽃 피는 순서가 완전히 망가진 올 봄에는 어린이날 피어나기 시작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어린이날 즈음에 낙화를 시작했을 지경으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특히 어린이날 앞뒤에 쏟아진 비에 이팝나무 꽃잎은 무심히 떨어졌습니다. 벚꽃 개화가 지난 해에 비해 1주일 정도 빨라졌다고 했습니다만, 이팝나무의 개화는 보름도 더 앞당겨진 듯합니다. 며칠이나 더 빨라졌느냐는 이제 별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이팝나무의 여러 이름 가운데에는 입하 立夏 즈음에 피어나기 때문에 입하목 立夏木 이라고 부르다 이팝나무가 됐다는 이야기도 설득력이 떨어지게 생겼습니다. 올 입하는 지난 토요일인 6일이었는데, 이 즈음에 피어난 게 아니라 지기 시작했으니까요.

  이팝나무는 여러 개의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입하목처럼 ‘한자어에 기원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라고 《조선식물향명집》의 주해서로 최근 출간한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에는 풀이돼 있습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이팝나무의 다른 이름으로는 니팝나무, 니얍나무, 니암나무, 뻣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거수노수명목지》라는 책에는 이팝나무를 ‘백반목 白飯木’이라고 기록돼 있다고 했으며, 이팝나무의 자생지인 전라남도 지방에서 쓰는 지방말로 쌀밥을 ‘이팝’으로 부른다고 적어두었습니다. 이팝이 쌀밥의 전라남도 지방말이라는 건 조선어학회의 《조선어표준말모음》이라는 책에 기록돼 있다고 합니다.

  결국 이팝나무는 쌀밥을 닮은 꽃을 피우는 나무라는 데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는 게 가장 적당하겠지요. 하지만 예전 어린 아이들이 슬픈 곡조의 노래를 부르는 걸 당연한 일처럼 여겼던 사정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바뀌었듯이 이팝나무 꽃을 보고 쌀밥을 떠올리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되었지 싶습니다. 이팝나무 꽃에서 쌀밥을 떠올리는 건 아마도 하얀 사기로 된 사발 위쪽으로 사발보다 더 높이 덮어 씌운 고봉밥을 먹던 시절에나 가능한 일이겠지요. 예전 사발의 절반도 안 되는 조그마한 밥그릇에 그나마 제대로 채우지도 않은 잡곡밥이나 현미밥을 더 많이 먹는 지금이야 이팝나무 꽃에서 쌀밥을 떠올리는 게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이팝나무의 학명은 Chionanthus retusus Lindl. & Paxton인데요. 여기에서 속명인 Chionanthus 는 그리스어의 눈을 뜻하는 chion 과 꽃을 뜻하는 anthus 가 합쳐지면서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지금 우리 현실을 바탕으로 하면 ‘이팝나무’라는 이름보다는 ‘눈꽃나무’라는 학명이 훨씬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라남도 지방말을 잘 모르는 다른 지방 사람들이라면 ‘이팝나무’의 이름에 담긴 속뜻을 이해하기도 어려울테고요. 여름을 일으킨다는 입하 즈음에 난데없이 큰 나무 전체에 하얗게 눈 내린 듯 피어난 꽃을 보고 ‘눈꽃나무’라 부르는 건 자연스럽지 싶습니다.

  어린이날 지나고 어버이날 아침입니다만, 어린이날에 라디오에서 여러 번 되풀이해 들어서 그런건지, 어린이날 즈음에 피어나는 걸로 알던 이팝나무 이야기를 쓰다보니 그런건지, 슬픈 곡조의 동요가 자꾸만 입에서 맴돕니다. 처음 이름에 담겼던 의미가 퇴색하고 사라져가는 건 사람살이가 변해가듯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그렇다고 어디 우리의 가난하고 슬펐던 옛날 살림살이가 바뀌기야 하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눈꽃처럼 피어난 이팝나무 꽃을 바라보며 그 이름에 담긴 옛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잠시라도 돌아보는 건 그래서 더 뜻있는 일이지 싶습니다.

  '봄비'라기에는 꽤 굵은 빗줄기가 내린 주말 지나고 길 위에 떨어져 흐트러진 이팝나무 꽃길을 걸으며 옛 사람살이를 돌아보게 되는 어버이날 아침입니다. 뜻 깊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2023년 5월 8일 '어버이날' 아침에
1,179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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