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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원의 말글 탐험

문장의 다양성 죽이는 '것'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 10. 13:38

[양해원의 말글 탐험]

문장의 다양성 죽이는 '것'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6.09.29 03:09
 
 
 
 
 

젖먹이가 잠들면 아버지는 으레 머리맡에 앉았다. 오르로 돌아가는 머리통이 행여 너부죽해질세라 반듯이 눕히고자 함이었다. 바로 해 놓으면 돌아가고, 바로 할라치면 또 뽀드득…. 그예 짱구가 된 놈이 아장댈 무렵부터 장난감 굴리듯 하며 공것(空-)이라 놀려댔다. 말뜻으로는 '거저 얻은 물건'인데, 예전 어른들은 막내를 더러 그리 불렀다.

 

고것, 부엌것, 상것, 아랫것, 어린것, 요것, 저것, 젊은것, 잡(雜)것, 좀것, 촌(村)것, 행랑(行廊)것…. 귀여워서든 낮잡아서든 사람을 이를 때 이렇게 '것'을 섞어 쓴다. 홀로 쓸 때도 쓰임새가 푸지다. 헤퍼 보이는 '것' 또한 제법이어서 그렇지.

 

'6급 별정직 연봉은 4000만원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기는 서아프리카 지역에 기반을 둔 조직의 주요 수법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SLBM 개발 수준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전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4000만원대로, 수법으로, 때문으로' 이렇게 바꾸면 어떤가. 하나같이 괜스레 들어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번에는 명사형과 견주어 보자. '당장 일본과 같은 예·경보 시스템을 갖추는 건(갖추기는) 쉽지 않다.' '휘파람새는 울음소리가 크고 아름다운 것으로(아름답기로) 유명해요.' '원전의 경제적 가치가 그만큼 높다는 것을(높음을) 의미한다.' 섣불리 가타부타할 수는 없지만, 괄호 안이 좀 매끄럽지 않을까. 마지막 문장은 '높다는 뜻이다'로 한결 부드럽게 할 수 있다.

 

'본 것으로 알려졌다' '강력한 것으로 평가받는' '열었다는 걸 들었으나'는 '보았다고, 강력하다고, 열었다고'처럼 간접 인용(引用) 형식으로 대신해도 괜찮겠다.

 

이렇게 '것'은 문맥에 따라 얼마든 달리 꾸밀 수 있다. 물론 써야만 할 '것'도 상당하고 때로는 말 줄임 효과까지 있다. 다만 문장 다양성을 살리고자 좀 더 고민했으면 좋겠다. 언어의 풍요로움, 경쟁력이 이런 데서 비롯하지 않을까.

 

'공것'이었던 막내는 어린 시절이 가물가물한데, 아버지는 막내 이름마저 가물가물하다. 공것이 정말 무슨 뜻이었는지 당신 말씀으로 들려줄 수 있을까. 아버지 잃고 나면 서럽다 울 겠지. 그러곤 오래지 않아 잊을 테지. 자식이란 그런 것인가, 삶이 그런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