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수입산'이라니, '수입'이라는 나라도 있나?
명절이면 당숙(堂叔) 댁으로 심부름 다니곤 했다. 들고 간댔자 정육점에서 신문지에 둘둘 싸 주는 쇠고기 두어 근. 버스를 몇 번 갈아탔다. 터덜거리는 머릿속에 이게 한우(韓牛)일까 하는 궁금증은 없었다. 강산이 서너 번 바뀌었는데 세속(世俗)이야 오죽할까.
"요즘 백화점이나 마트 가보면 명절 선물을 준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올 추석에는 수입산 선물 세트가 인기라고 하는데요.(뉴스 진행자) ~ 양은 수입산 선물 세트가 2배 많은데 값은 절반이 조금 넘습니다. 어려운 경기에 올 추석 저렴한 수입산 선물 세트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기자) ~ 국산이 너무 비싸서… 수입산을 작게나마 할까도 싶습니다.(소비자)"
넘쳐 나는 외국산도 모자라서 수입산(輸入産)까지 판친다. 이 '산'은 어디서 또는 언제 난 물건을 나타내는 접미사다. 칠레든 아프리카든, 아니면 2015년이든, 마땅히 장소나 시기가 앞에 와야 한다. 굳이 '수입'을 드러내려면 '산' 없이 '수입 선물 세트' 하면 된다. 그런데 '수입산' 했으니 '수입이라는 곳에서 온 물건'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본 없는' 것이 뭍에도 물에도 널렸다.
비슷한 말이 있다. '리우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반정부 세리머니'를 펼친 페이사 릴레사(26·에티오피아)가 결국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귀국행(歸國行)의 '행'은 어느 곳을 향함을 이르는 접미사. 한데 '어느 곳'이 아니라 '귀국' 뒤에 붙는 바람에 그야말로 행방불명이다.
한자어는 우리말 어휘(語彙)에서 못해도 절반이다. 그러니 이런 기본 한자의 뜻과 쓰임새만큼은 야무지게 가르치고 배웠으면 좋겠다. 한글 전용(專用)이냐 한자 혼용(混用)이냐 하는 다툼은 그다음 문제다.
일곱 밤 지난 아침, '출국행' 비행기에서 '수입산' 차례상 받는 조상님은 안 계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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