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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집 1993

『칼과 집』(1993)해설: 사회적 존재의 탐색과 휴머니즘의 길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10. 13. 15:51

칼과 집(1993)해설

 

사회적 존재의 탐색과 휴머니즘의 길

박윤우 문학평론가∙서울대 강사

 

 

詩가 언어를 통한 현실적 재의 발현인 한, 사람이 사는 일로부터 무관한 시쓰기란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람 사는 일을 어떻게 말하는가에 이를 때, 우리는 대상으로서 삶의 현실을 바라보는 시인의 태도를 문제 삼지 않으면 안된다. 시쓰기란 진실 여부를 규명하기 위한 방법론적 도구가 아니라, 진실 자체에 접근하려는 끊임없는 인식과정의 드러냄, 즉 행위화이기 때문이다. 소이 해체의 방법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해체’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믿음은 그야말로 현상이 본질을 대신하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 철저히 종속된 것이며, 그 언어들은 구조 속에 함몰된 인간에 대한 무책임한 발관이자 자의적인 동조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나호열의 시집 『칼과 집』은 내성적 태도와 치열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사람 사는 일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드러내보임으로써 성실한 시쓰기의 한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나호열의 시쓰기 과정에서 마련된 성실성은 무엇보다도 관념적인 자의식의 세계를 꾸밈없이 언어화하려는 의도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한 편으로 낭만적 서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기는 하지만, 삶에 짙게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살아 움직이는 갈등의 실체로 파악함으써 현실감 있는 내면적 성찰의 토대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진지함을 동반한다.

 

 

살아남기 위하여

단 하나 남은

잎마저 떨구어 내는

나무들이 무섭다

저 혼신의 몸짓을 감싸는 차디찬 허공

슳픔을 잊기 위해서

이 큰 슬픔을 안아들이는

눈물 없이는

봄을 기다릴 수 없다

 

- 「겨울 숲의 은유」 전문

 

곧은 생각으로 걸어왔다

가장 높은 깃발로

매달리기 위하여

 

내려다보면

구곡양장

사나운 채찍질뿐인

저 길

 

- 「한계령」 전문

 

 

간결한 독백의 어조로 드러나는 화자의 내면적 삶의 여로는 ‘곧은 ㅅ갱각’이라는 한 마디로 압축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그것은 현실적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순수한 삶을 염원하는 것과 같은 청교도적인 것일 수도 있고,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실천하고자하는 박애주의적인 것일수도 있지만, 화자에게 있어서 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삶이 내용보다는 삶의 현실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다. 즉 “사나운 채찍질”이자 “슬픔”으로 다가서는 삶의 현실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려는 태도가 정립될 수 있음을 “슬픔을 잊기 위해서는 더 큰 슬픔을 안아들이는 눈물”이 필요하다는 숨김없는 깨달음의 목소리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므로 “나는 길잃은 순한 짐승을 위해 / 열매 하나로 남아 있겠습니다”(「덫」)라든가, “먼 길을 걸었다 /... / 깊고 깊은 / 지친 사람의 마음속에 / 옹달샘이 되려고”(「깊고 깊은 옹달샘」)와 같은 삶에 대한 자기표명의 선언들은 모두 현실을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자기희생적 현실 인식을 스스로 확인하게끔 한다.

 

이러한 현실 인식은 근본적으로 자아와 교섭하는 현실적 삶의 구조와 추이를 자연현상이라는 보편적 인식의 대상을 통해 유추함으로써 대상애 대한 관조적 성찰의 계기를 마련한 데 기인한다. 그런데 나호열의 시에 있어서 자연은 결코 미적 감수성을 유발하는 정태적인 시적 소재로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징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시에 번번히 등장하는 자연적 대상으로서 ‘꽃’이나 ‘산’,‘들’, ‘숲’, 및 ‘구름’,‘눈’, ‘비’와 같은 자연 현상과 ‘가을’,‘겨울’ 등의 계절은 모두 그자체가 시적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 자율적이고 자기규정적인 존재가 아니다. 시인은 이러한 자연현상들을 靜物로서 대상화하지 않고 다만 시간적 존재인 시인의 삶과 의식 속에 편입되는 動的이고 과정적인 실체의 이미지로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등진다는 것이

어디쯤 숨는다는 일일까

시름낀 거울 닦아낼 때

심신을 더욱 숨기는

눈색이꽃

얼음을 깨고서 나비떼처럼

묻어 나온다

 

- 「눈색이꽃」 마지막 연

 

푸드득, 산을 뒤틀며

뛰쳐오르는 새들

더덕냄새 풍긴다

도라지꽃이 활짝 핀다

천궁 씨알이 알알이 배이고

나그네는 내리막 길을

휘이

뒷모습만 돌아서 가고

 

- 「비행기재」 부분

 

 

먼 길을 가는 나그네 어깨 위에 내려 앉는다

어둠이 몰려 있는 모닥불 위에 내려 앉는다

침엽수의 머리 위에도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위에도 내려앉는다

상실한 기억들의 무수한 파편

 

- 「눈 2」 1연

 

 

이처럼 나호열의 시에서 자연은 존재의 모습을 비추어 주는 거울이거나, 자아의 상념에 스쳐가는 하나의 배경으로, 혹은 그러한 상념들이 구체화되는 이미지로서 제시된다. 다시 말하면 그에게 자연은 ‘사람이 살아가는 곳’으로서 현존재의 구체적 삶의 과정에 시 · 공간적 배경이 되는 하나의 의미체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의 시는 두 가지 방법론적 독자성을 획득하게 됨을 볼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시적 대상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자기표출적이고 낭만적인 서정의 세계로부터 관찰적이고 사색적인 서정의 세계로 전환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러한 대상 이해, 즉 관조의 태도를 통해 자신이 모색해가는 삶의 의미에 대해 추상적인 상념을 구체화할 수 있는 방법론을 발견하고 있다는 것이다.

 

 

회전열차가 돈다

아이를 찾습니다

돌연한 스피커 소리에

감짝깜짟 놀라며

산탄총알처럼 새들이 날아가고

여기가 천국이다

아이스크림이 있고

재롱을 떠는 원숭이도 있으니

비단잉어는 자급능력을 상실한 채

화사한 무늬를 못 속에 풀어 놓는다

오,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정답을 알면서도 오답을 적어내며

드림랜드 앞을 지나쳤던 지난 세월

굉음을 내며

또 다시 회전열차가 돈다

 

- 「드림랜드」 전문

 

마음을 다친 사람들이 양수리에 온다

날갯죽지를 상한 물총새

뛰어들까 말까 망설이는 갈대숲이

귓가에 물소리를 가까이 적신다

푸른 리트머스 시험지에 녹아

깊이를 알 수 없는 흐름으로 덮여 가고

가진 것 없으면서 가난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생명을 키운다

 

- 「양수리에서」 부분

 

 

해머 소리에 한 소절씩 석양이 떨어지고 있다

한 세상을 굴러온 바퀴들 몸을 버리고 있다

썩어가는 혀처럼 길어지는 그림자 벌판으로 가서 눕고

조각난 시간의 뼈는 잡초 사이에서 뻘겋게 녹이 슬기 시작한다

일그러지고 망가진 얼굴에서 지나온 길이 언뜻 비친다

조만간 어둠이, 완강했던 철판과 함께 그를 묻어버릴 것이다

 

- 「폐차장 노인」 부분

 

 

여기서 보듯 자연은 곧 ‘세상’이자 ‘세월’과도 같은 보디 폭 넓은 사색의 터전이 되고 있는 바, ‘드림랜드 앞을 지나쳤던 지난 세월’을 반성하는 자아의 모습이나, ‘마음을 다친 사람들’과 ‘한 세상을 굴러온’ 폐차장 노인의 “일그러지고 망가진 얼굴”이 말하는 세상살이의 이야기는 모두 숨은 화자의 관조적인 시선 속에서 객관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 이야기는 물론 힘겨운 살아가기의 이야기이다. 무수한 시도와 오류, 혹은 현실적 좌절과 삶의 회한과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화자의 시선에 포착되는 이러한 삶의 이야기는 상당 부분 낯설음의 분위기를 동반한 체 팽팽한 시적 긴장감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이야기들, 즉 ‘세상’과 ‘세월’의 일들이 화자와의 거리감을 강화시키는 일종의 소멸의 이미지로 구상화되는데 원인이 있다. 즉 “푸른 리트머스 시험지에 녹아 흐르는”것과 같은 삶에 대한 인식, “썩어가는 혀처럼 길어지는 그림자”나 “잡초 사이에서 빨갛게 녹이 스는 조각난 시간의 뼈”와 같은 시간 의식, 그리고 새들의 현란한 비상과 회전열차의 굉음 속에서 파악되는 존재의 공간 의식 등은 현실에 타협해서 살아가는 살아가지 못하는 비극적 삶의 의미를 부각시켜 줌으로써, 대상에 대한 화자의 관조적 인식이 근본적으로는 현실과 내면의 대립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에게 현실과 내면의 대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물론 시인이 시쓰기의 근원적 물음으로 제출한 사람 사는 일과 관련된 것이다. 시인의 관조적 방법론이 이처럼 비극적 현실 인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현대 사회를 사는 인간들의 현실적 자기 소외 현상과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추구하는 내면적 의지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간극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안주하고 싶은 욕망과 안주할 수 없는 현실 사이의 대립은 자아의 내면을 드러냄에 있어 그 존재의 사회적 근거를 탐색하지 않을 수 업쇼게 한 것이며, 아울러 그것은 시에 있어 ‘낯설음’의 형식으로 구조화된 것이다.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 우리는 적어도 나호열의 시쓰기가 제출한 사람 사는 일의 구체적 모습과 그 의미를 진지하게 살펴볼 수 있다. 그의 시집 1 부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들은 모두 사람 사는 실제적 터전으로서 ‘집’에 관한 것이다. 그는 일종의 序詩격인 「집과 무덤」에서 “저녁에 닿기 위하여 새벽에 길을 떠난다”라는 단 한 줄의 상징적인 아포리즘을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는 삶의 현실적 의미를 구체화하려는 자신의 시도와 인식을 명백히 하고 있다. 한마디의 상징적 진술로 제시된 삶의 현실적 의미란 바로 ‘旅路’의 구조를 표상한다. 말하자면 삶이란 존재의 집을 찾기 위한 끝없는 방랑의 길이며, 그 목적지에는 ‘무덤’이 가로놓여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집’이 곧 ‘무덤’이 되는 병치은유의 구조 속에서 사람 사는 일은 항상 어두운 그림자와 찬 바람 곁에 선 역설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즉 ‘집’은 삶이요 생활의 연속성이자 존재의 폐쇄성과 불연속성을 강제하는 것으로 파악하지 않을 수 없게끔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통해 나호열의 시에서 내면적 사색은 우리 사회의 현실적 구조를 꿰뚫는 통찰력을 확보하게 됨을 볼 수 있다.

 

서울시민입니다

유목민입니다

뿌리를 내리는 일에는

정말이지 관심이

없습니다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도 또

겨울입니다

 

- 「자술서」 전문

 

律法과

집들이

비스듬히

기울고 있다

 

이제는 하늘을 기어오르든지

땅밑으로 꺼져가든지

푸른 한숨이

누더기 옷을

벗고 있다

 

- 「벽제행」 전문

 

한국의 텃새 시리즈가 끝나고 곧 이어 사당동, 상계동철거민 농성사태가 한 장면씩 잘려 나옵니다저녁식사가 끝난 후, 나른함이 행복처럼 골고루퍼집니다 까치는 왜 나무에 살아 하고 어린 아들이물어 봅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습니다. (새니까?)까치는 일정한 규격의 집을 짓습니다 위대한 자연의섭리라고 아나운서는 말했습니다 욕심을 내어 크게도작지도 않게 집을 꾸립니다 전세도 없고 월세도 없습니다사당동, 상계동 지역에는 공룡같은 아파트군이 몰려오고있습니다 이 겨울을 지낼 따뜻한 보금자리를 달라고외치며 철거민들이 돌을 던지는 순간, 화면이 바뀌어버립니다

 

- 텃새1,2

 

존재의 뿌리내리기가 힘겨운 현실적 고통을 수반하는 것임을 시인은 유목민으로의 존재 인식을 통해 선명하게 제시한다. 특히 이러한 방랑의 이미지는 밀폐된 동굴 (알타미라 가는 길)이나 황량한 사막(사막에 살다,파르테논 또는 어머니)의 이미지와 결합되어 자기정체성을 확보할 수 없는 현실의 낯설음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자아낸다. 뿌리 뽑힌 계층에게 존재의 터전이란 그만큼 누더기옷처럼 구겨져 없어지는 현실 저 편의 허망한 꿈일 뿐인 것이다. 적어도 그것이 현실임을 뚜렷하게 자각해 내는 방식이 곧 낯설음의 이미지를 통한 대립적 인식의 표출이다. “집들이 / 비스듬히 /기울고 있다라든지 푸른 한숨이 /누더기 옷을 /벗고 있다와 같이 상징적 이미지를 감각화한 표현들은 화자의 우울한 내면을 현재화함으로써, 동시에 현실이 비극적 단면에 대한 정서적 연관을 가능케 한다. 말하자면 아러한 표현들은 현대사회의 인간소외는 단순한 철학적 사색의 주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겪는 현실적 삶의 일부이며 사회 전반의 구조적 실제임을 깨닫게 하는 방법적 시도이자 시적 인식의 결과인 것이다.텃새에서 이러한 인식은 TV라는 간접적 인식 매체를 통해 알레고리화된 현실 비판으로 구체화되기도 하거니와, 이러한 知的 방법들은 결코 현실을 추상화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러한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현실의 사회적 구조와 그에 대한 시인의 현실적 인식을 구체화하려는 의도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현실성을 갖는다.

 

나호열의 이러한 현실과 사회적 존재에 대한 탐구는 상계동연작시를 통해 휴머니즘에 바탕한 하나의 정연한 시적 논리로 형태화되어 있다. 즉 시인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집약인 도시적 삶의 형태를 상계동 재개발지역이라는 구체적 공간을 통해 탐색함으로써 존재의 터전이 갖는 의미를 보다 현실적인 모습으로 드러내보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낯선 사람들이 낯설게 살고 있다날이 갈수록 낯선 사람들은낯 선 사람들 사이에서 편안하게 묻히는 법을 배우고낯설어져야 잠이 잘오는 병에 걸린다앞집과 뒷집의,일층과 이층의벽들이동아건설 창동공장에서실려 나온다 끊임없이나는 어디에든따뜻한 알을 낳고 싶다

 

- 동상이몽 상계동 . 1부분

 

하늘에도 빽빽한 별들의 집,그래도 텃밭같은 나의 희망은아직 넉넉하다꽃이 되든지나무를 심든지아니면 좀 더 기다려야 할씨앗을 뿌리듯이나의 밥은 희망이며희망은 나의 목숨,난파당한 유령의 섬으로 흘러가고흘러오는 도시의 밤유리를 잔뜩 먹여 얼레를 풀어나는 가장 순한양들을 방목한다 - 별바라기 상계동 . 16부분

 

재개발로 인한 철거민들의 유랑뒤에는 아파트 단지의 건설과 삶의 낯설음이 자리잡고 있다. “거대한 감옥”(수락산하 상계동 27)이자 벽으로 둘러싸인 존재의 갇혀진 공간 속에서 시인은 다시 한번 불모지로 변해가는 세상내가 네가 아님을 열심히 증명하려는”(가면무도회 상계동.20)비인간화된 현실을 우울하게 확인한다. 그러나 시인에게는 =무덤의 현실을 정당히 비판할 수 있는 내적 토대가 함께 마련되어 있다. 그것은 곧 현실을 넘어서는 꿈으로서 인간성 회복에의 신념이다. “나는 어디에든 / 사람들 사이에 / ...... /따뜻한 알을 낳고 싶다든가 나는 가장 순한 /양들을 방목한다는 소망의 주관적 표출이 부조리한 현실의 객관화와 병행할 수 있는 시적 방법론을 시인은 꿈의 상상력을 통해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 길은 언제쯤 개통될까”(사막에 살다 상계동 2라는 독백은 상계동연작시 전편에 드러나는 화자의 현실에 대한 내적 인식의 직접적 진술들을 대사회적 발언으로 확산시켜주는 매게 역할을 한다. 즉 끊임없는 여로로서 존재의 현실은 사회적 존재로서 자아가 인식하는 삶의 현재의 순간순간에 명확하게 떠오르는 것이며, 그 순간들의 인간적 의미를 진지하게 인식하는 것이 곧 현실과 자아의 내면적 대립을 지양, 극복할 수 있는 길인 것이다.

 

나호열의 시집칼과 집은 이처럼 모색의 글쓰기로 일관되어 있다. 이것을 만일 성실한 시인의 방향 감각이라고 한다면, 그의 시는 싸늘하리만치 냉정한 시선과 부드럽고 따뜻한 시선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 방향감의 폭과 깊이를 가늠하게 해준다. 그것은 곧 그의 시가 보여주는 시적 긴장이 시와 현실의 길 위에 선한 휴머니스트의 투영으로 빋아들여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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