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칼과 집 1993

폐차장 노인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10. 2. 11:38

폐차장 노인

 

해머 소리에 한 소절씩 석양이 떨어지고 있다

한 세상을 굴러 온 바퀴들 몸을 버리고 있다

썩어가는 혀 처럼 길어지는 그림자 벌판으로 가서 눕고

조각난 시간의 뼈는 잡초 사이에서 뻘겋게 녹이 슬기 시작한다

일그러지고 망가진 얼굴에서 지나온 길이 언뜻 비친다

조만간 어둠이, 완강했던 철판과 함께 그를 묻어버릴 것이다

해머 소리는 이제 어둠을 두들긴다

힘읋 잃어버린 나사와 못들, 금가지 않은 백미러가 소리 없는

웃음 속에서 적요하게 떨어진다

온갖 사슬을 끊어버리는 붆새의 기쁨을 알고 있는지

염불을 외듯 중얼거림이 툭툭 불거진다

그의 몸속에서 쿨륵대는 해머소리가 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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