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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실상사 등 사찰 순례한 英 생물학 권위자 데니스 노블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8. 2. 13:47

여든다섯 옥스퍼드 석학은 왜 한국 山寺로 떠났나

[아무튼, 주말 -백수진 기자의 담백]
통도사·실상사 등 사찰 순례한 英 생물학 권위자 데니스 노블

백수진 기자

입력 2021.07.24 03:00

 

 

 

 

 

2년 전, 전남 백양사 천진암에서 정관 스님을 만난 데니스 노블 교수(오른쪽). 노블 교수가 독경을 듣고 싶다고 부탁하자 정관 스님은 흔쾌히 허락했다. 노블 교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정관 스님의 금강경 독경을 듣고 명상을 했다"면서 "이번 여행에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 중 하나였다"고 했다. /오래된질문·Noble Asks

 

‘인생에는 왜 괴로운 일들이 일어나는가?’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까?’

 

여든다섯의 옥스퍼드 석학에게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난제가 있었다. 데니스 노블 옥스퍼드대 생리학 명예교수가 삶의 오래된 질문을 안고 떠난 곳은 다름 아닌 한국의 사찰들. 트렁크 하나 끌고 서울 봉은사에서 시작한 여행은 양산 통도사, 남원 실상사, 장성 백양사와 땅끝마을 해남의 미황사까지 이어졌다. 노블 교수의 여정은 최근 책 ‘오래된 질문’(다산초당)으로 출간됐고, 다큐멘터리 ‘노블이 묻다(Noble Asks)’로도 제작 중이다.

노블 교수는 생리학에 수학과 컴퓨터를 접목한 선구자다. 컴퓨터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1960년, 세계 최초로 심장 세포와 근육을 컴퓨터상에 구현한 가상 심장을 개발했다. 가상 심장을 이용해 저렴한 비용으로 신약 부작용을 시험하고,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게 되면서 생리학계에 혁신을 일으켰다. 그 공로로 영국 왕실 훈장인 대영제국 지휘관 훈장(CBE)을 받았으며, 영국 왕립학회 회원이기도 하다.

예일대·도쿄대 등 세계 곳곳에서 초청받아 생명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우리의 생명은 음악과 같다”고 주장한다. 우리 몸 유전자 하나하나가 거대한 오르간의 파이프라면, 우리 생명은 삼만여 파이프가 연주하는 아름다운 음악이라는 것. 2006년 ‘생명의 음악’이란 책을 내기도 한 그는 불교 사상과 자신의 연구에서 유사점을 발견하면서 불교 철학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오래된질문·Noble Asks

# 저처럼 나이가 들어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들면 자연스럽게 두 질문에 집중하게 됩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저의 경우에는 과학자로서 수많은 질문으로 다시 이어졌습니다. 나는 무엇인가? 이 꽃은 무엇인가? 저 나무는 무엇인가? <오래된 질문 300쪽>

 

한국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사찰 여행을 제안했을 때, 그는 “오랫동안 간절히 꿈꿔왔던 일이 이뤄졌다”며 기뻐했다. 현대 과학과 불교 사이의 공통점을 찾고 생명의 진리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기회라 여겼기 때문이다.

2019년 5월부터 한 달 반 동안 한국을 여행하면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에 참석하고, 빗자루를 들고 경내 마당을 청소했다. 실상사의 도법 스님과 원효대사에 대해 토론하고, 미황사에선 달마고도 순례길을 걸으며 금강 스님에게 참선 명상을 배웠다. 넷플릭스 ‘셰프의 테이블’에도 출연한 사찰 음식 대가 정관 스님과 텃밭에서 채소를 따며 함께 요리를 해 먹기도 했다.

영국에 있는 그를 얼마 전 화상 회의 앱 ‘줌’으로 만났다. 한곳을 지그시 응시하는 눈빛엔 여전히 왕성한 호기심이 어렸고, 목소리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또렷했다.

-여든다섯의 외국인이 사찰 여행을 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답니다. 예전에 동아시아 국가를 자주 방문해 강연하며 마루에서 잔 경험이 있거든요. 유일하게 힘들었던 점이라면 아침에 커피를 마실 수 없었던 것?(웃음) 녹차를 마실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죠.”

-한국인에게도 어려운 가부좌 자세는 잘 해냈나요.

 

“옥스퍼드에 있는 불교 사찰에서 가부좌를 배운 적이 있어서 괜찮았어요. 앉았다 일어나기가 더 어려웠죠. 한국에선 염불을 외거나, 부처님을 일컬을 때 경외의 의미로 스님들이 모두 일어났다가 앉더라고요. 제가 올해 여든다섯이니 앉았다가 일어났다 하면 아무래도 무릎이 불편해서…(웃음).”

 

-한국 사찰만의 특징이 있던가요.

 

“태국 사찰에선 거의 들어본 적 없던 ‘금강경’을 자주 외더군요. 나라마다 불경이나 뿌리를 둔 전통이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점이 더 크게 느껴졌어요. 제 생각에 불교는 어떻게 사람들을 도와줄지, 어떻게 사람을 덜 이기적으로, 서로 연대하도록 만들지 고민하는 종교 같아요.”

-스님들과 나눈 대화 중 일부를 소개해준다면.

 

“실상사에서 도법 스님과 원효대사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원효대사의 ‘금강삼매경론’ 중에 씨앗과 열매의 관계에 대한 시(詩)가 있는데요. 씨앗은 열매의 원인이 되고, 열매는 씨앗의 원인이 되니 하나가 성장하면 다른 하나도 함께 성장한다는 내용이죠. 7세기에 쓴 시인데도 생명을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변화하는 과정으로 보는 현대 과학의 상대주의적 관점과 유사합니다. 씨앗과 열매를 서로 독립된 개체로 바라보지 않고, 서로 맺은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거죠. 씨앗과 열매의 끝없는 순환은 DNA와 인간(유기체)의 순환으로 읽어도 어색하지 않아요.”

/오래된 질문·Noble Asks

 

-여행하기 전 예상했던 것과 달랐던 점도 있었나요.

 

“떠나기 전엔, 스님들은 자연에 둘러싸여 실제 사람들이 사는 세상과는 동떨어진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적어도 제가 방문한 한국의 사찰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특히 실상사에서는 많은 청중 앞에서 도법 스님과 대담했는데요. 평범한 사람들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스님의 진심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절에 온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나요?

“다들 영국의 과학자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궁금해하셨죠. 기억에 남는 한 명을 꼽자면 열두 살 난 어린아이였습니다. 발달 장애가 있었는데, 서로 언어가 통하진 않았지만, 가만히 와서 저의 손을 잡더라고요.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람 사이의 고립이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잖아요.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때 사람과 접촉한 일이 얼마나 따뜻한 위안을 주는지 느낄 수 있었어요.”

 

-사찰 여행 중 제일 즐거웠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정관 스님의 암자를 방문했을 때. 스님의 염불을 들을 수 있는지 여쭤보니 흔쾌히 허락하시더라고요. 새벽 4시에 일어나 ‘금강경’ 외는 소리를 듣고 명상 수행을 했어요. 떠날 때쯤 같이 암자를 한 바퀴 돌고 차를 마셨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처럼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며 함께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정관 스님과 직접 사찰 음식도 해 드셨다고요.

“스님을 따라 숲으로 들어가니 채소를 재배하는 텃밭이 있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식물을 해치지 않고 먹을 만큼 양을 딸 수 있는지부터 배웠습니다. 스님 요리 중에선 버섯 요리가 최고였는데요. 버섯을 들기름에 한번 볶고선 다시 보리 엿기름을 입히더군요. 영국에 와서도 생각날 정도라 메이플시럽을 사용해서 만들어 먹곤 합니다. 아, 사찰에서 양파와 마늘을 쓰지 않는 이유도 설명해주셨어요. 성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 절대 먹지 않는다고 하시더군요(웃음).”

 

-처음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20년 전쯤 ‘생명의 음악’이라는 책을 쓰면서 제가 생명을 바라보는 마음이 불교 사상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생명이란 DNA나 두뇌처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어떤 큰 시스템이라고 봅니다. 단백질, 세포, 장기 등 여러 요소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죠. 불교에서도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비슷한 답을 내렸더군요. 모든 것은 이어져 있고, 변하지 않는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아(無我) 사상이 제가 연구하는 시스템 생물학과 굉장히 유사했습니다.”

-어떻게 공부를 시작하셨나요?

“책도 찾아보고, 세계적인 불교계 석학 리처드 곰브리치 교수님과도 대화를 나눴습니다. 옥스퍼드 내의 태국 사찰을 방문해서 명상 수행도 했습니다. 도무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던 삶의 고통스러운 순간에 명상은 아주 큰 도움을 줬습니다.”

데니스 노블 교수의 사찰 여행엔 사제지간으로 만나 인연을 이어온 엄융의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가 동행했다. /오래된질문·Noble Asks

 

# 아내의 긴 투병 생활을 함께하면서,저는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오랫동안 다른 사람을 돌보려면 먼저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보호자고 병간호를 해야 하는 사람이니까요. 아내를 돕고 나 자신을 돕기 위해, 저는 오랜 투병 기간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절망감을 극복해낼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 했습니다. <160쪽>

 

노블의 아내는 오랫동안 우울증에 따른 약물 부작용과 합병증에 시달리다 2015년 세상을 떠났다. 사랑하는 가족의 긴 투병 생활을 지켜보면서 그는 순간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 했다.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지?’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론에 반박했다가 거센 비난을 받았다. 도킨스는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은 유전자의 복제 욕구를 수행하는 생존 기계”라고 주장한다. 반면 노블 교수는 “유전자는 단지 분자일 뿐이며 이기적일 수 없다”면서 “우리는 자신을 통제할 수 있으며 이기적 유전자의 포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고통을 줄일 방법을 찾으셨나요?

“저는 최근 몇 년간 굉장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사별의 아픔뿐 아니라 오랫동안 가족의 투병을 지켜보면서 처참한 기분을 느껴야 했죠. 매일 아침과 저녁 30~45분 동안 명상했습니다. 스님의 염불을 들으며 고요히 명상하고 나면,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됐습니다. 내가 겪는 아픔이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고, 그렇게 다음 날을 버틸 힘을 얻었습니다.”

 

-인생에 진짜 중요한 것들이 뭘까요?

“명상할 때마다 스스로 되뇌었습니다. 이 고통은 내 본모습이 아니야. 그럼 본래의 ‘나’는 어디 있을까? 본래의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 친구들과 맺은 관계 속에 존재해. 내 주변을 둘러싼 관계에 집중하다 보면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아도 견디지 못할 정도로 괴롭진 않더라고요. 명상은 힘든 순간을 버티도록 도와줄 뿐 아니라, 타인을 향한 연민을 길러주고, 주변에 좀 더 친절한 사람이 되게 해줍니다.”

-명상을 하다 보면 잡다한 생각이 떠오르진 않나요?

“근심이나 걱정거리가 떠오른다고 해서 억지로 막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앉아서 흔들리는 촛불이나 종소리 같은 것에 가만히 집중하면 됩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론에 반대한 근거는 무엇이었나요?

 

“유전자가 우리 행동이나 건강, 질병에 미치는 영향은 오늘날 생물학계의 가장 큰 화두입니다. 연구 결과, 유전자는 대부분 우리 행동과 연관성이 낮아요. 유전자가 우리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유전자를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죠. 예를 들어 좋은 운동선수가 되려면 뭘 해야 할까요. 오랜 훈련을 통해서 근육이 늘면, 단백질 세포 또한 더 만들어져 근육을 더 키울 수 있게 되죠. 좋은 운동선수는 훈련 끝에 유전자를 통제하는 분자를 바꿉니다. 인간이 단순히 유전자로 결정되는 존재가 아니란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삶을 어떻게 이뤄나갈지는 우리 손에 달렸어요. 모든 걸 유전자 탓으로 돌리지 마세요.”

2019년 열린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에서 AI 기술을 활용한 의학 연구에 대해 연설한 데니스 노블 교수. /조선일보DB

 

영국 런던에서 가난한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나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4형제 중 장남이었던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밖에서 돈을 벌어야 했던 어머니를 대신해 동생들을 챙기며 학업을 이어갔다. 런던대 의과대학에 입학한 그는 23세라는 젊은 나이에 네이처지에 심장 근육과 심장 박동에 관한 연구 논문 두 편을 게재하면서 ‘천재’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의사가 되지 않고 어떻게 생물학 연구의 길을 걷게 됐나요.

 

“가족 주치의였던 선생님의 영향으로 의사를 꿈꾸게 됐어요. 우리 가족은 항상 선생님을 우러러봤거든요. 그래서 의학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부모님이 매우 기뻐하셨죠. 그런데 제가 다녔던 의대 교수님들은 제가 생명에 대해 계속 묻고 답을 찾도록 끊임없이 자극을 주셨어요. 그러다 보니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연구자가 제가 진정 원하던 길임을 깨닫게 됐지요.”

-당시엔 컴퓨터로 연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1960년대 대학교 캠퍼스에 컴퓨터는 단 한 대뿐이었어요. 생물학 전공자는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다며 퇴짜 맞기 일쑤였죠. 당시엔 컴퓨터도 오늘날의 데스크톱이나 노트북과는 전혀 달랐어요. 윈도 운영체제도 없었고, 키보드나 스크린도 없었고요. 텔레프린터라고 부르는 종이테이프에 구멍을 뚫어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했지요. 종이테이프를 넣고 결과 값이 나올 때까지 한두 시간 기다려야 해요. 코딩하는 법을 배우기만도 어려웠고, 기계를 사용해 원하는 문제를 수학적으로 해결하긴 더 어려웠죠.”

 

-그 원시적인 기계로 가상 심장을 만든 건가요?

“맞아요. 심장 박동을 연구할 수 있는 가상 심장을 만들었는데요. 수학적 모델을 만들어보면서 세포가 어떻게 심장 박동을 만들어내는지 발견하게 됐죠.”

 

-가상 심장 연구를 하던 초기엔 주변 반응도 시큰둥했겠네요.

“당시엔 컴퓨터가 굉장히 비쌌고, 사용 허가조차 받기 어려웠어요. 혼자 수학자와 컴퓨터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웠어요. 하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심장 박동은 배아 단계에서도 관찰할 수 있잖아요. 심장 박동의 비밀을 찾는 건 생명의 탄생을 연구하는 일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해남 미황사 금강 스님(오른쪽)에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참선 수행을 배우는 두 교수. /오래된질문·Noble Asks

 

# 우리는 지금 인류 문명의 역사상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수많은 젊은이들이 갈수록 심각해져가는 지구의 이상 징후를 초조하게 주시하며, 최악의 사태를 막으려는 사회의 대응 속도가 느린 것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분노할 만한 일이죠. 이건 그들의 미래니까요. <269쪽>

 

-과거에 교수 한 명과 학생 1~3명이 토론하는 방식인 ‘튜토리얼’ 수업법을 한국에 소개하면서 적극적 대면 소통을 통한 교육을 강조하셨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옥스퍼드의 튜토리얼 수업에서 이뤄지는 선생과 학생의 대화는 승려들의 훈련법과 굉장히 비슷해요. 목적은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겁니다. 이 목적은 코로나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불교에서 ‘금강경’의 역할도 마찬가지죠. ‘세상을 전부 이해한다고 생각하나? 다시 생각해봐라.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게 많다’고 알려주잖아요.”

-영국이 코로나 백신 접종에서 앞서 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요?

 

“옥스퍼드 대학과 아스트라제네카의 뛰어난 연구진이 24시간 쉬지 않고 노력해서 굉장히 빨리 백신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오래된 내 제자이기도 합니다. 영국이 백신 접종에서 앞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첫째 바로 이 훌륭한 과학자들 덕분이었습니다. 둘째는 아스트라제네카가 자사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저렴한 가격으로 백신을 공급했기 때문이고요. 마지막으로는 효율적으로 백신을 배포한 영국의 의료 서비스 덕분이었다고 봅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까요.

 

“저는 인간이 다양한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한 바이러스가 아닌 아주 다양한 종류의 바이러스가 나타날 테고 변종도 빠르게 생기겠죠. 바이러스가 굉장히 빨리 진화하고 있어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진 세상을 살긴 어려울 겁니다. 독감 백신처럼 매년 바이러스 주사를 맞을 가능성이 크죠.”

-코로나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과학자로서 위로를 전하신다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 세계적 도전 과제입니다. 두 가지 바람이 있다면 하나는 전 세계 여러 나라가 협동해야 한다는 겁니다.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바이러스에 함께 맞서 싸워야 합니다. 인도나 브라질에서 계속 변이 바이러스가 퍼진다면 우리 또한 바이러스를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고통받게 될 겁니다. 또 한 가지는 제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누군가를 잃고 슬픔에 젖었을 때는 명상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의 불교 전통은 인류의 고난에 대처할 수 있는 훌륭한 전통입니다. 부디 2000년 이상 유지돼온 한국의 전통을 계속 이어가 주시길 바랍니다. 한국 여행은 복잡한 세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불교에 푹 빠진 계기가 된 얘기 한 가지를 소개했다. 2500년 전, ‘이 세계가 영원한가’ ‘사후 세계는 존재하는가’ 끊임없이 질문하는 제자에게 붓다가 답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 어디선가 날아온 독화살에 맞았다고 하자. 그런데 그가 화살은 그대로 두고서 ‘이 화살을 쏜 사람은 누구이고 왜 나에게 쏘았을까. 이 화살을 만든 나무 재질은 무엇이며 화살촉에 묻은 독 성분은 무엇일까. 궁금증을 모두 해결하기 전에는 이 독화살을 뽑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제자가 답했다. “독이 온몸에 퍼져 죽게 되겠지요.” 붓다가 다시 말했다. “우리는 이미 독화살을 맞은 것과 같다. 너는 먼저 화살을 뽑는 데 애를 쓰겠느냐. 아니면 그 화살을 누가 쐈는지부터 궁리하겠느냐.”

노블 교수는 “삶에는 늘 근심과 고통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본질은 아니다”라며 웃었다. “우리는 고통에 대처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더라도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프진 않도록 누그러뜨리는 방법을 찾아내겠죠.” 오래된 질문의 답을 얻은 듯 평온한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