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차와 사람

선암사, 70년간 뜨거운 ‘조태갈등’ 현장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1. 20. 16:24

[김한수의 오마이갓]

선암사, 70년간 뜨거운 ‘조태갈등’ 현장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입력 2021.01.20 07:00

 

 

 

 

 

순천 선암사의 돌아치 다리 승선교. /순천시

전남 순천 선암사는 아름다운 절입니다. 아직 한기(寒氣)가 가시지 않은 초봄에 피는 매화가 유명하고, 우리나라에선 보기 쉽지 않은 아치형 돌다리 승선교도 명물이지요. 조계산의 동쪽에 자리한 선암사는 서쪽의 송광사와 함께 전남을 대표하는 사찰이기도 합니다. 등산객들은 조계산을 넘어 하루에 송광사와 선암사를 방문하기도 합니다. 두 사찰은 전설도 많아서 선암사 ‘뒷간’은 전국 사찰 중 유일하게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돼 ‘관람 코스’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죠. 송광사는 통나무를 깎아 만든 쌀통(비사리 구시)이 유명합니다. 그런데, 이 평화롭고 고즈넉한 사찰 선암사는 불교계 내부적으로는 70년 오랜 분쟁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이른바 ‘조태 갈등’이지요. ‘조태’는 조계종과 태고종입니다.

선암사 운수암 가는 길에 활짝 핀 매화. /유창우 기자

갈등의 시작은 1950~60년대 불교 정화(淨化) 때부터입니다. 결혼하는 태고종 스님들이 있던 전국 사찰을 결혼하지 않는 조계종 비구 스님들이 접수한 것이지요. 조계종 입장에선 왜색불교 척결이라며 ‘정화’라 부르고, 태고종 입장에선 ‘절을 빼앗겼다’고 생각하지요. 전국의 유명 사찰이 이런 과정을 거쳐 조계종 사찰로 넘어갔는데, 몇몇 사찰은 태고종 스님들이 그대로 살았습니다. 서울 신촌의 봉원사와 순천 선암사가 대표적입니다. 선암사의 경우는 태고종의 본산이기도 합니다. 태고종 종정 스님도 선암사에 계시고 새로 태고종 스님이 되는 분들에 대한 수계식(受戒式)도 선암사에서 열립니다.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선암사 '뒷간'./조선일보DB

현실적으로는 이렇게 태고종 스님들이 살고 있지만 조계종은 선암사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조계종은 과거 선암사를 전국 25개 교구(敎區) 본사(本寺) 중 하나로 지정했습니다. 교구 본사는 그 지역의 대표 사찰입니다. 산하에 말사(末寺) 수백개를 두고 있지요. 조계종은 지속적으로 선암사 주지도 임명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선암사에 부임해 살지는 못했지요. 그래서 조계종 입장에서 선암사는 오래도록 ‘사고 사찰’이었습니다.

송사(訟事)도 계속 됐습니다. 1970년 당시 문화공보부는 분쟁이 계속되자 선암사에 대한 재산관리권을 순천시에 위탁했지요. 불교재산관리법에 의한 조치였습니다. 60년간 이어진 선암사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은 지난 2011년이었습니다.

2011년 조계종과 태고종 스님이 모여 선암사 분규를 끝내고 정상화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조계종

2011년 2월 16일 두 종단은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조계종 총무원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순천시장으로부터 선암사에 대한 재산관리권을 공동으로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합의의 요점은 소유권은 조계종, 점유권은 태고종으로 나누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절묘한 타협안이었지요. 이에 앞서 2010년 1월엔 서울 봉원사 문제도 태고종과 조계종이 원만히 해결했습니다. 봉원사의 사찰 건물 등은 태고종, 주차장 등 부지는 조계종이 소유권을 나눴지요. 이 역시 공생·상생의 방법이었습니다.

 

어쨌든 2011년 양측의 합의 이후 선암사 문제는 평화롭게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2011년 9월 조계종은 선암사의 지위를 본사에서 해제하고 직영사찰로 지정했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또다른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순천 선암사 땅에 세워진 전통차 체험관. 조계종은 소유권이 있는 조계종의 승인 없이 순천시가 이 건물을 지었다며 철거 소송을 냈다. /순천시

전통 야생차 체험관이죠. 이 체험관은 순천시가 2007년 선암사 부지 4995㎡(약 1510평) 땅에 한옥 구조 8개 동(棟)으로 지은 건물입니다. 관광객들에게 인기도 많습니다. 조계종은 2011년 이 건물을 철거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선암사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조계종의 승인 없이 태고종과 협의를 통해 순천시가 건물을 지었다는 이유였지요. 이 소송은 2014년 1심과 2015년 2심에선 조계종이 이겼습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결과가 뒤집혔지요. 대법원은 “등기상으로는 조계종 소유지만, 오래전부터 태고종이 점유했고 대다수 신도가 태고종”이라며 “분쟁 중인 선암사의 소유주는 실제 모습을 근거로 판단해야 한다”며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조계종은 발끈했죠. 그래서 지난 1월 15일자 조선일보 등 일간지에 항의하는 광고도 실었습니다. 선암사를 둘러싼 ‘조태 갈등’이 재연된 셈입니다. 현재 선암사를 둘러싼 소송은 등기 소송도 있습니다. 조계종은 현재 2심에 있는 등기 소송 결과를 보고 추후 대응에 나설 계획입니다.

분쟁 당사자 각각의 사정은 다 이해가 됩니다. 순천시가 처음 이 체험관 건립을 추진한 것은 2004년이었습니다. 당시는 ‘조태 분쟁’이 한창 뜨거웠고 순천시는 법률상 재산관리인이었으니까요. 당시 선암사를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것은 태고종이었고요. 그러나 소유권·재산권 분쟁이 뜨거운 상태에서 양쪽 모두의 허락을 받고 체험관을 지었더라면 어땠을까요. 반대로 이미 지은 지 15년 가까이 된 건물에 대해 ‘철거’라는 극약 처방이 최선인지도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소유권과 점유권을 나눠서 선암사의 평화를 지킨 것 같은 ‘묘수’는 없을까요. 조계종측도 굳이 ‘철거’를 고집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차제에 소유권·점유권 부분을 명확히 하고자 하는 것이겠지요. 모쪼록 이 분쟁이 원만히, 불교적으로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종교가 없는 일반 관광객들은 조계종, 태고종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조계종과 태고종이 다툰다면, 그저 ‘불교계가 시끄럽나 보다’ 할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조계종과 태고종 그리고 순천시와 법원이 슬기로운 대안을 찾기를 바라는 것은 저만의 기원은 아닐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