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제 6회 문학의식 문학상(2017)

제 6회 『문학의식』문학상 수상작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8. 1. 29. 22:38

 

 

 

 

 

 

 

 

 

제 6회 『문학의식』문학상 수상작

말의 행방

 

 

소문이 한바탕 지나간 뒤에

벙어리의 입과

귀머거리의 귀를 버리고서

잘못 들으면 한 마리로 들리는

무한증식의 말을 갖고 싶었다

검고 긴 머리카락과

길들여지지 않은 그리움으로

오래 달려 온 튼실한 허벅지를 가진

잘못 들으면 한 마디로 들리는

꽃을 가득 품은 시한폭탄이 되고 싶었다

길이 없어도

기여코 길이 아니어도

바람이 끝내 어떻게 한 문장을 남기는지

한 마디면 어떻고

한 마리면 또 어떨까

 

 

천리 밖에서

나를 바라보는

야생의 그 말

 

<<문학의식>> 2017년 봄호 원고

수상 소감

 

천 리 밖의 말을 찾아서

나호열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시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우둔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그 세월은 내 심장을 두드리는 시를 읽는 즐거움과 꿈과 현실 어느 곳에도 닿지 못하는 시를 쓰는 괴로움을 가르쳐 주었다.

 

부조리한 현실에 항거하거나 자연에 귀의하는 서정을 노래하지도 못하면서 모난 마음을 둥글게 연마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것이 그나마의 위안이다. 한 때는 재능의 부족을 탓하기도 했지만 이순을 넘어 종심을 향해가면서 천부적 재능의 부족함을 절차탁마의 노력으로 메꾸는 겸손의 미덕을 깨우치게 됨을 감사하게 여기게 되었다. 대교약졸 大巧若拙이 일러주는 자만을 경계하고 오롯이 나에게 주어진 세계를 깊게 바라보면 볼수록 사회적 약속인 언어와 나라는 존재가 부딪칠 때 내는 파열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시업이 아닌가 하는 작은 소망을 갖게 되었음도 다행한 일이다.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으며, 바로 그러한 인식으로부터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야할 책무가 시인에게 주어져 있다고 믿는다. 인간이 지닌 야성을 이성으로 승화시키지 못할 때 야기되는 세상의 환멸에 대해 눈감으면 안되는 것이 시인의 운명이라 믿는다. 존재의 사회성을 배우고 여는 통로가 언어이며, 언어는 언어를 만든 인간을 속이지 않지만 인간은 얼마든지 언어를 기만할 수 있다는 자각이 또한 시업이 아닐까.

그리하여 오롯이 내 마음과 맞닿는 말(言語)은 저 광야의 저편에 서 있는 말(馬)이라는 달콤한 유혹이 오늘도 천 리 밖을 서성거리게 만든다.

소품에 불과한 시를 선정해주신 까닭이 좀 더 먼 길을 가라는 채찍임을 깊이 새기면서 『문학의식』의 격려에 감사드린다.

* *

후일담 後日譚

 

 

어떤 사람은 나를 쇼핑카트라고 불렀고

어떤 사람은 짐수레라고 나를 불렀다

무엇이라 불리우든

그들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나는 기꺼이 몸을 열었다

내 몸에 부려지는 저 욕망들은

또 어디서 해체되는 것일까

지금 나는 더 이상 열매 맺지 못하는

살구나무 아래 버려져 있다

탈출이 곧 유배가 되는

한 장의 꿈을 완성하기 위하여

나는 너무 멀리 왔다

누가 나를 호명할까봐 멀리 왔다

뼈 속에서

한낮에는 매미가 울었고

밤에는 귀뚜라미가 우는

풀섶 어디쯤

 

 

씨름 한 판

 

 

쓰러지면 지는 것이라고

사나운 발길에 밟히고 밟혀

흙탕물이 되는 눈처럼 스러진다고

쓰러지지 않으려고

상대방의 샅바를 질끈 쥐었으나

장난치듯 슬쩍 힘을 줄 때마다

나는 벼랑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나뭇잎처럼 가볍게 흔들거렸다

눈물이 아니라 땀이라고 우겨보아도

몸이 우는 것을 막지는 못하는 법

나를 들어 올리는 상대가 누구인지

지금껏 알지 못하였던 어리석음을 탓하지는 못하리라

으라찻차 힘을 모아 상대를 쓰러뜨리려는 찰나

나는 보았다

내가 쥐고 있던 샅바의 몸이

내가 늘어뜨린 그림자였던 것을

내가 쓰러져야 그도 쓰러뜨릴 수 있다는 것을

허공은 억세게 잡을수록

더 억세진다는 것을

씨름판에 억새가 하늘거린다

 

오래된 밥. 1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밥이 있다

한 숟갈만 먹어도 배부른 밥이 있다

잊으려고 해도 잊혀지지 않는

그 옛날부터그러나 한걸음 내딛으면 아득해지는 길의 시작으로부터

나를 키워온 눈물 같은 것

기울어진 식탁에 혼자 앉아 물끄러미 바라보면

딱딱하게 풀이 죽은 채

식을대로 식어버린 추억 같은 밥

한 밤중에 일어나 흘러가는 강물에 슬그머니 놓아주고 싶은 손 같은 밥

아, 빈 그릇에 가득한

안녕이라는 오래된 밥

 

 

구석기 舊石器의 사내                                  

                                  

 

 

하루 동안 이 만년을 다녀왔다

 

선사 先史로 넘어가는 차령 車嶺에서 잠시 주춤거렸지만

돌로 도끼를 만드는 둔탁한 깨짐의 소리가

오수를 깨우는 강변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한 사내를 만났다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는 강을 따라

목책으로 둘러싸인 움집 속

몇 겁의 옷을 걸쳐 입은 그의 손엔

날카로운 청동 칼이 번득이고

여전히 말이 통하지 않은 채

삼천년이 지나갔다

내가 노을 앞에서 도시의 불빛을 되내일 때

그 사내는 고인돌 속으로 들어가

뼈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져 갔다

천 오백년 전 망한 나라의 나들목을 지나

하루의 풍진을 씻어내는 거울 앞에

수척해진 채 돌도끼를 만들 줄 모르는

구석기의 사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촉도 蜀道

 

 

경비원 한 씨가 사직서를 내고 떠났다

십년 동안 변함없는 맛을 보여주던 낙지집 사장이

장사를 접고 떠났다

이십 년 넘게 건강을 살펴주던

창동피부비뇨기과 원장이 폐업하고 떠났다

 

 

내 눈길이 눈물에 가닿는 곳

내 손이 넝쿨손처럼 뻗다만 그곳부터

시작되는 촉도

 

 

손 때 묻은 지도책을 펼쳐놓고

낯 선 지명을 소리 내어 불러보는 이 적막한 날에

정신 놓은 할머니가 한걸음씩 밀고 가는 저 빈 유모차처럼

절벽을 미는 하루가

아득하고 어질한 하늘을 향해 내걸었던

밥줄이며 밧줄인 거미줄을 닮았다

 

 

꼬리를 자른다는 것이 퇴로를 끊어버린 촉도

거미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