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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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도 2015

백일 간의 눈꽃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8. 9. 22:53

백일 간의 눈꽃

 

 

가부좌를 틀고 동안거에 들었다

이제 그는 예고 없이 와서

이유 없이 떠나간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 볼 작정이다

 

 

느닷없이 다가온 겨울과 함께

몇 편의 단편소설을 소리내어 읽어주었고

촛불이 사그라질 때까지

얼굴을 마주보는 밤도 있었다

웃음은 작은 물의 입자들이 만들어 낸 상고대처럼

순간 빛나다가

아침이 되면 문장을 흩트려 안개로 사라져갔다

 

인적이 끊긴 그의 등은 한 뼘 더 솟아올랐고

촛대처럼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이

돌아앉은 그의 상념 속에 불타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번식의 욕망이 향기를 이루고 자태를 어루만지는가

잎 지고 꽃이 시들고 혹은 열매로 맺는 화염 속에 들어앉아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발자국소리를 듣는 밤

 

향기도 없고 빛도 없이

다만 이 세상에 태어난 첫 말이 되어

눈은 무량무량 내렸다

꽃이 되었다

 

그의 등 뒤로 숨죽인 작은 발자국 오던 길 되돌아가고

저기,

저어기 겨울 산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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