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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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도 2015

도선사道詵寺에서 보리수 까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3. 6. 01:07

도선사道詵寺에서 보리수 까지

 

법당 안에 금빛 가사를 걸친 부처가 말한다

극락은 없다

 

처음에는 발바닥 아프고

다리 풀리고, 당기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난 후

비로소 머리 속에 가득 차는 어지러운 굴복

백 팔 번 너는 내 앞에 무릎 꿇은 것이냐

너는 너에게 무릎 꿇은 것이냐

 

도선사는 도선사 안에 없고

부처는 부처 안에 없고

부처 안에는 너의 어지러움이 없으니

길고 긴 언덕길 가슴 문대며 오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냥 쉬었다 가거라

 

섬돌에 주저 앉아 청청한 보리수 바라보느니

서 있는 듯 하다가

가부좌 튼 듯 하다가

아예 허공에 등짝 들이대고 누워 있는 듯 하다

 

아무도 보리수에 경배하지 않는다

향 올리지도 않는다

가끔 몸 뒤척이다가

사천왕 문 밖으로 서둘러 나선다

극락은 저 아래 낮은 곳에 있다

저 아수라 속에

저 화염 속에

푸른 잎 하나가

문득 떨어진다

 

소신공양 하려는지 보리수

노을을 온몸에 끼얹는다

순간 내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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