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씨름 한 판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2. 24. 00:32

씨름 한 판

 

쓰러지면 지는 것이라고

사나운 발길에 밟히고 밟혀

흙탕물이 되는 눈처럼 스러진다고

쓰러지지 않으려고

상대방의 샅바를 질끈 쥐었으나

장난치듯 슬쩍 힘을 줄 때마다

나는 벼랑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나뭇잎처럼 가볍게 흔들거렸다

눈물이 아니라 땀이라고 우겨보아도

몸이 우는 것을 막지는 못하는 법

나를 들어 올리는 상대가 누구인지

지금껏 알지 못하였던 어리석음을 탓하지는 못하리라

으라찻차 힘을 모아 상대를 쓰러뜨리려는 찰나

나는 보았다

내가 쥐고 있던 샅바의 몸이

내가 늘어뜨린 그림자였던 것을

내가 쓰러져야 그도 쓰러뜨릴 수 있다는 것을

허공은 억세게 잡을수록

더 억세진다는 것을

씨름판에 억새가 하늘거린다

 

* 계긴 시와 경계 2017년 봄호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맹물  (0) 2017.03.01
두물머리에서  (0) 2017.02.28
만월  (0) 2017.02.20
말의 행방  (0) 2017.02.18
용오름  (0) 2017.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