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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선암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11. 10. 23:55

너럭바위 따라 장쾌한 물소리… 세상 소음을 덮다

조선 후기 화가 최북(崔北)의 남녘 산수로 '상선암도'. 계곡 물이 너럭바위 사이를 돌아 흐르는 깊은 산중이다.
300년 지난 지금에도 변함없다. 실제로 계곡 아래 바위로 내려가 서니 장쾌한 물소리에 다른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입력 : 2016.11.10 04:00

[그림 속 그곳] 최북이 그린 단양 '상선암'

자호(自號·스스로 짓는 호)를 호생관(毫生館)이라 했다. 붓 터럭 하나로 산다는 뜻이다. 흔히 '조선의 반 고흐'로 일컬어진다. 조선 후기 화가 최북(崔北)이다. 광기(狂氣)로 말하면 제 귀를 자른 고흐를 훌쩍 뛰어넘는다. 당대 권력자가 최북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 싫다 했더니 협박했다. 최북은 칼로 제 눈을 찌르며 외쳤다. "내 몸은 오직 나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한쪽 눈 없는 초상화<작은 사진>가 남아 있다.

조선 후기 화가 최북(崔北) 

 

조선 후기 화가 최북(崔北)
충북 단양 상선암(上仙岩) 찾아가는 길 최북의 기행(奇行)을 떠올렸다. 나고 죽은 해는 알려져 있지 않다. 태어난 때는 대략 숙종 재위(1661~1720) 말년이라 한다. 고흐(1853~1890)보다 130여년 선배다. 1748년(영조 24년) 통신사 화원(畵員)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에도시대 간행된 일본 회화 교본에는 최북의 산수와 꽃·나비 그림이 실려 있다. 자(字·어른이 되어 짓는 이름)를 '칠칠(七七)'이라 했다. 이름 한자 '북(北)'을 좌우로 떼내 지었다. 49세 때 죽었다 한다. 7 곱하기 7은 49. 죽음을 미리 알았다는 말이 나왔다.

산수(山水)를 잘 그려 '최 산수'라는 별칭을 얻었다. 금강산 그림 등이 남아 있다. 남녘 산수로는 '상선암도'가 있다. 계곡 물이 너럭바위 사이를 돌아 흐르는 깊은 산중이다. 남한강으로 흘러들 물줄기다. 지금은 계곡 옆 바위 위에 축대를 세우고 도로를 냈다. 덕분에 쉽게 갈 수 있으나 그림 속 옛 풍경은 많이 훼손됐다. 도로에서 물을 건너는 시멘트 다리가 놓여 있다.

상선암은 쉬 범접하지 못했을 첩첩산중에 있다. 지금은 바위 위에 축대를 쌓고 도로를 놓아 자동차로 편안히 갈 수 있다. 옥빛 물이 장쾌하게 흐른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상선암은 쉬 범접하지 못했을 첩첩산중에 있다. 지금은 바위 위에 축대를 쌓고 도로를 놓아 자동차로 편안히 갈 수 있다. 옥빛 물이 장쾌하게 흐른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그림은 물 흐름으로 보아 하류에서 상류 방향을 바라보는 구도다. 시멘트 다리 위에서 물이 흐르는 위쪽을 바라본다. 바위 모습과 물 흐름이 그림과 매우 비슷하다. 산세(山勢)는 조금 달랐다. 그림 오른쪽 위에 옆으로 누운 듯한 산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하류 방향으로 150m쯤 물러나자 멀리 비슷한 모습의 산이 보였다. 최북은 지금 도로가 된 곳 어딘가 높은 땅에서 계곡을 바라보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드론 카메라를 띄워 보기로 했다. 10m쯤 높이에서 더 비슷한 구도가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멘트 다리에 가려 계곡 물이 잘 보이지 않았다.
최북의 ‘상선암도’. 선문대 박물관 소장.

상선암은 단양팔경 중 하나. 선암계곡 상류에 있다. 계곡 물을 따라 1㎞쯤 아래에 중선암, 다시 5.5㎞ 아래에 하선암이 있다. 모두 팔경에 들어간다. 바위 하나를 일컫는 게 아니라 너럭바위 여럿이 모여 선경(仙境)을 이루는 계곡이다. '택리지' 저자 이중환은 이곳 풍경을 길게 묘사했다. "산중에 큰 시냇물이 돌로 된 골을 좇아 흘러내리는데, 시내 바닥과 양쪽 언덕이 모두 돌이다. 언덕 위에는 기이한 바위가 있어 어떤 것은 작은 봉우리가 되고, 어떤 것은 평상을 펴놓은 것 같으며, 어떤 것은 성에 벽돌을 쌓은 것 같다. (중략) 이와 같은 것이 셋인데 위에 있는 것을 상선암, 중간 것을 중선암, 맨 끝에 있는 것을 하선암이라 한다."

이중환(1690~1752)은 이곳을 무자년에 다녀왔다고 썼다. 그렇다면 열여덟 살 때인 1708년이다. 그는 "물과 돌이 서로 부딪치며 밤낮으로 시끄러워서 물가에서는 사람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좌우 산등성이에는 높은 숲이 우거져 빽빽하고, 온갖 새가 지저귀는데 참으로 인간의 경계(境界)가 아니다"고 적었다. 300년 지난 지금에도 변함없다. 실제로 계곡 아래 바위로 내려가 서니 장쾌한 물소리에 다른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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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 카메라로 찍은 상선암 전경. 시멘트 다리를 놓았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최북은 기행 일화를 여럿 남겼다. 매일 술 5~6되(9~11L)를 마셔 '주광(酒狂)'이라 했다. 장안의 술장수는 모두 최북에게 몰려들었다. 금강산 유람할 때는 대취(大醉)하여 끝내 사고를 쳤다. 미친놈처럼 울다가 웃더니 "천하 명인 최북이가 천하 명산 금강산에서 안 죽으면 말이 되느냐"며 시퍼런 구룡연(九龍淵) 못물로 뛰어들었다. 마침 동료 일행이 그를 붙잡아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근대 화가 김용준(1904~1967)은 '근원수필'에서 최북의 일화를 다수 기록했다. 김용준은 "필력(筆力)의 세련된 점은 다른 작가에 미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필세(筆勢)가 대담하고 자유분방하다. 조그만 구애도 아첨도 보이지 않는, 치졸하되 패기가 용솟음치고 있는 기개를 느낄 수 있다"고 최북 그림을 평했다.

상선암 계곡 물 빛깔은 연하게 푸른 빛을 띤다. 옥색(玉色)이다. 예전에 옥계수(玉溪水)라고 부른 까닭을 알겠다. 최북은 물빛을 옅은 파란색으로 칠했다. 물 깊이는 2~4m에 이른다 한다. 주의해야 한다. 물가 바위에 한동안 앉아 흐르는 물을 바라본다. 가을바람이 상쾌하다.

지도

상선암 주차장까지 자동차로 갈 수 있다. 주차장에서 걸어서 1분. 주차비 5000원. 상선암 포함 단양팔경을 모두 돌아보려면 북단양IC→도담삼봉→석문→사인암→상선암→중선암→하선암→구담봉→옥순봉 순서가 자연스럽다. 대중교통으로는 단양역 정류장에서 버스로 가산2리 하차. 53분 소요.

사인암 근처 식당에서 산채정식을 먹었으나 권할 만하지 않아 적지 않는다. 단양군에서 소개한 맛집으로 마늘솥밥 등을 내는 돌집식당(043-422-2842), 매운탕 전문 대교식당(043-423-4005), 통마늘맥적구이를 내는 왕릉숯불갈비(043-423-9292) 등이 있다. Tour.dy21.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