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선학(先學)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온몸의 구현인 그림의 세계는 더 까다롭다. 기법과 거죽은 흡사해도 정신과 속심지까지 따르기는 난망하다. 살은 얻어도 뼈를 세우기 힘들고, 자취는 좇아도 신묘함은 얻지 못한다.
한국미술사의 큰 봉우리가 겸재(謙齋) 정선(1676~1759)이다. 미술사학자 백인산씨는 겸재의 우뚝함을 이렇게 설명한다. “겸재는 우리나라 회화사상 불후의 업적을 남긴 거장으로 칭송받는다. 그가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대성자이기 때문이다. (…) 겸재는 우리 산천을 사실적으로 사생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된 아름다움까지 자긍에 찬 시각으로 온전하게 화폭에 옮겼다.”
260여 년이 흐른 오늘, 겸재의 아성에 도전하는 후학이 나타났다. 동양화가 문봉선(55)씨와 서양화가 서용선(65)씨다. 두 사람이 겸재 따라잡기에 공통 소재로 택한 것이 인왕산이다. 겸재 나이 75세 되던 1751년, 병석에 누워있던 절친 이병연(1671~1751)을 위해 그린 ‘인왕제색도(仁王齊色圖)’가 두 사람 가슴을 치고 들어왔다. 국보 제216호인 인왕제색도는 한바탕 비 온 뒤 바위가 드러낸 괴이함을 강하고 세차게 담아낸 명품이다.
문봉선씨는 28일부터 서울 양천로 겸재정선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에 ‘비 온 후 인왕산’을 선보인다. 큰 바위 얼굴처럼 펼쳐진 치마 바위를 제대로 표현하려 족제비털 붓을 눕혀서 툭툭 이동하며 찍었다. 서울을 품어주는 자연 통로 인왕이 현대 도시 체취를 반영한 사뿐한 풍모로 기운생동 한다. 인왕산을 마음에 들이고는 “그동안 너무 멀리서 내 것을 찾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서용선씨는 서울 북촌로 누크갤러리에서 11월 5일까지 열리는 개인전에 ‘인왕산’ 연작을 풀어놓았다. 대상의 진실을 구현하려 생트 빅투아르 산을 해체하고 재조립한 프랑스 화가 폴 세잔처럼, 그는 인왕의 마디마디를 붓질의 반복으로 꿰차며 그 전모를 제 몸이 외도록 내닫는다. 거친데 오달지다. 관음(觀音)에 생각이 자주 간다는 그는 “마음속에 산이 아직 안 들어왔다”며 “익어야 할 것”이라 했다.
정재숙
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