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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그림 속 犬公, '고려개'로 부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11. 6. 17:45

조선시대 그림 속 犬公, '고려개'로 부활

  •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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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6.11.03 03:10 | 수정 : 2016.11.03 08:22

    [경북대 하지홍 교수, '삽살개 사촌' 복원 성공]

    - 민화 속의 개와 흡사
    삽살개 증식하는 과정에서 털 짧은 개가 간혹 나와… 별도로 번식, 60마리로 늘어
    - 털 길이에 따라 품종 갈려
    삽살개와 고려개 유전자 비교… 17만개 염기변이 중 7개가 달라
    삽살개·진돗개는 95% 동일

    1743년 도화서 화원이었던 김두량(金斗樑)이 개를 그려 영조에게 바쳤다. 영조는 그림에 '밤에 사립문을 지키는 일이 너의 임무인데 어찌하여 낮에 여기에 있느냐'는 글을 남겼다. 신하들이 본분을 잊고 권력다툼만 일삼는 것을 빗대어 한 말이다.

    하지홍 경북대 교수가 복원한 토종개‘고려개’(위 사진). 조선 영조 때 도화서 화원이었던 김두량이 그린‘견도(犬圖)’속 개와 빼닮았다.
    하지홍 경북대 교수가 복원한 토종개‘고려개’(위 사진). 조선 영조 때 도화서 화원이었던 김두량이 그린‘견도(犬圖)’속 개와 빼닮았다. /경북대
    임금의 글까지 받은 귀한 개가 그림을 찢고 현실로 나왔다. 경북대 생명과학부 하지홍 교수는 "조선 시대 그림에 자주 나타나는 짧은 털의 개를 복원해 '고려개(Korean dog)'란 이름을 붙였다"고 2일 밝혔다. 지금까지는 김두량이 악귀를 쫓는 삽살개를 그렸다고 생각했다.

    털이 짧은 돌연변이 삽살개

    하지홍 교수가 처음으로 공개한 고려개는 털이 얼굴을 덮지 않은 중형견으로, 귀가 누웠고 꼬리의 갈기가 풍성한 것이 특징이다. 털이 짧다는 것만 빼면 몸 형태가 털북숭이 토종개인 삽살개와 같다. 하 교수는 "삽살개와 고려개는 조상이 같은 사촌과 같다"며 "삽살개 복원 과정에서 우연히 나온 짧은 털의 개들이 별도의 품종임을 DNA 분석 등을 통해 밝혀냈다"고 말했다.

    토종개와 외래 개들 사이의 혈통적 근연 관계도
    하 교수는 1986년부터 아버지 하성진 경북대 농대 교수를 이어 전국을 뒤져 몇 마리 남지 않은 삽살개를 찾아 순종을 복원해냈다. 그의 노력 덕분에 1992년 '경산 삽살개'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하 교수는 "삽살개를 증식하는 과정에서 털이 짧은 개들이 간혹 나왔는데 그 비율이 늘 3%로 일정했다"고 말했다. 삽살개 DNA에 털이 짧은 다른 개의 DNA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말이다. 특히 생김새가 김두량의 그림이나 조선 시대 민화에 나오는 개와 흡사했다.

    하 교수는 조선 시대에 있었던 원래의 개를 복원하기 위해 털이 짧은 개 중에서 성품이나 모양이 좋은 개들을 골라 번식시켰다. 지금은 60여 마리로 늘어났다. 눈 위에 반점이 있는 네눈박이 검둥이와 누렁이·흰둥이·바둑이 등 옛 그림에 나오는 그대로의 모습과 색깔이 나타났다고 하 교수는 밝혔다.

    DNA 분석으로 근연(近緣) 관계 확인

    고려개가 삽살개와 다른 별도의 품종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DNA에서 나왔다. 영남대 생명공학부 김종주 교수는 골든 리트리버 등 외국개 9품종 60마리와, 고려개 등 토종개 4품종 154마리의 DNA를 분석했다. 김 교수는 DNA에서 17만 개의 '단일염기다형성(SNP)'을 비교했다. 유전자는 A·G·C·T 네 가지 염기가 수십만~수백만 개씩 연결돼 있다. DNA 이중나선을 이어주는 물질이 염기다. 유전자에서 한 염기가 다른 종류로 바뀐 것이 SNP다. 사람마다 키나 몸무게, 얼굴 생김새가 다른 것은 유전자가 같아도 SNP가 다르기 때문이다.

    분석 결과 삽살개와 고려개는 17만 개의 SNP 중 7개가 달랐다. 김 교수는 "삽살개와 고려개의 DNA 차이는 털 길이와 관련된 유전자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진돗개와 경주개 동경이도 유전자가 거의 같았다. 삽살개는 진돗개와 SNP가 95% 동일했다. 반면 토종개들은 모두 외래 품종과 유전자 유사도가 80% 이하로 나왔다.

    이를 근거로 혈통의 근연 관계도를 그리면 우리나라 토종개들은 흔히 사자개라고 부르는 티베트 마스티프와 같은 조상에서 분리됐으며, 여기서 진돗개와 동경이가 먼저 갈라지고 이어 삽살개와 고려개가 다시 나뉜 것을 알 수 있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에 제출한 상태다. 김 교수는 "삽살개와 고려개 유전자가 일부 섞여 있는 개들도 있었다"며 "유전자 분석 키트가 순종을 가려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셰퍼드도 털 길이 따라 품종 갈려

    털 길이에 따라 새로운 품종이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892년 벨기에 수의학자 아돌프 라울 교수는 벨기에 셰퍼드를 털 길이에 따라 네 품종으로 분류했다. 말리노이즈만 짧은 털이고, 그로넨달과 테뷰런, 라케노이즈는 털이 길다. 세계애견연맹은 이들을 독립된 품종으로 인정하고 있다. 콜리나 닥스훈트도 털 길이에 따라 다른 품종이 있다.

    하지홍 교수는 "토종개에서 털 길이에 따라 품종이 갈린 것은 고려개가 처음"이라며 "혈통 관리만 잘하면 국제적으로도 공인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