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령길은 북한산둘레길 21개 구간의 마지막 구간이다. 길이는 6.8㎞에 이른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 우이령계곡을 따라 올라가 우이탐방지원센터~우이령~오봉전망대~유격장~교현탐방지원센터 입구에 이르는 길이다. 우이령은 역사가 깊은 고갯길이다. 그러나 1968년 1·21사태 이후 출입이 통제됐고, 2009년 다시 열리면서 북한산국립공원에서도 손꼽히는 숲길로 거듭났다. 우이령길 구간은 북한산둘레길에서 가장 단풍이 아름다운 코스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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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에도 표시된 길
우이령길은 사연 많은 길이다. 가장 잘 알려진, 그러면서도 잘못 알려진 것이 ‘김신조 침투로’라는 소문이다. 1968년 1월 21일 미수로 끝난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사건이 벌어진 직후 우이령길은 폐쇄됐다. 이유는 분명했다. 김신조 일당이 임무를 완수한 뒤 탈출로로 사용할 예정이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북한 특수부대는 청와대 인근 창의문에서 발각되는 바람에 아무도 우이령으로 도망가지 못했다. 다시 말해 김신조 일당은 우이령을 넘은 적이 없다.
그래도 우이령길은 1·21사태 이후 닫혔다. 경기도 양주시 교현리에는 군부대가,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에는 전투경찰(현재 의무경찰)이 주둔하면서 고개 양쪽 입구를 모두 막았다. 우이령 고갯길은 2009년 7월에야 다시 열렸다.
1·21사태 전까지 우이령길은 경기 북부지역, 양주·의정부·파주 등지에서 한양(서울)으로 들어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유생이 괴나리봇짐 지고 과거를 보러갈 때도, 백성이 소 달구지를 끌고 장 보러 갈 때도 넘나들던 고갯길이었다. 원래는 소 달구지 한 대만 겨우 다니던 좁은 고갯길이었다는데, 한국전쟁 이후 미군 공병대가 지금과 같이 3~5m 폭의 작전도로로 확장했다.
정주영(42) 북한산국립공원 자연환경해설사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우이령길이 표시되어 있을 정도로 우이령길은 경기도 북부지역 민초의 삶과 밀접했던 길이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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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제일의 단풍길
의무경찰 숙소를 지나자 마사토 흙길이 나왔다. ‘맨발로 느끼는 우이령 숲’이라는 발바닥 모양의 팻말이 서 있었다. 탐방객 몇 명이 신발을 벗고 맨발로 길을 걸었다. 덩달아 맨발로 걸어봤지만 발이 시려 얼른 신발을 신었다.
흙길부터 단풍나무 터널이 시작됐다. 빼곡히 늘어선 단풍나무가 하늘을 덮고 있었다. 정주영 해설사가 “길 왼편으로 북한산 상장능선이 펼쳐져 있다”고 설명했지만, 단풍잎에 가려 북한산은커녕 하늘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길바닥에는 몇 해 전부터 쌓인 낙엽이 두껍게 포개져 있었다. 하늘부터 땅까지 온통 단풍 세상이었다. 이 고갯길이 보전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김신조 일당이 되레 고마울 정도였다.
우이령을 넘어 100m쯤 내려가니 오른쪽으로 도봉산 자락의 오봉(五峰) 전망대가 나타났다. 우이령은 북한산과 도봉산의 경계로 고갯길 왼쪽 능선은 북한산이고 오른쪽 능선은 도봉산이다. 지금 오봉 밑 도봉산 자락은 단풍으로 불타는 듯하다. 오봉 전망대에서 교현탐방지원센터까지는 길이 평탄했다. 길 옆으로 선 참나무·물오리나무 등 활엽수 사이로 단풍나무가 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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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령길 정보
걷기여행 포털이 평가한 우이령길의 난이도는 ‘하(下)’다. 길이 6.8㎞인 우이령길은 경사가 완만해 3시간이면 충분히 걸을 수 있다. 우이령길은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knps.or.kr)에서 예약해야만 탐방이 가능하다. 하루 출입 인원은 우이동 쪽과 교현리 쪽 출발 각 500명이다. 우이탐방지원센터까지는 지하철 4호선 수유역 3번 출구에서 120 · 153번 버스를 타고 우이동 먹거리마을 입구에 내려 2㎞쯤 걸어 들어가야 한다. 우이탐방지원센터 02-998-8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