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나호열의 시와 토크 2015

촉도를 꿈으로 넘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2. 29. 20:50

제3회 나호열의 시와 토크

촉도를 꿈으로 넘다

 

 

 

 

 

 

 

 

 

때: 2015년 12월 11일 오후 3시 - 5시

곳: 도봉구민회관 소회의실(2층)

주최 도봉문화원

후원 도봉구청

본 사업은 도봉구 사회단체보조금으로 시행되었습니다.

 

 

 

행사 차 례

 

축사 도봉문화원장

 

제 1 부

짧은 강연

- 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 시집 촉도를 중심으로

 

제 2부

시 낭송과 노래

하루 낭송 최경애

금서를 쓰다 낭송 현정희

낭독극장 서수옥

병산을 지나며, 문득 길을 잃다, 고목의 말씀, 어머니를 걸어 은행나무에 닿다

시노래 나유성(작곡)

촉도, 낡아가고.....익어가고

 

제 3 부

시집 촉도 발간 기념회

 

 

차례(책자)

 

 

축사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시의 향연 이보영 도봉문화원장

강연 촉도를 꿈으로 넘다 나호열

시낭송

하루 최경애 시낭송가

금서를 쓰다 현정희 시낭송가

어느 유목민의 시계 양종열 시낭송가

서수옥의 낭독극장

문득 길을 잃다. Ⅰ

고목의 말씀

문득 길을 잃다. Ⅱ

어머니를 걸어 은행나무에 닿다

시노래

촉도 나호열 시 나유성 작곡

낡아가고......익어가고 나호열 시 나유성 작곡

참고자료

현실의 상처를 건너가는 두 가지 경로 박진희

길 떠남의 시집 장인수

자연에서 사람을 찾다 황정산

자연과 생활의 경계 함종호

나호열 연보

 

 

 

축사

이보용(도봉문화원장)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시의 향연

 

먼저 3회를 맞이하는 【나호열의 시와 토크】개최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한국 시단의 중진으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나호열 시인께서는 지난 8년 동안 도봉문화원 시창작교실을 지도하시면서 신인 발굴은 물론 문학의 즐거움을 도봉주민들과 함께 나누는 열정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번 행사 또한 문학과 시를 사랑하는 분들 뿐만 아니라 문학을 가까이 하지 못했던 여러분과 더불어 아름다운 삶의 길을 찾아가는 기쁨을 나누는 자리로 그 의의가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도봉문화원은 역량을 갖춘 예술가들을 모시고 다양한 강좌와 행사를 개최하고 있는 문화의 길잡이로 정진해 나갈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오늘의 행사를 위하여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나호열 시인을 비롯한 스탭들과 출연진 여러분께 감사와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 기꺼이 시간을 내 주시어 이 자리에 참석하신 청중 여러분께도 기쁨으로 충만한 시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015.12. 11

 

 

 

 

짧은 강연

 

촉도 蜀道를 꿈으로 넘다

나호열

 

촉도는 뜻 그대로 촉蜀으로 가는 길이다. 형해만 남은 한漢나라를 놓고 삼국이 쟁투를 벌이던 시절 위의 수도 낙양과 촉의 성도를 잇는, 현재의 사천성과 섬서성 경계의 고산준령을 일컫는 말이다. 이 험준한 곳을 통과하기 위하여 천 길 벼랑에 잔도 棧道를 놓으니 지금도 그 길은 넘기 힘들다. 당唐의 시선 詩仙 이백은 시 「촉도난 蜀道難」서두와 말미에 두 번 '蜀道之難 難於上靑天 : 촉으로 가는 길의 험난함은 푸른 하늘 오르는 것보다 어렵네' 라고 읊어, 오르기도 내려가도 힘든 지세를 형형하게 그려 내었고, 이에 감응한 듯 조선 중기의 화가 심사정은 촉잔도권蜀棧圖卷을 통해 촉도를 조감할 수 있는 즐거움을 후대에게 물려주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건대, 이백이 살던 암울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이 몰려오던 시대와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대역죄인의 자손으로 낙인찍힌 심사정의 불우했던 개인사를 겹쳐 보면 오늘의 나의 삶, 장삼이사의 삶 또한 촉도와 다름없이 녹록치 않음을 깨닫게 되니 저절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촉도에 비견되는 삶의 어려움은 피할 수도, 망각할 수도 없는 길이니 나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시집『촉도』는 열다섯 번째 내 삶의 기록이다. '이순 耳順을 넘어 아직도 자폐 自閉와 유폐 幽閉 사이에 걸린 세월을 꿈꾸듯 걷고 있는' (「자서」부분)나와 부조리한 세상은 여전히 불화를 겪고 있고, 더 나아가서 자연과 인간의 대립에 몸서리치며 여전히 출발 선상에 서 있는 자신을 위무하는 중얼거림이기도 하다. 서평을 쓴 정유화의 지적대로 현실에 맞서 싸우기에는 근력이 부족하고 '언어의 집' 속에서 두꺼운 비유와 상징의 미학을 추구하기에는 타고난 재능이 모자람을 어찌하랴. 문명이 준 시계를 '바람의 숨소리를 듣고/ 해의 기울기에 온몸을 맡기는 /....../ 물음표를 닮은 커다란 귀와 /하늘에 가닿은 눈( 「어느 유목민의 시계」 마지막 부분)'을 가진 유목민의 삶을 동경하면서도 '하루의 풍진을 씻어내는 거울 앞에/ 수척해진 채 돌도끼를 만들 줄 모르는' (「구석기의 사내」)임을 처연히 확인하는 하루하루는 ' 이 밝은 세상에서 어두운 세상으로/ 온몸을 꿈틀거리며 긴 일획을 남기며' (「지렁이」 부분) 가는 비루한 꿈으로 버려지고 있음을 또 어찌하랴.

어디 또 그뿐인가! '구름이라는 낭만의 집 (구름의 집)'에는 '몸통은 없고/ 날개만 퍼덕이는' 하루살이가 이 편한 세상으로 정원수로 팔려 온 삼백년 벼락 맞은 느티나무(「이사」)에 머물 때 나에게 촉도는 '내 눈길이 눈물에 가닿는 곳/ 내 손이 넝쿨손처럼 뻗다만 그곳( 「촉도」 2연)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세상과의 불화, 유쾌하지 않은 자의식에 함몰되지 않고,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새로운 언어를 탐색하며 얻은 꿈은 '사랑'이다. 내 나름대로 '사랑'을 연역한다면 모든 존재에 대한 연민'이며 그 연민을 우주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종교와 신앙의 힘을 빌리지 않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의 '대화'야 말로 시 쓰기의 출발이며 종착지이다.

 

 

늘 배고픈 저 아가리

복음은 눈으로 볼 수 없고

관음은 귀로 들을 수 없어

허공을 밟고 오시는 어떤 사람

오늘도 수신불량이다

 

            시 - 「Sky life 」전문

 

 

편견과 오독된 신념으로 비롯된 증오를 넘어서서 '부르는 사람 없어 이름 오래 전 잊어버린(「선물」부분) 할머니, 깃발이 되지 못해도 바람에 휘날릴 수 있다는 듯 가슴을 여는(「보자기의 꿈」부분) 나일론 인생들, 죄 짓지 않고 자랑스럽게 번 돈으로 붉은 마음을 불판에 올려놓는 나그네' (「고한에서」부분)의 넋두리 속에서 '마악 알에서 깨어난 휘파람새가 처음 배운 그 말'(「칠월」)을, 사랑이라는 한 단어만으로 가득한

나만의 사전을 갖고 싶은 것이다.

 

 

맹목으로 달려가던 청춘의 화살이

동천 눈물주머니를 꿰뚫었는지

눈발 쏟아지는 어느 날 저녁

시인들은 역으로 나가 시를 읊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 사이에

장미가 피고 촛불이 너울거리는 밤

누가 묻지 않았는데 시인들의 약력은

길고 길었다

노숙자에게 전생을 묻는 것은 실례다

채권 다발 같은 시집 몇 권이

딱딱한 베개가 될지도 모르겠다

어둠한 역사 계단 밑에서 언 손을 녹이는

불쏘시개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내리시는 무언의 시가

발밑에 짓이겨지는 동안

가벼운 재로 승천하는 불타는 시가

매운 눈물이 된다

아, 불타는 시

 

     - 「「불타는 詩」 전문

 

 

나는 다시 중얼거린다. 부정否定은 긍정의, 절망은 희망의 필요조건이야. 촉도를 넘어가면 또 다른 촉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야. 나는 더 고독하게 단독자의 포즈를 추스려야 해. 스스로 깨닫지 못한 길에 무임승차할 수는 없어. 시인이 되기에 아직 먼 길이라도 머리보다는 가슴을 믿어야 해!

 

나는 당신에게 건너가는 꽃다발이 되고 싶다

 

              - 「기억하리라」 마지막 연

 

- 계간 『시에』 2015년 가을호

 

시낭송 작품

최경애

 

 

하루

 

그 편지는, 어김없이, 내 앞에 놓여져 있다. 발신인이 없는 편지는 수상하다. 나는 한번도 그 내용을 들여다 본 적이 없다. 되돌려 보낼 주소가 없으므로 투덜대다가 아예 그것을 잊어버리기로 한다. 집요하게 달려드는 흡혈귀처럼 날카로운 송곳니가 밀봉의 틈새로 언뜻 비치기도 한다. 장독대 정한수에 내려앉은 시린 그믐달 같기도 하다. 손을 집어넣으면 금세 바스라져 없어져 버릴 것 같아 뜯지 못하는 편지, 보고 싶은 유년의 거울이 깊은 우물 속에 담겨져 있을 것 같은 출렁거림.

나의 생애는 헤아릴 수 없는 낙엽과 햇살로 가득 찬다. 수없이 피고 졌던 꽃들과 새들의 지저귐. 내가 버렸던 편지는 눈보라가 되어 나보다 먼저 눈물을 밤길에 밝힌다. 어차피 해독할 수 없는 것이라면 더 잊어야 할까 먼 길을 더욱 멀리 돌아가라는 튼실한 신발 한 켤레 일까 평발인 나는 오래 걸을 수 가 없다

 

- 시집 『타인의 슬픔』 미네르바 2008.10

 

현정희

금서 禁書를 쓰다

 

그날 밤 나를 덮친 것은 파도였다

용궁 민박 빗장이 열리고

언덕만큼 부풀어 오른 수평선이

내 몸으로 쏟아져 들어 왔다

빨래줄에 걸린 집게처럼

수평선에 걸려 있던 알전구가

몸의 뒷길을 비추었다

상처가 소금 꽃처럼 피어 있는 뒷길은 필요 없어

거칠지만 단호하게 일회용 밴드는 말을 막았다

두껍기는 하나 알맹이가 없는 책은

온통 상처를 감쌌던 일회용 밴드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아무도 읽기를 바라지 않는 나는 금서이다

상처를 어루어만져 줄 네가 필요하다는 말은

달콤한 만큼 거짓말이다

거짓말이 가득한 책

온 힘을 다해 부둥켜안았던 파도는

날이 밝자 저만큼 물러가 있지 않은가

몸을 떠난 상처는 또 무엇을 그리워해야 하는 지

해는 뜨기도 전에 졌다

 

- 시집 『촉도』,시와시학사, 2015.05

 

 

양종열

어느 유목민의 시계

 

 

하늘이 어둠의 이불을 걷어내면 아침이고

멍에가 없는 소와 야크가 마른 기침을 토해내면

겨울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

식솔만큼의 밥그릇과  천막 한 채를 거둬들이면

그 때가 저녁이다

 

 

인생을 모르는 사람들은 유목민이라 부르지만

그들은 멀리 떠나 본 적이 없다

소와 야크의 양식인  풀이 있는 곳

그곳이 그들의 집이고 무덤일 뿐

 

 

그들에게 그리움이란 단어는 없다

언제 다시 만날까 그들에게 묻지 마라

앞서 떠난 가족들 설산 위에 별로 빛날 때까지

바람의 숨소리를 듣고

해의 기울기에 온몸을 맡기는

그들에게 시계는

물음표를 닯은 커다란 귀와

하늘에 가닿은 눈이다

 

-시집 『촉도』,시와시학사, 2015.05

 

 

서수옥의 낭독극장

문득 길을 잃다 ․ 1

 

 

무거운 짐을 가득 지고

나귀는 앞질러 갔다

뒤처져 따르는

일기장이나 편지 같은 것

녹슨 추억의 꾸러미는

쓸데없이 무겁다

지친 울음으로 나귀가 나를 부른다

너는 어디에

 

-시집 『우리는 서로에게 슬픔의 나무이다』 포엠토피아,1999.

 

 

고목 枯木의 말씀

 

소리가 안들려

귀가 늙었나봐

눈도 가물가물해

나쁜 소리 안듣고

더러운 것 안 보여서 좋아

모처럼 정신이 돌아온

구순 넘은 어머니 말씀이다

-시집 『촉도 』,시와 시학사, 2015

 

 

문득 길을 잃다 ․2

 

한 사람 눈이 멀고

한 사람 말문이 막혔네

흐드러진 복사꽃마다

달빛이 타오르는데

밤길은 아직 멀었다

눈이 먼 길

말문이 막힌 길

손이라도 뜨겁게 잡아

저 새벽 너머

또 무슨 생각이 미치게 하겠는가

두 나그네

 

- 시집 『우리는 서로에게 슬픔의 나무이다』포엠토피아, 1999.

 

 

어머니를 걸어 은행나무에 닿다

 

 

구 백 걸음 걸어 멈추는 곳

은행나무 줄지어 푸른 잎 틔어내고

한 여름 폭포처럼 매미 울음 쏟아내고

가을 깊어가자 냄새나는 눈물방울들과

쓸어도 쓸어도 살아온 날 보다 더 많은

편지를 가슴에서 뜯어내더니

한 차례 눈 내리고 고요해진 뼈를 드러낸

은행나무 길 구 백 걸음

오가는 사람 띄엄한 밤길을 걸어

오늘은 찹쌀 떡 두 개 주머니에 넣고

저 혼자 껌벅거리는 신호등 앞에 선다

 

 

배워도 모자라는 공부 때문에

지은 죄가 많아

때로는 무량하게 기대고 싶어

구 백 걸음 걸어 가닿는 곳

 

 

떡 하나는 내가 먹고

너 배고프지 하며 먹다 만 떡 내밀 때

그예 목이 메어 냉수 한 사발 들이켜고 마는

 

나에게는 학교이며

고해소이며 절간인 나의 어머니

 

- 2015 천태산 은행나무 시제 출품 앤솔로지 『어머니를 걸어 은행나무에 닿다』시에

시노래

나유성(시인, 작곡가)

 

 

 

 

<참고 자료>

현실의 상처를 건너가는 두 가지 경로

박 진 희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하는 동력을 단선적인 몇 가지 요인으로 밝힐 수는 없을 것이나 그것이 대체로 충족이 아닌 결핍에서, 행복이 아닌 불화와 상처에서 연원하는 것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개인적인 차원의 상처이든 시대적 혹은 존재론적 차원의 그것이든, 이에 대한 사유와 통찰, 치유를 향한 탐구 과정이 시의 존재 방식 중 하나인 것이다.

나호열의 『촉도』를 관류하는 의미 또한 동일한 맥락에서 찾아진다. 나호열의 시에서 인식되는 세계는 살고자 “꼬리를 자른다는 것이 퇴로를 끊어버린 촉도”(「촉도」)이며 존재들의 실존의 장이기 때문이다. 이들 시에서 상처는 존재론적이고 사회 구조적인 차원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드러내는 데에 있어서는 시적인 부드러움을 놓치지 않는 섬세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현실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현실 너머의 세계를 사유하고, 사소하고 비루한 일상에서 존재의 의미를 통찰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이 통찰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과 물질 인간과 동물 등, 인간과 존재와의 관계를 성찰하게 되고 현실적인 이유로 우리가 폐기해버리거나 잃어버린 가치와 마주하게 된다.

 

‘쓸모없는 것들’에 대한 열정 - 나호열의 『촉도(蜀道)』

 

‘껌’, ‘틀니’, ‘담쟁이’, ‘지렁이’, ‘지하철’ 등 나호열 시의 시적 대상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들로, 시인은 이들에 대한 사유를 통해 현대 사회의 익명성이나 물질성, 그로 인해 발생되는 존재의 소외를 드러내 보인다. 그러나 나호열의 시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비판에 경도되어 있다기보다는 존재론적인 탐구와 성찰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오히려 경우에 따라서는 “눈길 닿지 않는 구석에 처박혀 있는”(「보자기의 꿈」) 주변적 존재에 대한 따듯한 시선 또한 보여주고 있다.

 

 

안산행 지하철 지금 막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오후 2시에서 3시를 향하여/지팡이로 더듬거리며 한 사나이 마지막 칸을 향하여/걸음을 옮기고 있다/어두운 물방울들이 합쳐지지 않은 채 굉음을 내며/지난 신문을 읽거나 졸고 있다/마지막 칸까지 갔던 사나이가 빈 동전 바구니를 흔들면서/오후 2시와 3시 사이를/혜화역과 동대문 역 사이를/머리와 꼬리 사이를 지팡이로 내리치면서 지나간다/동굴은 철갑으로 둘러싸인 물방울들이/서로 부딪칠 때마다 내는 날카로운 비명 때문에 더욱 어두워진다/내려야 할 곳을 잊지 않으려면 눈이 좋거나 귀가 밝아야 하는데/굉음이며 비명인 물방울들은 눈이 멀었다/빨리 이 생을 지나치고 싶은 어떤 날/어디로 가고 있는지 궁금하여 미치고 싶은 어떤 날

-「어디로 가고 있나」전문

 

위 시는 “오후 2시와 3시 사이”, “혜화역과 동대문역 사이”를 지나가고 있는 “안산행 지하철” 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하철 승객들은 “신문을 읽거나 졸고 있”고 구걸을 하는 ‘사나이’가 지하철 칸칸을 “지팡이로 더듬거리며” 다니고 있는 등 흔한 일상의 광경 중 하나가 시의 소재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시에서 승객은 “어두운 물방울”로 표상되고 있다. 이 ‘물방울’들은 “철갑으로 둘러싸”여 결코 “합쳐지지 않”으며 “서로 부딪칠 때마다” 비명과 굉음을 내기도 한다. 이들은 눈까지 멀어있어 결국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 가게 될 것이다.

승객이 현대인에 대한 메타포라면 익숙한 지하철 안 풍경은 현대사회의 모습에 다름이 아니다. 현대사회의 파편화된 관계와 그로인한 상처, 소외 등을 ‘비명’과 ‘굉음’으로 표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시인이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보다 근원적인 것에 놓여 있는데, 이 시의 제목이기도 한 이 세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관해서 묻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적 자아 또한 “철갑으로 둘러 싸”여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대는 존재들과 같은 현실에 처해있는 공동운명체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맹목으로 달려가던 청춘의 화살이/동천 눈물주머니를 꿰뚫었는지/눈발 쏟아지는 어느 날 저녁/시인들은 역으로 나가 시를 읊었다//오고 가는 사람들 사이에/장미가 피고 촛불이 너울거리는 밤/누가 묻지 않았는데 시인들의 약력은/길고 길었다//노숙자에게 전생을 묻는 것은 실례다/채권 다발 같은 시집 몇 권이/딱딱한 베개가 될지도 모르겠다/어둠한 역사 계단 밑에서 언 손을 녹이는/불쏘시개가 될지도 모르겠다//하늘이 내리시는 무언의 시가/발밑에 짓이겨지는 동안/가벼운 재로 승천하는 불타는 시가/매운 눈물이 된다//아, 불타는 시

-「불타는 시詩」 전문

 

인용한 시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러한 현실에 있어서 시의 의미란 무엇인가를 생각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일 포스티노(Il Postino)’라는 영화로도 잘 알려진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는 이 영화에도 소개된 바 있는 작품 「시」에서 스스로가 시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시가 자신을 찾아왔다고 표현하고 있다. 시는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다고 하면서 그것은 “어떤 길거리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자신을 불렀다고 했다. 시가 그 어떤 것으로 규정될 수 없는 것이라 한다면 그것은 그 모든 것이 ‘아닐’ 수도, 역으로 그 모든 것일 수도 있다. ‘목소리’이기도 하면서, ‘말’이기도 하고, 그리고 ‘침묵’이기도 한 것이 시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인용시의 소재들인 “맹목으로 달려가던 청춘의 화살”, ‘역’, ‘촛불’, ‘노숙자’ 등등은 우리 사회를 표상하는 대표적 상관물들이라 할 수 있다. “동천 눈물주머니를 꿰뚫었”다는 표현에서 “맹목으로 달려가던 청춘”에 대한 연민과 슬픔, 분노 등이 느껴진다. 이러한 정서의 발현은 자연스럽게 ‘역’, ‘촛불’ 등의 시적 대상에서 시위나 시민 문화제의 현장을 유추하게 한다. “시인들이 역으로 나가 시를 읊”는 행위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할 때 시는 그 어떤 구호보다도 가슴에 울림을 주는 우렁찬 ‘목소리’가 되며 공감과 연대를 이끄는 ‘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맹목으로 달려가던 청춘”은 ‘노숙자’와의 연계성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을 수 없는 ‘노숙자’의 전생이 “맹목으로 달려가던 청춘”은 아니었을까. 이들에게 시는 ‘목소리’나 ‘말’로 매개될 수 없는 것에 해당한다. “딱딱한 베개”, 혹은 “언 손을 녹이는 불쏘시개”나 될지 모르는 일이다. 이러할 때 시는 ‘침묵’이다. “하늘이 내리시는 무언의 시”는 “발밑에 짓이겨지”고 지상에서 불타고 있는 ‘침묵의 시’는 “가벼운 재로 승천”하여 종국에는 “매운 눈물”이 되고 만다.

 

위 시는 시가 어떻게 삶 속에 스며들 수 있는가를 묘파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반복되는 삶들이 일상성에 매몰되지 않고 시로 승화될 수 있는 것은 현실 너머의 세계에 대한 시인의 사유 때문이다. 인용시는 시가 ‘현실 너머의 무엇’이라는 것에 얽매이지 않을 때, 혹은 ‘시’라는 권위를 내려놓을 때, 삶 속으로 성큼 들어설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촉도’라는, 파편화된 세계 상처의 세계를 건너가는 시인의 전략은 무엇일까. 그는 두 가지의 길을 예비해 두고 있다. 그 하나가 능동적으로 ‘주변인’, ‘외톨이’로 되는 일이다.

 

 

천형은 아니었다/머리 함부로 내밀지 마라/지조 없이 꼬리 흔들지 마라/내가 내게 내린 약속을 지키려 했을 뿐이다/뿔 달린 머리도/쏜살같이 달려가는 시간의 채찍 같은 꼬리도/바늘구멍 같은 몸속으로 아프게 밀어 넣었을 뿐//지상을 오가는 더러운 발자국에/밟혀도 꿈틀거리지 않으려고 지하생활자가 된 것은 아니다/주변인이라고 불러도 좋겠다/외톨이라고 불러도 좋겠다/햇볕을 좇아 하늘을 향해 뻗어 가는 향일성의 빈손보다/악착같이 흙을 물고 늘어지는 뿌리의 사유 옆에서/거추장스러운 몇 겹의 옷을 부끄러워했을 뿐//제자리를 맴도는 세상에서 /빠르거나 느리거나 오십 보 백 보/허물을 벗을 일도/탈을 뒤집어쓰다 황급히 벗다 얼굴을 잃어버리는 일도 내게는 없으나/온몸을 밀어 내며 나는 달려가고 있다/이 밝은 세상에서 어두운 세상으로/온몸을 꿈틀거리며 긴 일획을 남기며 가고 있다

-「지렁이」전문

 

“하늘을 향해 뻗어 가는 향일성의 빈손”이란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해낼 뿐, 결코 채워지지 않는 현대인의 허황된 욕망을 표상한다. “쏜살같이 달려가는 시간의 채찍”에 매달려 “뿔 달린 머리”를 “함부로 내밀”거나 “지조 없이 꼬리 흔들지” 않기 위하여 ‘천형’이 아니라 스스로 “지하생활자”를 선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쏜살같이 달려가”봤자 “제자리를 맴도는 세상에서 /빠르거나 느리거나 오십 보 백 보”임을 아는 까닭이다.

시인은 ‘촉도’를 건너가는 자세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이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지상을 오가는 더러운 발자국에/ 밟혀도 꿈틀거리지 않”으며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몇 겹의 옷을 부끄러워”하는 태도, ‘주변인’, ‘외톨이’로 불리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온몸을 꿈틀거”려서라도 기꺼이 “밝은 세상에서 어두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태도가 그것이다. 이런 자세는 “악착같이 흙을 물고 늘어지는 뿌리의 사유”를 통해서 가능해진다. 모두 드러나 있는 ‘밝음’이 아니라 드러나 있지 않은 진실, ‘아니’고 ‘모르’는 “어둠의 세상”을 향한 사유를 지향함으로써 추동되는 것이다.

이처럼 능동적으로 ‘주변인’, ‘외톨이’가 되는 것이 ‘촉도’를 건너는 하나의 태도라면 또 다른 하나는 현대 사회가 발전을 담보로 끊임없이 포기해 온 가치들에 대한 추구로 드러난다.

오늘도 나는 청소를 한다/하늘을 날아가던 새들의 어지러운 발자국/어두운 생각 무거워/구름이 내려놓은 그림자//지상에서는 쓰레기라 부르는/그 말씀들을/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화로 같은 가슴에 모으기 위해/기꺼이 빗자루를 든다//누군가 물었다/성자가 된 청소부는 누구이며/청소부로 살다 성자 된 이는 또 누구인가//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리라/사라졌다가 어느새 다시 돋아 오르는 새싹을/그 숨결을/당신은 비질하겠는가/아니면 두 손 받들어 공손히 받쳐 들겠는가

-「성자와 청소부」 전문

 

‘하늘’과 ‘지상’, ‘성자’와 ‘청소부’, ‘말씀’과 ‘쓰레기’ 등 위 시는 제목에서부터 전체에 걸쳐 성(聖)/속(俗), 혹은 귀(貴)/천(賤)이라는, 의미의 이항대립적인 구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 구도는 표층적인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일 뿐 대립의 경계는 끊임없이 무화되고 있다. “지상에서의 쓰레기”는 곧 “하늘의 말씀”이고 ‘청소’는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으기 위해”서이며 “성자가 된 청소부”나 “청소부로 살다 성자 된 이”는 궁극적으로 등가로 의미화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항대립의 관계나 개념은 지금 여기의 질서 체계, 곧 일상의 현실을 대변한다. 반면 “하늘을 날아가던 새들의 어지러운 발자국”이나 ‘구름’의 “어두운 생각”, “돋아 오르는 새싹”의 ‘숨결’ 등은 여기에 포섭되지 않는 의미항들이다. 시인은 이를 “지상에서는 쓰레기라 부르는 것들”로 사유한다. 즉 끊임없이 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현대사회에서 이들과 같이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것들은 지극히 쓸모가 없는, 따라서 ‘버려야’ 하는 가치들이라는 것이다.

“당신은 비질하겠는가 아니면 두 손 받들어 공손히 받쳐 들겠는가”라는 물음은 이러한 가치들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지향을 상기토록 한다. 나아가 이는 또한 시인의 인간본성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망설이지 않고” 물을 수 있는 시적 자아의 태도에서 어떤 확실한 대답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무엇을 선택하든 하나로 귀결될 것이다. 이 시에서 ‘비질’은 “화로 같은 가슴”에 ‘말씀’들을 “모으기 위”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는 “성자가 된 청소부”의 겸허한 행위이자 ‘청소부’에서 ‘성자’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따라서 ‘새싹의 숨결’을 ‘비질’하는 것과 “두 손 받들어 공손히 받쳐” 드는 것은 동일한 의미망에 속하는 행위들이라 할 수 있다. 가령 “하늘을 우러르는 맑고 그윽한 일”(「바람의 전언」)과 같은.

결국 “지상에서는 쓰레기라 부르는”, 그 쓸모없는 것들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인데, 이는 시인이 추구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그렇기에『촉도』에서 이러한 시의식과 주제를 발현하고 있는 작품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봇대에 기대어 하루 종일 개점휴업인/사내의 머리 위에 떨어질 듯 위태롭게 펄럭이는//칼 가세요//지나가는 바람이 심심한 듯 칼을/갈로 가는 동안//시퍼렇게 벼리고자 했던 몸이/스르르 한 세상 공중제비를 돌면서/이윽고 한 자루의 칼이/어떻게 가을이 되는지/저 홀로 부끄러워 낯 붉어지는/한 사내의 꿈

-「칼 가는 사내」전문

 

입시 전쟁, 취업 전쟁 등등 우리 사회가 각종 전쟁의 장이 되어온 지도 오래다. 칼을 갈아야만 살 수 있는 세계라는 점에서 “칼 가세요”라는 “사내의 머리 위에 떨어질 듯 위태롭게 펄럭이는” 호객 문구는 현대인의 삶을 추동하는 슬로건으로까지 의미가 확장된다. “전봇대에 기대어 하루 종일 개점휴업인 사내”의 ‘꿈’은 바로 ‘칼’을 많이 가는 것이다. 이러한 ‘사내의 꿈’이 “부끄러워 낯 붉어”진다는 대목에서 “시퍼렇게 벼린” 날들은 결국 서로를 베는 흉기가 될 것임을 간취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에서 ‘칼’은 ‘갈’로, ‘갈’에서 다시 ‘가을’로 의미론적 변이를 거치게 된다. 시인의 탁월한 언어감각이 돋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는데, ‘펄럭임’에 의해 ‘칼’자가 ‘갈’자로 보이는 순간을 시인은 “지나가는 바람이 칼을 갈로 간” 것으로 언어를 조탁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저 “지나가는 바람”에 의해 “한 자루의 칼”이 “가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나가는 바람”은 바로 실용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지상에서는 쓰레기라 부르는” 것에 속하는 대상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지나가는 바람”에 의해 ‘칼’이 ‘가을’이 되는 과정은 쓸모없는 것들이 인간을 구원하는 그것을 표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지상에서는 쓰레기라 부르는” 이 ‘쓸모없는 것들’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사그락거리는 내 몸이 배운 단어들을/한 마디로 축약하면 별이다/모래시계 속에서 낙하하는 별들을/또 한 마디로 더 줄이면 바람이다/바람 속에 숨어있는 둥지 안에는/아직 내가 배우지 못한 단어가/부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나는 낡아가고/그 알은 익어가고/단어장에 마지막으로 배운 그 말/푸른 잉크에 묻혀 나올 때/푸드득 무한을 향해 날아가는 새/먹물같은 그림자를 남긴다․//사랑이라는 말

-「낡아가고…… 익어가고」 전문

“몸이 배운 단어들”이란 바로 시적 자아의 삶 자체이다. 이를 축약하면 ‘별’이고 더 줄이면 ‘바람’이라는 것은 결국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이들의 삶은 자연에서 비롯하여 자연으로 스며드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시적 자아가 “아직 배우지 못한 단어”, “마지막으로” 배우게 될 ‘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육신이 “낡아가”는 것이 슬프지만은 않은 까닭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물리적인 것들은 낡아갈 수밖에 없지만 ‘사랑’과 같은 초월적인 것들은 “무한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곧 낡아가는 것이 아니라 “부화되기를 기다리”며 “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화’된다고 해서 지닐 수 있는 것이 사랑은 아니다. “사랑이라는 말”을 배우는 순간, 그것은 “푸드득 무한을 향해 날아가”기 때문이다. 사랑의 다른 이름은 자유라는 의미도 될 수 있겠다. 또 한편으로는 “전쟁이 뭔지도 모르고 전쟁을 치르고서야 전쟁 아닌 시간에 대해서 뉘우치는 것”(「생각하는 사람」)과 같이 진정한 사랑의 가치는 그것을 잃은 후에야 알게 된다는 의미도 될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이 남기게 되는 “먹물같은 그림자”란 어쩌면 “이미 예정되어 있는 거역할 수 없는 슬픔”(「가슴이 운다」)인지도 모른다.

나호열은 그의 시에서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철저하게 그것에 기반하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현실 그 너머의 것을 사유하고 지향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지상에서는 쓰레기라 부르는”, ‘쓸모없는 것들’이 그의 시세계에서는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그 중심에 ‘사랑’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주변인’으로서의 이 쓸모없는 것들에 대한 열정이 나호열 시의 요체라 할 수 있겠다.

 

-계간 시와 정신 2015년 가을호

 

 

다시 사람이다

황정산

시인 ․ 문학평론가

 

최근 우리 시에서 사람이 사라지고 있다. 사람인 시인이 쓴 시이고 또 무엇보다도 시를 쓴 주체의 정서와 사고가 전면에 드러나는 시에서 사람이 사라졌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그것은 욕망의 과잉과 깊이 관련이 있다. 최근 우리 시는 과잉된 자기 욕망의 현시가 주류가 되어 왔다. 내밀한 자기 욕망을 감각적인 언어로 드러내는 현란한 언어유희가 하나의 유행을 이루며 좋은 시로 평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욕망의 표현들이 이제까지 우리의 자유로운 욕망의 실현을 통제해온 권력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고 자본의 힘에 내맡겨져 주체성을 상실한 욕망의 편린들을 과감하게 들춰보임으로써 자본의 지배에 대항하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들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함으로써 그것이 가진 문제의식은 사라지고 하나의 언어적 컨벤션이 되어가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시적 언어가 최초의 문제의식을 상실할 때 그것은 죽은 언어가 되고 결국 상투적 표현의 답습이 되어 결국은 말하는 주체도 그 말해지는 대상도 모두 진정성을 상실하게 된다. 최근 시에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그런데 최근 이 시인의 시집에서 사람에 대한 회복과 그것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무척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연에서 사람을 찾다; 나호열의 『촉도』

 

나호열 시인은 언어의 구도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는 말을 통해 삶의 형식과 방향을 탐색하고 또 거꾸로 삶에서의 깨달음을 시적 언어로 표현해 왔다. 이번 시도 그의 이런 시적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번 시집이 크게 눈에 띄는 이유는 바로 그의 시들에서 보이는 사람에 대한 새로운 관심 때문이다.

이번 나호열 시인의 시집에는 자연친화적 성격들의 시가 많다. 하지만 이 시들에서 보이는 자연은 자연에서 유유자적을 말하는 전통적인 동양적 자연이나 목가적인 자연은 아니다. 그의 시에서 자연은 항상 경계에 놓여 있다. 그의 시는 자연과 도시, 자연과 인간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의 사유를 보여주고 이를 통해 삶을 성찰한다. 그 중심에 바로 사람이 있다. 가령 이런 것이다.

 

길은 옛길이 좋아

강 따라 굽이치며 가다가

그리움이 북받치면 여울목으로 텀벙 뛰어들고

(중략)

풀꽃마냥 주저앉은 사람들

고난으로 땀 흘리는 마을이라고

지상에서 가장 슬픈 이름을

누가 부르기 시작했는지 몰라

             

                          - 「고한에서」 부분

 

 

이 시에서 자연은 사라져 가는 것들로 존재한다. 굽이치는 강물과 풀꽃이 있지만 고한은 이미 탄광촌으로 이제는 스키장이 있는 레저 단지로 개발된 곳이다. 하지만 시인은 여기에서 자연과 인간과의 대립이나 농촌과 도시의 대립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자연이 사라져 가듯 거기 사는 인간들도 가장 슬픈 노래를 부르며 고난의 삶을 살다가 사라져 갈 운명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자연과 인간은 별개가 아니고 자연이 사라져 가면 거기 사는 인간들 역시 사라져 가게 된다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 시도 마찬가지이다.

 

 

늦은 밤 고개 들어 도시의 손톱달을 본다

너도 있으나마나

그러나 흐린 날이든 맑은 날이든 달은 떠오르고

끊임없이 이울고 벅차오른다

시궁창에도 빛살무늬를 남기고

풀벌레 울음에 넌지시 손을 내민다

내 그림자만 봐도 마음 든든하다고

늙어가는 아내가 저만큼 달려오듯이

 

                                   - 「있으나 마나」 부분

 

 

우리 모두는 "있으나 마나"한 잉여의 존재이다. 특히 자연 속의 나를 들여다보면 더 그렇게 느껴진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꾸로 자신을 중심에 놓고 세상의 모든 것들, 특히 우리의 삶의 근원이고 또 터전이기도 한 자연을 있으나 마나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시인은 바로 있으나 마나한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자 늙어가는 아내만큼 모든 사람들이 소중한 존재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이런 성찰을 통해 시인은 모든 떠나는 것들을 바라본다.

 

 

경비원 한 씨가 사직서를 내고 떠났다

십년 동안 변함없는 맛을 보여주던 낙지집 사장이

장사를 접고 떠났다

이십 년 넘게 건강을 살펴주던

창동피부비뇨기과 원장이 폐업하고 떠났다

(중략)

아득하고 어질한 하늘을 향해 내걸었던

밥줄이며 밧줄인 거미줄을 닮았다

꼬리를 자른다는 것이 퇴로를 끊어버린 촉도

거미에게 묻는다

 

                            - 「촉도」 부분

 

 

삶이 모두 가파른 언덕 위의 외줄기 길이고 우리의 삶이 가느다란 공중의 그물줄에 매달린 거미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인식을 시인은 보여준다. 이 도시의 삶 속에서 자본이 횡행하는 도시의 삶 속에서는 자연도 인간도 모두 슬프고 쫓겨가는 존재일 뿐이다. 거기에는 자연으로의 도피도 인공 도시에서의 찬란한 미래도 없다. 인간도 역시 자연의 일부이고 그리고 서서히 퇴로가 없는 촉도에 내몰리는 삶을 강요받을 뿐이다.

 

                       - 계간 『미네르바』2015 겨울호 (시집 골라읽기)

 

황정산

1994년 『창작과 비평』으로 평론 등단. 2002년 『현대시문학』으로 시 등단. 평론집 『주변에서 글쓰기』 등

 

 

자연과 생활의 경계

함종호

 

 

한때 자연이 세계의 전부였던 시대가 있었다. 우리의 감각은 온통 자연을 향해 열려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자연이요, 귀에 들리는 것도 자연이요, 맛이나 향기 등도 모두 자연을 경험하는 것에 바쳐졌다. 어느 시대에서나 가장 예민한 감각의 촉수를 지닌 사람들은 자연물에 적극적인 반을을 보였으며 그 결과 감각적인 인상의 세계를 시적으로 새롭게 창조해내곤 했다. 적어도 그 당시에 시인들이 시로 읊었던 자연은 인간세계와 조화를 이뤄 하나의 일체된 세계를 구성했다. 바라보는 주체도, 보이는 대상도 하나로 혼융된 세계였던 것이다. 즉 인간은 자연의 일부였고, 인간의 삶과 생활의 터전 또한 자연이었다.

 

자연이 세계의 전부였던 시대에 균열이 가해진 것은 비단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자연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에 비한다면 그것은 지극히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세계에 대한 균열은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고, 급기야 이제는 자연의 괴와 소멸을 걱정해야 할 위기에 놓여 있다. 이제 자연과 인간 간의 조화와 융합의 모습은 엄격하게 분리되었고 이에 발맞춰 자연은 인간세계에 종속된 채 그 본연의 가치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 결과 세계를 바라보는 주체(인간)와 보이는 대상(자연)간의 뚜렷한 구별이 이루어졌고, 보이는 대상은 인간의 사고와 인식 결과를 의미하는 것에 불과해졌다. 이는 시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 자연이 세계의 전부였던 시대의 시인들은 자연물로써의 대상에 대해 생각하기 이전에 자신의 몸으로 느끼고 체화했다. 그러나 자연세계와 인간세계가 철저히 구분되고 분리된 현시대에서 자연물은 시인의 사유를 따라 관념의 한 끝자락을 잡고 의미의 표면을 미끄러지며 부유한다.

 

나호열의 시집 『촉도』에 등장하는 자연물 또한 그러하다. 그의 시편에 빈번하게 나타나는 자연물은 어디까지나 보조관념으로써 주어져 있으며, 이는 시인의 사유와 인식을 가져오는 매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편에 등장하는 자연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전통적인 상징성을 위반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한 때 집이었고

기둥이었던 폐기물 속에서

새들이 날아오른다

둔탁한 광물의 알 속에서

밤새 얼룩진 기도를 마친

순례자처럼

붉은 눈물의 태양을 향해 솟아오른다

누구는 스모그라 하고

누구는 먼지라고 호명하는

새들의 뒤를

몇 점 구름이 수호자가 되어

뒤따르고 있다

버려진 폐기물들은 다시 한 번

더 버려진다

구름의 집이라는 낭만의 집

그러나 구름은 집이 없다

몸통은 없고

날개만 퍼덕이는

하루살이처럼

 

- 「구름의 집」 전문

 

 

자연적인 대상에 천착한 시들은 그것 안에 고유한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때의 상징적인 의미란, 대개 전통과 관습에 기반을 둔 어떤 것이다. 그러나 나호열의 경우, 자연물은 오히려 일상적인 삶의 현장을 대변하는 보조적인 수단에 해당하며, 생활세계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역할로 존재한다. 가령 위의 시 구름의 집에서 자연물인 ‘새’는 ‘폐기물’ 더미 위를 날아가고, 그런 ‘새’를 뒤따르는 ‘구름’은 그 실체가 ‘스모그’ 또는 ‘먼지’인 것이다. 전통과 관습의 차원에서 ‘새’와 ‘구름’ 등은 자연세계를 배경으로 자연에의 관조 내지는 자연과의 합일을 그리는 주요 소재로 흔히 등장한다. 이런 맥락에서 묘사된 시편의 경우 흔히 자연물과 시적 화자 간의 물리적인 거리는 어느덧 상쇄되고 동일화가 일어나곤 한다. 그러나 위 시의 경우 이들은 자연세계와 대척점에 선 산업사회와 같은 인위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산이나 들과 같은 자연적 배경이 아닌, 폐기물 더미 위를 날아가는 새의 모습에서 부조화의 한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 더욱이 그 새를 뒤따르는 것이 ‘스모그’와 ‘먼지’ 등 산업화된 생활세계의 잔재들인 것으로 보아 과거 자연이 세계의 전부였던 시대의 관습적 상징의 체계 안에서 살펴볼 수 있었던 ‘낭만’의 요소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로써 자연을 상실한 시대에 산업화된 생활세계를 배경으로 하늘을 나는 새는 비극적인 정서를 극대화 시킨다.

 

 

 

강남 이 편한 세상에 그가 왔다

검은 제복 젊은 경비원이

수상한 출입자를 감시하는 정문을 지나

대리석 깔린 안마당에 좌정했다

몸이 반쪽으로 쪼개져도

죽지 않고 용케

당진 어느 마을 송두리째 뭉글어져 사라져도

용케 살아남았다

마을을 오가는 사람들의

머리 쓰다듬어 주고

비바람 막아주며 죽은 듯

삼백년 벼락 맞고도 살아 있더니

이 편한 세상에

한 그루 정원수로 팔려 왔다

푸르기는 하나 완강한 철책에 둘러싸여

손길 닿지 않는 그 만큼의 거리

저 불편한 세상과

이 편한 세상 사이에서

눈이 멀고

귀가 막힌 침묵의 우두커니

새 한 마리 깃들지 않은 이 곳

집과 무덤 사이의 어디쯤이다

 

- 「이사」 전문

 

 

나호열의 시편에 등장하는 자연물이 비극적인 정서를 야기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자연물이 자연세계에 놓여 있지 않고 인간의 인위적인 생활세계와 직접 관계하기 때문이다. 구름의 집에서의 자연물 ‘새’가 ‘버려진 폐기물’을 배경으로 날아오를 때, 그것은 ‘스모그’와 ‘먼지’들과 관계한다. 이 과정에서 비극적 정서가 야기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사에서도 이것은 예외가 아니다. ‘저 불편한 세계’로 대표되는 자연세계로부터 ‘ 이 편한 세상’- 이는 획일화된 인간의 주거공간(아파트)의 특정 브랜드를 연상시킨다 - 으로 대표되는 인간세계로 나무 한 그루가 ‘이사’를 왔다. 이사 오기 전 그 나무는 “마을 오가는 사람들의/ 머리 쓰다듬어”줄 정도로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능동적인 소통을 꾀했던 것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 이 편한 세상’으로 이사온 후로는 ‘완강한 철책’에 가로막혀 “눈이 멀고”, “귀가 막히”는 등 소통이 원칙으로 차단되었다. 보호라는 미명하에 행해지는 감시, 그리고 편안함을 가장한 억압과 통제 등이 ‘ 이 편한 세상’으로 이사 온 나무에게 놓인 상황인 것이다. 「이사」에서의 이와 같은 시적 정황은 우리로 하여금 삶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회의를 갖도록 만든다. 보호라는 미명하에 행해지는 감시, 그리고 편안함을 가장한 억압과 통제 등은 우리네 삶에서도 똑같이 일어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천형은 아니었다

머리 함부로 내밀지 마라

지조 없이 꼬리 흔들지 마라

내가 내게 내린 약속을 지키려 했을 뿐이다

뿔 달린 머리도

쏜살같이 달려가는 시간의 채찍 같은 꼬리도

바늘구멍 같은 몸속으로 아프게 밀어 넣었을 뿐

지상을 오가는 더러운 발자국에

밟혀도 꿈틀거리지 않으려고 지하생활자가 된 것은 아니다

주변인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외톨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햇볕을 좇아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향일성의 빈 손 보다

악착같이 흙을 물고 늘어지는 뿌리의 사유 옆에서

거치장스러운 몇 겁의 옷을 부끄러워했을 뿐

제 자리를 맴도는 세상에서

빠르거나 느리거나 오십 보 백 보

허물을 벗을 일도

탈을 뒤집어쓰다 황급히 벗다 얼굴을 잃어버리는 일도 내게는 없으나

온 몸을 밀어 내며 나는 달려가고 있다

이 밝은 세상에서 어두운 세상으로

온 몸을 꿈틀거리며 긴 일획을 남기며 가고 있다.

 

- 「지렁이」 전문

 

 

앞서 소개한 시에서 살펴본 것처럼, 나호열의 시편에 등장하는 자연물은 더 이상 아름답거나 자족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비천하고 비루한 것에 더 가깝다. 여기서 시적 대상에 내재된 비천함과 비루함은 자연물이 본래 가지고 있던 속성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자연세계와 인간세계 간의 명확한 분리와 구분, 그리고 그러한 경계 짓기의 철저함 속에서 파생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마치 “허물을 벗”거나 , “탈을 뒤집어 쓰”는 일 없이 “밟혀도 꿈틀거리지 않”는 ‘지하생활자’로서의 ‘천형’을 살아가는 ‘지렁이’처럼, 이때의 비천함과 비루함은 숙명과도 같은 것으로 간주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적 화자는 ‘지렁이’에게서 “악착같이 흙을 물고 늘어지는 뿌리의 사유”와 같은 존재의 심연으로 끊임없이 빠져든다. 그것은 적어도 부끄러운 삶은 살아가지 않겠다는 일종의 ‘약속’인 것이다.

 

 

사그락거리는 내 몸이 배운 단어들을

한 마디로 축약하면 별이다

모래시계 속에서 낙하하는 별들을

또 한 마디로 더 줄이면 바람이다

바람 속에 숨어있는 둥지 안에는

아직 내가 배우지 못한 단어가

부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낡아가고

그 알은 익어가고

단어장에 마지막으로 배운 그 말

푸른 잉크에 묻혀 나올 때

푸드득 무한을 향해 날아가는 새

먹물 같은 그림자를 남긴다․

사랑이라는 말

 

 

- 「낡아가고... 익어가고」 전문

 

 

이 시 「낡아가고... 익어가고」에서 부끄러운 삶을 경계하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태도는 ‘별’,‘바람’,‘새’등의 자연물과 관계 맺으며 변주된다. 그리고 이러한 시적 화자의 태도는 ‘푸드득 무한을 향해 날아가는 새’처럼 지치지 않고 영원히 경주되며, 자신이 몸으로 배운 한 마디의 단어인 ‘사랑’을 지향한다. 그러나 시적 화자가 품고 있는 ‘사랑’에 대한 지향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이는 그 말이 “푸른 잉크에 묻혀 나올 때”, “먹물 같은 그림자를 남”기기 때문이다. 왜 하필 ‘푸른 잉크’이고, ‘먹물 같은 그림자’일까. 시적 화자가 관조하는 ‘새’ 그리고 ‘새’로 대표되는 자연물로써의 시적 대상은 아직 자연세계와 인간이 생활세계가 철저히 분리되고 구분된 세계의 경계선에 서서 이 두 세계 사이를 머뭇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함종호

문학박사. 서울시립대학교 강의전담교수. 저서 『시․ 영화 ․이미지』, 『글쓰기 차별화 전략』(공저)가 있음.

계간 『시와 산문』 2015년 겨울호

 

 

나호열 시집 『촉도』

장인수

 

 

나호열 시인의 『촉도』는 길 떠남의 시집이다. 여정 시집, 여로 시집, 여행 시집이다. 순례자의 시집, 나그네의 시집이다. 유목민의 시집이다. 길을 떠나면서 풍경을 노래하고, 어떤 장소에 도착해서 그곳 풍경을 노래하고 , 지나가면서 풍경을 노래한다.

거진, 강화도, 장항, 태장리, 신두리, 봉선사, 맹지, 도선사, 괴산......'바람의 소리를 듣고/ 해의 기울기에 온몸을 맡기며/ 물음표를 닮은 커다란 귀와 하늘에 가닿은 눈'('어느 유목민의 시계'중)으로 떠난다. 떠돌이의 노래다. '어두워서 춥고/ 추워서 더욱 어두운 마을 밖에서/ 칼바람을 남루로 얻어 쓰고/ 저, 외톨이 나무의 꿈은 꺾어져 돌아가는 길 끝까지 걸어가 보는 것'('태장리 느티나무의 겨울'중)이 그의 길 떠남이다. 수행자처럼, 순례자처럼 길을 떠난다. 나그네가 되어 그가 가장 많이 본 것은 아마도 별과 바람인 듯하다. '사그락거리는 내 몸이 배운 단어들은 / 한 마디로 축약하면 별이다/ 모래시계 속에서 낙하하는 별들은 /도 한 마디로 더 줄이면 바람이다'('낡아가고...익어가고' 중)라고 노래한다.

 

 

 

내 눈길이 눈물에 가닿는 곳

내 손이 넝쿨손처럼 뻗다 만 그곳부터

시작되는 촉도

 

 

 

손 때 묻은 지도책을 펼쳐놓고

낯 선 지명을 소리 내어 불러보는 이 적막한 날에

정신 놓은 할머니가 한걸음씩 밀고 가는 저 빈 유모차처럼

절벽을 미는 하루가

아득하고 어질한 하늘을 향해 내걸었던

밥줄이며 밧줄인 거미줄을 닮았다

 

- 「촉도」 부분

 

 

촉도는 매우 험한 길을 뜻하는 말이다. 소설 삼국지를 읽은 사람이라면 중요무대로 촉이 등장하고 유비가 촉한을 세우는 과정에서 자주 접하게 된다. 그 길이 얼마나 험하던지 시선 이백은 촉도난 이란 시에서 '촉도로 가는 길이 험난하니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 어렵구나'라고 표현 하였을 정도다. 천길 낭떠러지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길이니 오죽하였겠는가. 목숨을 걸고 가야하는 험로다. 담쟁이 넝쿨손이 뻗는 절벽의 길. 인생길도 때로는 이와 비슷할 때가 있다. 험난한 길조차 건너가야 한다. 거미에게는 허공이 길이다. 허공에 거미줄을 치면 그곳에 거미의 길이 생긴다. 절벽도 길이며, 허공도 길이다. 시집 촉도는 길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통찰이며, 길 떠남의 시편들로 가득 차 있다.

 

 

섬들이 부딪치지 않으려고

파도로 외로움을 만드는 시간

눈에 불심지를 매단 차들이

조심조심 좌우로 앞뒤로

순례의 길을 간다

 

 

섬 속에 살고 있는 또 하나의 섬

무언의 깜빡이를 켜고 능숙하게 핸들을 돌리는

신을 닮은 우리는 스스로 고독한 채

말문을 닫는다

길 위에 떠도는 다도해

긴 팔을 뻗으면 닿을 듯해도

물 속에 다리를 묻은 두루미처럼

몹시도 가려운 그리움의 바닥을 쳐다보며

커엉컹 개 짖는 소리 들린다

급히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어둠의 벼랑 아래로 아득히 추락하는

떠도는 섬

 

- 「떠도는 섬」 전문

 

 

'섬' 이라는 말에는 묘한 어감이 있다. 파도는 외로움을 만든다. 파도는 외로움의 성분이다. 섬은 외로움의 성분으로 둘러싸여 있다. 섬에는 외로운 사람이 살고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을 ' 섬 속에 살고 있는 또 하나의 섬'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섬은 가만히 있는 듯 하지만 섬은 떠돈다. 다도해에는 섬이 많다. 섬 사이를 섬이 떠돈다. 섬 사이를 사람이 떠돈다. 섬과 섬 사이에 외로움이 있고, 순례의 길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고, 섬과 섬 사이에 사람이 있다. 섬과 사람이 구별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섬은 나, 너, 우리, 그리고 또 다른 고독한 섬이다.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우리의 뒷모습은 모두 섬을 닮았다. 섬은 사람을 닮고, 섬은 신을 닮았다. 나도 너도 섬이다. 시골도 섬, 도시도 섬, 이 지구도 섬이다. 신 앞에서 모두 섬이다. 섬은 창조의 근원이며 실존의 근원이다.

 

 

날개가 되어주고 싶어

저 벽의 날개

너와 나를 가르는 저 벽의 날개

견고한 모든 슬픔이

새가 되어 날아갈 그날까지

나는 푸르게 푸르게

날개를 키울꺼야

 

- 「담쟁이의 꿈」 부분

 

 

 

 

그는 늘 어디로든 가고 있다. 때로는 바람이 되어, 때로는 새가 되어 경계를 넘고 있다. 때로는 나무가 되어 바람의 전언을 듣고 있다. 담쟁이를 보면서 벽을 넘어서는 꿈을 꾼다. 날개를 달고 새가 되어 날아가는 꿈을 꾼다. 험난한 인생길을 떠돌며 삶의 속성을 깨우치고, 세상의 이치를 통찰하고 있다. 우주 안에는 무수한 흐름과 길이 존재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길 떠남은 숙명이다. 넝쿨을 뻗는 일조차 떠남과 날아감의 징표들이다. 나그네에게 고정된 풍경은 없다. 나그네에게는 모든 존재가 흘러가는 풍경이다.

 

장인수

충북 진천 출생. 200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교실, 소리 질러』 외

계간 《시와 경계》 2015년 가을호에 게제

 

 

 

나호열 羅皓烈 연보 年譜

 

 

1953년 8월 1일(음)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 남전리 282 번지에 출생

1980년 울림시 동인으로 작품활동 시작

Mook지 우리 함께 사는 사람들 1 (영학출판사),

우리 함게 사는 사람들 2(정신세계사)

1986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어떤 하루」 외 2편이 당선됨

1989.06 시집 <담쟁이덩굴은 무엇을 향하는가> 도서출판 청맥

1989.08 시집 <집에 관한 명상 또는 길 찾기> 소담출판사

1991.03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문예진흥기금 받음( 시집 <망각은 하얗다> )

1991.12 시집 <망각은 하얗다> 도서출판 예진

1991.12 사진시집 <아무도 부르지 않는 노래> 도서출판 예진

1991.12 【시와 시학】 중견시인상 받음(상계동 연작시 )

1993.05 시집 <칼과 집> 시와 시학사

1999.12 시집 <우리는 서로에게 슬픔의 나무이다> 포엠토피아

2000.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정보화사업 문인으로 선정됨

2001.02 시집 <우리 함께 사는 사람들 3> 도서출판 예진

2002.08 시집 <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 포엠토피아

2003.08 사화집 <영혼까지 독도에 산골하고> 독도사랑협의회

2004.10 시집 <낙타에 관한 질문> 리토피아

2004 녹색시인상 받음(수상시집<낙타에 관한 질문>)

2005.10 영문사화집 <칠 천 만개의 독도를 꿈꾸며> 독도사랑협의회

2007.10 시집 <당신에게 말 걸기> 예총 출판부

2007.10 한민족문학상(대상) 받음 (수상시집 <당신에게 말 걸기>)

12 (사)한국예총 특별 공로상 받음

2008.10 시집 <타인의 슬픔> 미네르바

2011.01 시집 <눈물이 시킨 일> 시와시힉사

2011.12 (사)한국문인협회 서울시 문학상 받음 (수상시집 <눈물이 시킨 일>)

2015.05 시집 <촉도> 시와시학사(2015년 세종문화나눔 도서 선정)

2015.12 충남시인협회 문학상(대상)받음 (수상시집<촉도>)

 

경력

 

 

인터넷문학신문 imoonhak.com 발행인(2000 - 2010),

독도사랑협의회 회장(2003 -2007)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역문화위원( 2005- 2008),

(사) 한국예총 정책연구위원장 겸 월간 에술세계 편집주간 (2005 -2010),

현재는 경희대학교 사회교육원 교수, 계간 시와 산문 편집위원, 한국녹색시인협회 회장, 건국문학회 회장, 서울뉴스투데이(sntoday)발행인으로 있음.

 

http://blog.daum.net/prhy0801(세상과 세상 사이)

prhy0801@khu.ac.kr, prhy08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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