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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와 시집에 대한 평론

바람의 전언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4. 5. 10. 22:32

 

바람의 전언

 

저기, 별똥별

그리우면 지상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밤을 기다려

하루 이틀 마다 않고

하늘을 우러르는 일은 맑고 그윽한 일

오지 않는 전언 대신 겨울이 왔고 바람이 불었다

 

 

푸른 이끼가 돋은 약간의 우울에는 쌉싸름한 냉소가 섞여

주저하며 닫지 않은 문 안으로 그림자를 들여 놓았다

얼굴 보이지 않으니 가슴이 따가워지고

목소리 들리지 않으니 귀가 커지는 바람의 그림자

홑이불 야윈 몸에 두르니 기척이 들릴 듯도 하였다

 

 

별똥별은 화약을 품고 있었다고 바람이 전해 주었다

이런, 이미 당신은 나를 스쳐 지나갔다

봄이면 지천으로 당신을 받아들여 온몸으로 터져버린 꽃들을

누군가는 보게 될 것이다.

 

한울문학 2014년 봄호 권두시

 

  사람이 살아가는 길에는 왕도는 없다. 마치 사막에서 물을 찾듯 찾고 또 찾아 헤매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살아가는 길인 것이다. 살수록 막막한 삶이지만 살 길을 찾을 수 없을 때 새로운 삶의 길을 위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추구하고 새로운 삶의 길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이처럼 삶이란 누군가 말했듯 고행일 것이다. 더군다나 시를 쓰는 일은 더 그러하다. 목적지도 없고 아무런 안내표지도 없는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하여 나만의 길로 만들어 가야 하기 때문에 시를 쓴다는 일은 어쩌면 수행의 길일지도 모른다.

 

  위에 제시한 나호열의 「바람의 전언」은 긴 겨울의 답답하고 우중충한 마음으로 맞이하는 새봄에 대한 기대와 준비로 첫 연에서 ‘저기, 별똥별/ 그리우면 지상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처럼 이미 오리라는 봄의 예고를 긍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제 2연에서 ‘푸른 이끼가 돋은 약간의 우울에는 쌉싸름한 냉소가 섞여/ 주저하며 닫지 않은 문 안으로 그림자를 들여놓았다’처럼 올 봄이 옴에도 즐겁지만 않은 입맛이지만 그것을 품어 안으려는 너그러움이 있어, 오리라 기대하며 열어놓은 문 안으로 그림자를 맞이하는 것이다. 그는 바람이 전해준 전언 속에 화약이라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에도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당신, 즉 봄이 긍정적으로 자라나 봄꽃을 터뜨릴 순간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막막한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려워도 긍정적인 길을 내며, 걸으며 이제 봄까지 온 것이다. 봄이 온 길은 상처가 가득했음에도 수행하듯 자근자근 시인의 숙명을 시 속에 담아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세월의 무게를 지나오면서 둔중하게 가슴 속에 간직해둔 시적 체험들이 시인의 혜안을 통하여 투시된 시로 잘 정제되어 형상화한 수작이다.

 

정희수, 『한울문학』 2014년 4월호 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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