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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의미를 묻는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8. 12. 00:09

 

사랑의 의미를 묻는다

 

나호열

 

시인은 일차적으로 자신을 위해 시를 쓴다. 쓰지 않으면 못 배기는 절실함은 시인 자신의 삶을 둘러싼 여러 정황이 반드시 여과되어야 할 정서로 충만 되어 있을 때 솟아오르는 것이다. 한 마디로 정서의 여과는 배설의 욕구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이 배설은 정서를 밖으로 분출시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화淨化의 기능을 수반하므로 미학적 층위로 상승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여과 과정이 없이 독자를 의식하고 쓴 시는 교언영색巧言令色, 대교약졸大巧若拙의 함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교언영색은 무엇이고 대교약졸은 또 무엇인가? 시인 자신의 삶의 통각 없이 말을 꾸미고 얄팍한 기교만을 부린다면 대중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시인 자신의 사유를 속이는 우매함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어째든 시가 시인의 손에서 떠나버리면 그 시는 만인의 공유물이 된다. 다양한 시각과 식견을 지닌 대중들의 감상을 위해 시인이 자신의 시에 대해 첨언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는 시 감상의 폭을 시인 스스로 줄이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시 「북」의 창작과정을 밝히는 까닭은 좋은 시 쓰기를 열망하는 이들에게 한 편의 시를 통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정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관찰력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북은 소리친다

속을 가득 비우고서

가슴을 친다

한 마디 말 밖에 배우지 않았다

한 마디 말로도 가슴이

벅차다

그 한 마디 말을 배우려고

북채를 드는 사람이 있다

북은 오직 그 사람에게

말을 건다

한 마디 말로

평생을 노래한다

 

시집 <<당신에게 말걸기>>, 2007

 

이 시가 발표된 것은 2004 년경으로 기억되는데, 시집에 수록된 것은 2007년에 발간된 시집 <<당신에게 말 걸기>>이다.

 

북은 쇠로 만든 쇠북도 있지만 대개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타악기이다. 음의 고저를 표현할 수 없고 장단 또한 단조롭기 그지없는 북소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울림을 주기에는 모자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악기와의 조화에 있어서도 기준이 되는 악기이기도 하다.

 

어느 날이었다. 무대에는 창을 하는 가인歌人과 고수鼓手가 판소리 한 마당을 펼치고 있었다. 고수는 북을 통해서 창을 하는 가인의 호흡을 조절하고 창의 흥을 돋우는, 어찌 보면 단조로운 연주의 보조자로 보였는데, 실상 내 눈길을 끈 것은 고수의 손에 들려 있는 북채와 북이었다.

 

북은 속이 비어야 소리가 난다. 북채는 그 북의 겉을 두드려 북 속에 담겨있는 그 무엇 - 그 무엇이 진공이든, 허무이든- 을 일깨우는 것이다.

 

가슴을 세차게 맞지 않으면 북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북채를 드는 사람은 북에 아픔을 가함으로서 소리를 얻는다. 세게 두드리든 약하게 두드리든 북은 한 마디 말 밖에 모른다. 과연 그 한 마디 말은 무엇일까? 아직도 나는 그 한 마디 말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북과 고수, 북과 북채의 관계는 따뜻한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 누구도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말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사람은 사랑이라는 말을 밥 먹듯이 하고 또 어느 사람들은 평생 사랑이라는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믿으며 살지 모른다. 어떤 생각이 타당한 지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사랑이라는 말을 경박하게 내뱉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하고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말하며 사랑은 주고 받는 교감에서 이루어진다는 그 모든 정의를 부인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랑이라는 이데아(이상)는 어떤 경우에도 변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항심恒心을 지니는 것이 어떤 공력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나는 북에서 사랑의 이데아, 사랑의 원형을 본다. 북채를 드는 사람에게, 자신에게 아픔을 주는 사람에게 고저 장단을 내던지고 한마디 말만을 던져주는 그 마음을 듣는다

북이 던지는 그 한마디 말이 아직 내게는 ‘사랑해요’로 들리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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