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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중얼거리다

노시인과의 대화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9. 3. 30. 14:47

 

 

 

2009년도에 들어서면서 모 신문사에서 시읽기 행사를 전국 규모로 기획하고 시행하는 모양이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인과 독자 간의 거리를 좁히므로서 가뜩이나 심난하고 황폐해진 세상살이를 부드럽고 둥글게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한국문인협회는 대학로 예총회관 3 층에 있고  내가 일을 거들고 있는 예총 사무실이 2층에 있는 까닭에 문인협회에 발걸음 하는 일이 자주 있다. 문협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년균 시인이 우리 동네에 거주하고 있고 평소 존경해 마지않는 정종명 소설가가 편집국장의 소임을 맡고 있는 까닭이다.

"황금찬 시 읽기" 에 닝송자로 무대에 서게 된 것도 김년균 시인의 강요(?)에 가까운 청탁이 있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아주 오래 전 황금찬 시인과의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금찬 시인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령 현역 시인이다. 1918년 생이시니 우리나라 나이로 치면 아흔 둘이 되시는 것이다. 1948년도부터 시를 발표하시고 1956년 현대문학에 추천 완료가 된 이후 지금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시니 한 걸음 한걸음이 한국현대시사의 전설이 되는 것이다.

 

1974년인가, 후배 오만한 시인과 관철동 한국기원 건물 1 층 찻집에서 황금찬 시인을 처음 뵈었다. 말도 글도 안되는 습작시 몇 편은 마땅히 버려도 아깝지 않을 것이었지만 시인께서는 찬찬히 읽어 주시고 따뜻한 격려를 해주셨다. '훌륭한 시인이 될 것이오' 말씀은 짧았지만 그 후 등단할 때가지 그 말씀은 용기와 희망을 불러 일으키는 말씀이었다. 둘리는 말로는 원래 천성이 온화하여 싫은 말씀을 하지 못하신다고 하였으나  타인에게 베푸는 관심과 배려는 실행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법이다. 그 후로도 학교 특강에도 몇 차례 모시기도 하였고 어떤 자리에서는 선생님을 모시고 함께 심사를 보기도 하였을 뿐 만 아니라 선생님의 장자인 황도제 시인 (2009년 1월 초 작고)과도 교분이 있었던 까닭에 내게는 아버지와 같은 분으로 생각하고 있다.

 

 

2009년 3월 16일 그러니까 "황금찬 시 읽기' 히루  전날 문인협회에서 선생님을 뵈었는데 먼저 나가시면서 '나 시인은 정말 미남이시오' 라고 덕담을 주셨다. 늘 남을 깎아내리고 흠 잡지 못하면 안달나는 못된 성품이 내게는 있는데. 선생님은 변함없이 긍정적이고 온화하게 한 평생을 사시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나는 미남도 아닌 초로의 사나이에 불과하다.

 

나는 황금찬 시인의 시 <새>를 읽었다.  

 

언제나 아침이면
산새 한 마리 날아와
열린 내 창앞에 앉아
이상한 언어로
구름의 시(詩)를
낭송하고 날아간다.

나는 지금까지
그 새의 이름과
어디서 날아오는지
하늘에 두고 있는 그의 고향을
모르고 있다.

내 귀에 남은
최초의 메아리는 
누구의 음성이었을까
에코의 산울림
어머님의 음성이었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아가야 맑은 영혼으로 병 없이
잘 자라거라
그것이 엄마의 소원이며
너와 나의 행복이란다.

새는 무슨 시를
낭송하고 갔을까
나르시스에게 보내는
에코의 원한 같은?
어머님의 소원 같은
시였으리라.

잠자는 자는
영혼의 눈을 떠라
영혼이 잠들면 그만
하늘도 눈을 감는다.

새가 남기고 간
시 한 구절
지혜의 창이 열리며
비로소 눈 뜨는
'의지'
강물이
흘러가고 있다.

 

 

 

* 내가 읽은 시 <새>는  황금찬 시인의 34번 째 시집 <<음악이 열리는 나무>>에 수록된 시로서 위의 시와는 다르다.

  황금찬 시인은 <새>의 제목을 가진 시들을 다수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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