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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시인론·시평

문학의 힘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9. 2. 1. 10:54

문학의 힘


 높은 빌딩 사이로 비집고 떨어지는 저녁 햇살이 골목길에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저녁 노을을 바라보았던 것이 얼마 전인가? 지평선을 찾아볼 수 없는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망연히, 아주 천천히 저녁을 맞이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라도 한 것인가? 충청도에서 서울을 향하여 달리는 기차 안에서 문득 창 밖을 내다보면 너른 들판 가득히 노을이 펼쳐져 있었다. 천안을 지나고 경기도 땅으로 들어서면서 평택, 병점, 오산을 지날 때쯤이면

서해 쪽의 들판 너머로 지는 해는 장엄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노을을 바라보면서 소멸의 아름다움을 생각했다. 아낌없이 불태우고 스러지는 저녁 해는 홀로 독배를 마시는 소크라테스를 연상케 한다. 자신이 세운 삶의 불문율을 지키기 위하여 소크라테스는 크리톤 같은 知人들의 회유를 단호히 거부한다. 윤회설을 믿었던 소크라테스는 오히려 知人들을 위로하며, 이 번잡한 세상을 떠나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날 것을 굳게 약속한다. 소크라테스는 꿈의 힘으로 현실의 죽음을 이겨냈던 것이다.

 

  초로의 두 사나이가 골목길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들과 나는 곧바로 서로를 알아보았다.

오미천 문학회의 김의석 시인과 박현진 시조시인이었다. 그들은 오산에서 서울 끄트머리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소비하며 달려왔을 것이었다. 오산은 미군의 공군기지가 있어 일찍부터 미국의 문화가 질펀했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6.25전쟁 때 미군이 북한군과 처음 조우하여 스미스 부대가 참담한 패배를 맛보았던 곳이기도 하다. 서해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조지훈 시인이 「승무」를 쓰기 위하여 다녀갔다는 용주사가 지척에 있고, 내륙 쪽으로는 포도의 고장 안성이 바로 이웃이다. 얼마 전 타계한 조병화 시인도 바로 안성 사람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오산은 그 옛날의 오산이 아니다. 경부고속도로를 바로 옆에 끼고 있다는 지리적 잇점 때문에 빈 터만 보이면 아파트와 빌딩이 들어서고, 서해안 개발의 영향으로 農耕의 넉넉함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곳이 오산이다. 바로 그 오산에. 오미천 문학회는 6명으로 이루어진 단촐한 문학 동인이다.

  

 인터넷문학신문 imoonhak.com은 소위 중앙과 지방이라는 편협한 틀을 깨고, 이 땅의 어느 곳이든 문학의 깃발을 높이 세우고,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만나기 위하여 '문학동인회 탐방'을 기획했다. 이미 동두천의 <소요문학회>와 장호원의 <청미문학회>를 소개한 바 있으며 세 번째로 <오미천 문학회>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노작 홍사용 시인의 정신을 높이 기리고 있었다. 오래 전부터 노작 문학상을 제정하여 많은 상금은 마련하지 못했으나 꾸준히 5회까지 시상한 바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화성시에서 다시 노작문학상을 제정하여 첫 수상자를 선정했다고 하였다. 지방자치제의 실시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싹은 틔웠으나 지역 이기주의, 편 가르기라는 심각한 후유증을 유발했음을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각 지역의 자치단체는 그 고장의 위인들을 찾아내고, 업적을 기리며, 그 지방의 특색을 가꾸어나가는데 큰 힘을 발휘했음이 다 같이 인정하는 바다. 특히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물적 지원은 예전에 비하여 현저하게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오미천 문학회는 그러한 지원이나 혜택을 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스스로 갹출한 예산으로 첫 동인지를 내고, 회비를 걷어 품평회를 열고, 詩 朗誦家를 배출하기 위하여 여름방학에는 지역의 고교생을 선발하여 타 도시로 교육 연수를 보낸다고 했다. 시와 시조, 수필, 소설을 쓰는 네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성회원들은 풀꽃처럼 조용하게 그러나 강인하게 문학의 길을 한 뼘씩 열고 있는 것이었다.

  

 문학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지나간 시대의 잣대로 오늘의 문학을 가늠할 수는 없다. 나는 그들이 추구하는 문학의 이념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그것은 심각한 우문이다. 그들은 문학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은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인식하는 문학의 정의는 이 시대에 통용되는 문학의 코드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바와 같이 시인, 작가들의 양산은 우리 한국문학의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지적해야할 문제는 시인, 작가들의 양산이 아니라 배출된 작가들의 정신이다. 꾸준한 작품 활동을 통하여 시인이나 작가로 가꾸어지고 인간적인 성장을 이룬다는 정신의 부재에서 우리의 우려는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미천 문학회는 건강하기 이를 데 없다. 그들이 추구하는 간섭의 배제는 예술의 자유와 맞닿아 있으며, 그들의 오늘의 궁핍은 정신의 그릇을 크게 비워놓는다.

  

 나는 농사꾼인 그들에게서, 건축업자인 그들에게서, 문학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문학의 힘을 보았다. 씨앗을 뿌리며. 기둥을 세우며 꿈꾸는 그들의 문학은 어떤 모습일까?

 

  '시간 되시면 칼국수라도 대접하고 싶습니다'


 땅거미가 깔린 골목길로 그들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마음으로 대접한 칼국수는 늘 포만감에 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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