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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시인론·시평

포성과 함성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9. 2. 1. 13:16

포성과 함성

 

 지난 50년 동안 유월이면 포성과 화약연기가 녹음을 뚫고 우리의 뇌리를 뒤흔들었다. 아군과 적군으로 나뉘어진 깃발 아래서 이 백만에 가까운 젊은이들이 목숨을 버려야 했던 6.25의 비극은 떨쳐버릴 수 없는 망령으로 머리 위를 맴돌았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그 전쟁을 일으키고 지휘했던 사람들은 역사의 저 편으로 사라졌다. 그 대신 수많은 이산가족과 전몰 유가족이 남았고, 아직도 이 산하 곳곳에 이름도 지워진 채 십 만의 전사자가 고향을 그리며 누워 있다. 그러므로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아직도 전쟁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6월 6일은 현충일

아직도 물기 머금은 장미꽃과 백합이

현충원 국립묘지 묘비 앞에 놓여 있다


진혼곡이 울러 퍼지는 내내

하늘에선 빗방울이 떨어 질것 같았지만

옛 전우들이 그때를 잊지 못하고

눈시울 적시며 추모의 정 쏟고 있는데

말없이 잠들고 있는 전우들은

마음에 와 닿아 반가워 맞아 줄까


먼저 가신 전우들이 남겨준 숙제

참된 호국정신과 튼튼한 국방력으로

좀더 강한 우리조국 만들어서

다시는 우리에게, 다시는 이땅에

전쟁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영면하시는 전우들들이 있었기에

멀지 않은 날 그대들이 남기신

숙제 다 풀고 떳떳한 마음으로

다시 찾을 것이라고 결의 다진다


심장은 뛰고 식지 않는 법

잠깐 뜨거웠다가 금방 식어 버리는

열정 없는 심장을 가져서는 안되며

시작만 있고 끝이 없는 나라사랑정신은

아무 소용 없는 형식에 지나지 않기에


가슴속 깊은 곳에 흐르는 양심과 열정

진정한 나라사랑정신 지녀야 한다


고달픈 세상살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더라도

안간힘 다하여 나라 사랑하는 정신이

바로 목숨 바쳐 나라 지키는 참 호국이다


만약 우리 마음속에

진정으로 호국정신이 사라 진다면

자자손손 대대로 살아갈 우리조국은

너무나 생동감 없는 삶의 터전이 될 것이다


아아! 우리조국 대한민국

영원토록 힘차게 뻗어 나가리라.

                           ――임종린의 시 ‘전우들이 남긴 숙제’


  어떤 이유로도 전쟁은 당위성을 찾을 수 없다. 단지 강자의 꿰맞춰진 논리에 따라 살상이 이어지고 파괴와 살상이 극을 달하고서야 전쟁은 평화라는 또 다른 관념으로 대체된다. 그러므로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의 이성을 강력하게 저지할 수 있는 힘을 갖추고 있지 않는 한 전쟁의 위험은 늘 우리들의 가까이에 있는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50년 만에 찾아온 2002년의 유월은 아카시아 향기처럼 싱그러웠다. 피바노바 공 하나로 붉은 티셔츠의 물결과 함성이 온 나라를 흔들었다. 환희와 감동, 자본주의의 하이라이트라는 월드컵을 통하여 유월이면 악몽처럼 떠올렸던 포성을 열정으로 가득찬 함성으로 바꾸어 버렸다. 월드컵 四强의 神話는 한민족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 주었다. 우리도 하면 된다는 투지와 자신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여 주었다.

  

 이제 우리의 유월은 추모의 유월이면서 축제의 유월이 되었다. 다시는 6.25와 같은 민족상잔의 비극이 이 땅에서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나약힌 이상주의의 환상을 버려야 한다. 현실을 냉철히 판단하면서 강력한 국민의 힘을 결집하는 지난 해 유월의 자부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한반도를 뒤흔드는 또 한 번의 함성이 남아 있다. 남과 북을 가르는 휴전선이 무너지는 소리, 팔도 사투리가 뒤섞여 통일을 외치는 그 함성을 내년 유월에 들을 수는 없을까? 그 염원을 노시인은 이렇게 읊었다


너도 나처럼 지쳤구나

이젠 싱거운 이야기나 하자

태극기니

대한민국이니

조국통일이니


그런 말은 목이 쉬도록 불렀으니

좀 쉬운 걸로 하자

말하자면 왼쪽 발이든 오른쪽 발이든

발로 차서 결단을 내는 승부차기

소년 때부터 짝사랑해온 ‘통일’


아아 대~한민국


짝사랑은 너무 지루하구나

악마들아

너희들은 잘해냈으니

내 소원 하나 들어 주렴

호루라기 한번으로 끝내는

승부차기

6월의 아픔은 지루하구나 그렇다고

매미처럼 울기만 하네

                        ――이생진 ‘6월의 승부차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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