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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산 자연휴양림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9. 1. 19. 21:11

  공작산 자연휴양림

 

 

 공작산과 수타사


 소득이 늘어나고 여가활동이 확산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야외활동을 즐기는 추세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이면 어디든 지친 발걸음과 풍진을 씻어낼 수 있으니 이 또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전체 인구의 삼분의 일이 몰려 사는 수도권에서도 몇 발자국만 나오면 싱그런 자연을 맛볼 수 있다는 것,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옛 말이 전혀 틀리는 말은 아니다. 도시화의 물결이 도로의 확산으로 산골짜기 물 건너 구석구석 밀려드는 형세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의 지친 마음을 감사 안을만큼 우리의 자연은 넉넉하고 품이 넓다.

 

 홍천은 군 면적으로 따져도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넓은 까닭에 그 풍광 또한 다양하다. 북쪽으로 인제와 맞닿아 있어 태백 준령의 심심함을 맛 볼 수 있고, 북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홍천 강이 관류하고 있어 탐방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북으로 춘천, 남족으로는 횡성, 평창, 원주로 이어지는  중앙고속도로가 이동의 편리함을 더해주고 있어 사통발달의 지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다.


 홍천 읍을 중심으로 동쪽과 북쪽으로는 험준한 산악이 이어져 있으나 남쪽으로는 비교적 너른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어 농산물의 풍족함도 맛 볼 수 있다. 공작산은 홍천의 중심에 자리 잡은 887미터의 낮지 않은 산이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한국의 100대 명산에 올려 놓을 만큼 산세가 수려하다 하나 직접 그 산을 오르고 조망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을까?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및 동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가 887m이다. 산세의 아름답기가 공작새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암봉과 노송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산이다. 높이에 비해 산세가 아기자기하고 바위와 소나무가 이루는 조화가 아름답다. 이 산의 가장 큰 아름다움은 정상 부분의 암봉미와 조망에 있지만 산을 오르내리며 암릉을 포함한 여러 갈래의 능선에서 보는 산골짜기의 상쾌한 조망과 코스 중의 다양한 변화를 경험하면서 맛보는 기분도 색다른 곳이다.

봄에는 철쭉,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눈 덮인 산이 등산객들을 매료시킨다. 정상은 암벽과 암릉으로 되어 있으며 정상 일대의 철쭉군락지에 꽃이 필 때면 지리산의 세석평전을 연상케 한다. 여름에는 멋진 암봉과 암릉이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산은 녹음이 우거지기 전에 오르는 것이 좋다.

산 정상에서 서남쪽 능선을 따라 6km 산자락에 있는 수타사 대적광전은 강원도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어 있고 이 절에서 노천리에 이르는약 8km 길이의 수타계곡은 암반과 커다란 소, 울창한 수림으로 수량도 풍부하고 기암절벽이 어울려 장관을 이루는 비경지대로 여름철 계곡 피서지로 이름난 곳이다.

산행기점은 공작골 입구로 공작현으로 넘어가는 도로를 따라 걸으면 4~5채의 민가가 있는데 여기서 서북쪽 계곡을 향하여 가다가 갈림길에서 왼쪽길로 접어든다. 낙엽송지대를 거쳐 암벽을 몇 차례 지나 바위벼랑을 타고 오르면 정상이다.

정상에 닿기 전 궁지기골과 문바위골이 보이는 전망대가 있으며 그것은 정상부의 복사판 같은 곳으로 두 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어 골짜기가 시원스레 조망되는 곳이다. 정상부도 이와 같이 생겼다. 홍천군 일대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하산은 공작고개 쪽으로 하게 되는데 험한 암릉길이 있어 간단한 보조자일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약 5시간이 걸린다.

                          - naver 테마 백과 -

공작산은 아름다운 산세만이 아니라 그 품에 수타사 壽陀寺를 품고 있어 등산이 아니라 하루 일정의 휴식과 자연을 음미할 수 있는 계곡미와 더불어 한국 불교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신라 성덕왕 7년 그러니까 서기 708년에 창건하였다 하니 그 역사의 두께가 제법 육중하다 아니할 수 없고, 임진왜란의 병화를 입고 반 세기를 폐허로 남아 있다가 1636년 인조 대에 이르러 다시 재건을 하게 됨에 그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법당, 정문. 범종루, 선방 등 가람이 갖추어야 할 시설물을 차근차근 세워나가 강원도 유형문화재 17호인 대적광전, 수령 5 백년이 넘은 강원도 보호수 165호로 지정된 주목 朱木, 보물 745호 월인석보 月印釋譜, 강원도 문화재 자료 11호인 홍두 浮屠 등 절의 규모에 비해 기이 음미해 보아야할 유적이 풍부한 것이 자랑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다가 8킬로미터에 이르는 수타 계곡은 산과 물이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선사해 주어 걸으며, 물에 몸을 담그며 보내는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황홀하기 조차 하다.


 이런 까닭에 공작산 자락에 산재한 휴양시설도 적지 않은 수를 헤아린다. 홍천이 지니고 있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수많은 군영 軍營이 자리하고 있어 휴가나 면회 온 군 장병들의 숙박을 감당하는 팬션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는 것도 쉽게 눈에 띈다. 10여 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팬션 사업은 이제 본래 팬션이 의미하는 노후 연금의 성격을 벗어나서 기업화되고 상업화되어 오히려 자연을 훼손하고 오염시키는 주범으로 인식될 만큼 부정적 요소를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공작산 자연휴양림


공작산 자연휴양림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정, 운영하는 휴양림이 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팬션이다. 해발 600미터가 넘는 공작산 자락에 어림잡아 수 십 만 평에 이르는 대지를 확보하고 62평에서 9평까지 다양한 건물을 세워놓아 수 백 명이 일시에 투숙하여도 번잡함이 없고 70대의 차량이 넉넉하게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이쯤 되고 보면 막대한 자금력과 경영 능력이 담보되지 않으면 안 될 기업형 팬션임이 틀림이 없다. 진입로부터 빽빽하게 들어찬 조림된 수목과 돌, 나무 , 흙, 숯 등 10% 천연재료로 지어진 건물들을 보면 그런 짐작이 틀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당하게 ‘자연휴양림’의 간판을 내걸 수 있는 것도 가계수단으로서의 규모를 벗어나서 장기간의 계획 아래 주도면밀하게 이루어 낸 결과물임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25년 전 이곳에 정착한 최종환 대표는 산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곳에서 삶을 이야기 하고 싶다며 일부 부지는 분양, 한명, 두명 이곳에 터전을 잡고 사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고 한다.


최 대표는 “자연휴양림 주변에 더덕이며 장뇌삼, 과일나무 등을 많이 심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자연의 고마움을 전할 계획”이라며 “많은 분들이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평생사업으로 추진중에 있다”고 밝혔다.


필자가 이곳을 찾게 된 것은 지난 해 10월 제1 야전수송교육단에서 교육을 받고 있던 아들의 면회를 가면서이다. 마침 1박 2일의 외박을 허락받은 터 이므로 모처럼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갖기 위해 시설이 좋고 번잡하지 않은 장소를 물색한 끝에 찾아낸 곳이 공작산 자연휴양림이었다.

중앙고속도로 홍천 IC를 지나 홍천 읍을 가로 지르는 강 남쪽 외곽도로를 이용 동면을 향하는 444번 지방 국도를 지나 15킬로미터 정도를 직진하면 노천 삼거리가 나오고 여기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서석 방면 406 지방도로를 1킬로 정도 진행하면 좌측으로 비포장도로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비포장 도로를 2킬로 미터 정도 산 속으로 들어가야 공작산 자연휴양림이 나오는데 불친절하게도(?) 휴양림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없어 길을 올바로 잡았는지 전화를 걸어 확인해야 한다. 마주 오는 차를 만나기라도 하면 옆으로 어떻게 비켜서야 할지 잠시 당황할 만큼 어깨가 좁은 도로와 비라도 오면 건너가지 못할 것 같은 개울 두 개를 건너야  비로소 공작산 자연휴양림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비포장도로에 들어서면서 어떤 이는 ‘이런 불편한 곳이 있어’ 하면서 불평과 후회를 늘어놓을 지도 모르고 어떤 이는 상쾌하고 쌉싸름한 산 공기에 취하고 울퉁불퉁한 길에 몸이 흔들리면서 모처럼 호젓한 기분에 휩싸일 지도 모른다.


불편함과 마주치다 


차가 휴양림에 거의 다다를 즈음, 한 사내가 저만큼 걸어오고 있다. 등산복 차림에 등산화를 신은 모습이 막 산에서 내려오는 등산객과도 같이 보인다. 사십은 넘었고 오십은 죄지 않은 듯한 그를 따라가 20평형 팬션에 짐을 풀었다. 황토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화장실에는 문이 없이 커튼이 쳐 있다. 부부간에도 프라이버시가 있는데... 아내는 이내 눈살을 찌푸리고 주방 서랍을 열어 보더니 ‘아니 조미료는 하나도 없네’ 하면서 투덜대기 시작한다. ‘아니. 몸만 오면 다 되어 있다고 하더니만 어떻게 하라고?’ 당황한 나머지 관리 사무실로 전화를 하니 이곳엔 매점이나 그 흔한 자판기 하나 없다고 한다. 준비해 온 물건이 없으면 수 킬로 떨어진 동면 면소재지나 아예 홍천에서 장을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에 아내의 면박은 계속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밖으로 나오니 비닐 하우스가 보이고 그 건너편에는 홍당무며 배추며, 무며.. 푸성귀가 시월의 햇살을 받아 푸르게 동아나 있고, 여기저기 서 있는 나무엔 배들이 익었다가 제 풀에 오그라든 모습이 자연스럽다. 비닐 하우스에 들어가 보니 수확하지 않은 수박들이 넝쿨에 그대로 매달려 있고, 오래 손을 보지 않았는지 잡초들이 무성하게 비닐 하우스를 채워가고 있는 중이었다.


깊은 산 속이므로 가을 해는 일찍 떨어지고 삼겹살이나 구어 먹을 요량으로 프라이 팬을 달굴 즈음 도착 즈음에 만났던 등산복 사내가 걸어올라 왔다. 방 마다 난방을 하기 위해선는 장작을 때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는 고기 구울 준비를 하고 있는 우리를 보더니 ‘고기는 장작에 구어 먹어야 맛 있지요,’ 하면서 만 원을 달라고 한다. 또 다시 아내는 눈살을 찌푸리며 ‘아저씨 그런 건 서비스가 아닌가요’ 해도 그는 번개탄에 불을 붙일 뿐 대답이 없다. 이쯤 되면 장소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번개탄이 다 타들어가도 장작불은 힘이 없어 결국 주방에 들어와 가스 불로 고기를 굽고 말없이 저녁을 먹어야하는 형국에 빠지는 셈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내일까지 이곳에 버티고 있어야 할 것은 기정사실이 아닌가!


밤이 깊어가면서 방구들이 열을 내기 시작했다. 창문을 열어 놓아도 황토방의 열기는 가시지 않고, ‘집을 떠나면 다 고생인거야’ 자위하면서 하늘에 촘촘히 들어박힌 별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등산복의 사내는 이제 화부 火夫로 역할이 바뀌었다. 장작을 지어 나르기도 하고 방마다 붙어있는 아궁이에 불을 때는 것이 그의 임무인 것이다.


 


사람과의 대화


화부는 방이 어떻냐고 물었다. ‘자연 그대로이지요?’ 라고 그가 물었을 때 불편했던 심사가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옴을 느꼈다. ‘불편한 게 매력이네요’ 라고 대꾸를 하자 ‘밤에는 창문을 꼭 닫고 주무셔야 합니다. 뱀들이 따뜻한 아궁이 근처로 오기도 하거든요’ 하면서 이미터가 됨직한 뱀 허물을 막대기로 휘저으며 웃었다.

남자들이 마음을 털어 놓을 때 첫 번째 이야기꺼리가 군대 이야기, 그 다음에는 출신 학교, 그 다음엔 취미가 뭔지 술 한 잔을 곁들이면 그만이다. 화부, 그와의 이야기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속물이었다. 그는 자연휴양림의 관리인이면서, 화부이면서, 자연휴양림의 주인의 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 자신도 가평에 팬션을 가지고 있으며, 재산을 불리는데에는 땅만큼 정직한 것이 없다고 했다. 등산을 좋아하는 까닭에 공작산 등산에 대해 몇 마디 물어 보았는데 등산에 관한 그의 해박한 지식에 말을 닫아 버렸다. 그는 모 대학의 산악부 출신으로 우리나라에서 알려진 산악인들이 동료 아니면 선배라고 알려 주었다. 산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족과도 헤어졌지만 산 만큼 냉엄한 존재는 없다고도 말했다. 그럴 때 그는 속 俗과 성 聖을 넘나들었다.


‘저 산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목조 건물 보셨지요?’

‘아..예.. 그게 뭔가요?’

‘산신각입니다. 저는요 천주교 신자지만요.. 산에는 산의 주인 산신령이 있다고 믿습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버섯 따러 장뇌삼 캐러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늘 허락을 받습니다’


문득 산악인 박영석을 떠올렸다. 엄홍철과 더불어 에베레스트 8000 미터급 봉우리를 죄다 정복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 오 천 미터 이상은 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오를 수 없다’


나는 이 말을 접했을 때 자연에 대한 인간의 숭엄한 의지를 감지했다. 불가능은 없다고, 도전으로 점철된 인간사에서 자연에 예속된 인간. 자연에 엎드릴 줄 아는 것이 진정한 혜안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는 수타사 스님이 자신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이렇게 전했다.

‘이 놈아! 돈 만 챙기면 뭐해, 사람답게 살아야지, 술 좀 작작 처먹고 욕심 부리지 마라 네 얼굴에 가득 차 있는게 욕심이야..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지금 먹는 밥이 세상에서 먹는 마지막 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 감사하게, 맛있게 먹을 줄도 알아야지’

‘아따 스님.. 그러지 말고 숨겨둔 곡주나 한 잔 주시오’

이런 단 말이지요...


우리는 상황에 따라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때로는 용렬하게, 때로는 위선과 위세를 부리면서 타인에게 굽히기도 하고 등을 밟기도 한다. 때로는 우아하게 때로는 비겁하게 카멜레온처럼 얼굴 색을 바꿔가면서 그것이 삶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배우고 익힌다.


그런데 그에게는 얼굴 색 하나 바꾸지 않고, 그렇다고 비굴하거나 창피함을 느끼지 않고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 마침 해거름에 보았던 텃밭과 비닐하우스 생각이 나서 그에게 물었다.

‘ 아, 그거 말이지요.. 도시 사람들.. 그런 거 좋아하잖아요.. 과실수도 심고, 푸성귀도 심고 그런 거 안해 놓으면 오지를 않지요. 텃밭에 있는 것들 파도 뽑아가시고, 홍당무도 뽑아 가세요.. 여기저기 심어놓은 배나무도 수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따 가지시리고 심어 놓은 것이지요’


도시화된 현대인들은 자연을 동경한다. 시멘트가 아니라 흙냄새를 맡기를 원하고, 기계로 돌린 냉풍이 아니라 산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을 흡입하기를 원한다. 농약을 치지 않고 퇴비로 가꾼 채소를 먹기 원하고, 병들지 않고 장수 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어쩌랴! 우리는 순수하고 찌들지 않은 마음을 찾으러 이 산골짜기까지 왔으면서도 가스렌지와 위성으로 수신되는 텔레비전 프로와 불편함이 전혀 없는 도시의 내용물을 고스란히 가져오는 것은 아닌지!




  

그 가족은 에어컨, 자동 핸들, 자동 브레이크가 장치된 연분

홍색 차를 타고 포장이 엉망이고 쓰레기, 남루한 건물, 벌써

오래 전에 땅 밑에 설치했어야 할 전봇대 등에 의해 더러워진

도시를 통과하여 피크닉을 떠난다. 그들은 상업광고에 의해

대부분 풍경이 가려진 시골을 통과한다‥‥‥

  그들은 오염된 개천 옆에서 이동식 아이스박스에서 잘 포장

된 음식을 꺼내어 먹고 공공 위생과 공공 도덕이 엉망인 공원

에서 밤을 좌내기 위해 길을 떠난다. 썩어 가는 쓰레기의 악취

에 둘러싸여 나일론 텐트 속의 공기 침대 위에서 잠을 청하면

서 그들은 자신들의 풍요 속에 있는 이상한 불균형을 막연하

게 느끼게 될 것이다.

   -사회정치철학. 개인과 정치적 질서N. 보위,R. 사이몬, 이

인탁 옮김 225쪽

 

 

 

  그래, 나는 떠난다, 너를 버리러, 오래된 사랑을 버리려

면 그렇게 떠나야 한다, 발길이 닿지 않은 음습한 오지

에 뒤돌아보지 않고 먼길을 돌아오기 위하여, 너와 함께

떠난다.

   삐거덕거릴 때부터, 속으로 나사가 빠지기 시작한 원인

불명의 두통으로부터 진즉 빠져 나왔어 야만 했다. 동행이

고통이 된다. 불가피한 폐기처분의 사랑, 서로를 떠날 때

우리는 서로의 폐차장이 된다. 92년도식 1500cc 십만 오

천 킬로 달려온 사랑의 끝


                                                                            졸시 <여행길 .1> 시집 <<우리는 서로에게 슬픔의 나무이다>.에 수록 


아침이 되어 언덕을 오르니 산막의 지붕을 덮은 풀들이 가득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스카이 라이프 접시형 위성 안테나는 잔뜩 붉은 녹으로 얼룩져 있었고, 댓돌 옆에는 그가 아침 일찍 산에서 채취한 표고버섯 한 바구니가 곱게 놓여 있었다.


공작산 자연 휴양림에서의 일박이일은 그렇게 끝났다. 적당한 편리함과 적당한 불편함이 공존하고 자신을 지나치게 드러내거나 지나치게 감추지 않는 그를 만났으므로, 한 겨울 장작이나 패주고, 불 때다가 설악산으로 들어가겠다는 그를 다시 만날 수는 없었으므로 나는 끝내 묻지 않은 그의 이름이 궁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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