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진포 바다
그곳에 가서 알았다
눈 뜨고도 보지 못하고
입을 열어도 말할 수 없는
그래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내가 있다는 것을
객창에 기대어 저 두껍고 어두운
한 권의 책을 언제 다 읽을 수 있을까
잠깐 생각하는 동안 날은 다시 어두워졌다
수 만개의 북을 울리는,
마치 스스로 만든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어떤 이처럼
이윽고 출구를 막아버리고서 돌아서 누운
그 사람이
어느 순간 긴 팔을 내밀어 나를 데려갈 지도 모르지
겁에 질려 잔뜩 웅크린 채로 밤을 새우는
그리워하는 것만큼 멀리 도망가야 하는
섬은 이 바다에는 없다
하품을 하다 날카롭게 삐져나온 송곳니가 부러졌다
야광의 눈은 정작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나는 밤새 한 통의 편지를 쓰고
그 속에서 혼자 흐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