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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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으로 내려가는시냇물(산문)

원칙에 대한 예의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8. 5. 6. 20:58
 

원칙에 대한 예의

                                  


- 사랑은 , 그것을 잃어버리는 순간에 완성된다.


  수석이 취미인 사람이 있었다. 쉬는 날이면 그는 어김없이 배낭을 매고 돌을 주으러 먼 길을 떠났다. 좋은 돌이 있다는 소문이 도는 곳이면 어느 곳이던 마다 않고 단걸음에 달려가곤 했다.

 처음엔 배낭 가득히 이상하고 신기롭기 조차한 돌들을 가져와 닦고 또 닦고 보물처럼 소중하게 집안에 진열하였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그의 배낭은 비어있기 일쑤였고 그래도 그의 얼굴은 늘 만족의 기쁨으로 가득하였다.

 마침내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아내가 물었다.

'그 아까운 시간을 소비해가면서 소득도 없는 일을 왜 계속하는 건가요?'

그는 싱긋이 웃으며 아내를 바라보았다.

'처음에 돌밭에 가면 그 널려 있는 돌들이  다 내 것으로 보였소. 이것은 달마 얼굴, 저것은 

호수에 비친 달빛... 욕심내어 배낭에 담아들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지요.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 그것들을 다시 꺼내어 보면 돌을 주을 때  느꼈던 그 형상이 제대로 투영되지 않는 것이었소. 힘들게 등에 지고 와서 보니 그저 한낱 돌멩이에 불과한 것을 왜 땀흘려 가며 들고 오는지 회의가 생기더라구...차라리 그 자리에 그냥 놔두는 것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면 미안한 마음까지 생기고 말야'

 

 낚시의 고수는 먹기 위해 낚시를 드리우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깊은 물 속의 물고기와의 교감, 그리고 먹고 먹히는 생존의 다툼 속에 자리 잡은 기다림을 배우려 낚시줄을 던진다. 낚시의 고수는 잡힌 물고기를 다시 그 자리에 놓아주고 빈 통을 들고 돌아온다.

 수석이 취미인 그나 낚시꾼이나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한 배려를 몸소 깨우친다. 우리가 이 세상을 하직할 때 허물 벗듯 우리가 쌓아올린 명예나 재물을 던져 놓아야 하듯이 삶의 등짐은 가벼울수록 좋다는 뉘우침, 그것이 나 아닌 타인에 대한 배려이며 말 못하는 미물들에 대한 따듯한 관심이다.

 배려나 관심은 법전에도 도덕책에도 없다. 배려나 관심은 몸소 실천해 보지 않으면 그  의미와 기쁨을 느낄 수 없고, 그것은 오랜 시간이 흐르고 쌓여야 드러나는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다.


 며칠 전 지방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거의 20년 만에 고속버스를 타 보았다, 터미널에서 버스를 오르기 전에 검표원이 검표를 하고 난 후 널찍한 우등버스에 몸을 실었다. 30명이 채 안 되는 버스 정원. 승용차를 타고 갈 때의 비좁음과는 달리 참으로 마음이 편했다. 다시 서울로 돌아올 때도 기차 대신 버스를 타기로 하였다. 

서울 가는 손님이 많아서인지 서울행 버스는 10분 간격으로 떠나고 있었다. 내가 타야할 버스가 승강장으로 들어왔다. 차문은 열렸으나 검표원이 보이지 않았다. 검표원을 기다리는 동안 내 뒤로 여닐곱 명이 줄을 섰다. 서울에서도 검표를 하고 버스에 올랐으므로 나는 그대로 서 있었다. 그 때 뒤쪽에서 예의바른 그러나 앙칼진 여자의 목소리가 내게로 꽂혀 왔다.

' 안 타실거면 비켜 주실래요!'

찰랑거리는 머릿결, 단정하면서도 품위 있는 옷매무새... 거기에다가 얼굴까지 곱상한 20대 여자가 외친 소리였다.

내가 머뭇거리는 순간 내 뒤에 있던 사람들은 나를 밀치고 차에 오르고 잠시 자리를 비웠던 검표원이 뒷 좌석부터 검표를 하고 나서 버스는 떠났다. 불과 4, 5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여자도 나도 잘못한 일은 없었다. 나는 검표를 하고 차에 오르려고 한 것이고, 그 여자는 검표는 나중에 해도 될 것이므로  먼저 차에 오르려고 한 것 뿐 이었다. 검표를 해야만 차에 오르라는 규정은 없다. 그것은 하나의 관행일 뿐이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도 마음이 풀리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일 이분 먼저 좌석에 앉는다고 아픈 다리가 풀리지는 않을 것이고, '먼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임자'라는 자리다툼도 없는데, 그 여자는 무엇이 바빠 그리 서둘렀던 것인가?

그 여자는 '안 타실거면~'이라고 했다. 그것은 타도 되는데 내가 멍청해서 타지 않고 있다는 핀잔이다. '비켜 주실래요'는 그래서 멍청한 인간에 대한 유식한 인간의 경멸이다. 내가 그 여자보다 무식하단 말인가? 그 여자는 섣불리 타인인 나를 판단하고 그리고 면박을 주었다. 그 여자는 그래서 무엇을 얻었나? 사려 깊지 못한 그녀의 행동은 겉으로 드러난 그녀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천박한 것인가를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大義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 대의는 쉽게 허물어지고 만다. 작은 원칙을 하찮게 여기고 우습게 아는 한, 대의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에 대해 관심과 배려를 가져야 할 의무를 가진다. 그것은 또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권리이기도 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 여자를 쳐다보았다. 그 여자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나의 눈길을 피해 버렸다.


-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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