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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대지를 닮는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7. 12. 18. 00:19
 

 문화는 대지를 닮는다

                                   - 우리의 문화적 고향을 찾아서 -


                                                                    김형수(시인)


1. 체험


인간은 존재 어딘가에 자신이 아직 닿지 못한 장소를 남겨두고 있다. 그 미지의 장소에는 우리가 한 번도 실체를 본 적이 없는 각자의 영혼이 살며, ‘영감’이라 부름직한, 인간에게 신비한 능력을 주는 정신적 유성(流星)이 흘러 다닌다. 여행이란 어쩌면 그곳을 찾아가는 일인지 모른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여행을 잘 하는 유일한 길은 자연과의 신체적 접촉을 확장하는 데 있다. 최선의 방법은 오직 몇 날이고 걸어서 저 드넓은 대지를 관통하는 수고를 지불하는 것이다. 육신이 낯선 곳으로 떠날수록 정신은 더욱더 자아의 깊은 곳으로 돌아온다. 옛날부터 길이 현자들을 끌고 다녔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몇 년 전, 몽골 여행은 나로서는 그러한 순례의 기념비적인 하나였다. 초원에서는 누구나 막막한 지평선의 한 점을 벗어날 수 없다. 섭씨 30-40도의 무더위를 가르고 기습해 온 소나기가 한겨울의 추위를 무색하게 한다. 그 가파른 자연의 변덕 앞에서 재산이 많다거나 지식이 높다거나 용모가 곱다거나 하는 것들은 아무 쓸모가 없다. 흔히들 뽐내지만 개인마다 소지한 사회적, 문명적 무장이 그곳에서는 먹혀들 만한 대상을 갖지 못한다. 광활한 대지는 질주의 본능을 충동질하나, 육체는 미약하고 공간은 크다. 우리는 오직 유한한 존재의 숙명을 확인하고 고개를 숙일 뿐이다.

돌이켜보면, 그 체험은 내게 언젠가 사흘 동안 내리 배 멀미에 시달리며 남지나해의 수평선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때보다 훨씬 큰 무서움을 주었다. 나는 그 때 몸서리치면서, 멀고 먼 초원에서 겪었던 생리적인 소일을 참는 불편과 여러 날의 불면을 사다리처럼 딛고 올라간 끝에 내가 비로소 자아의 은밀한 장소에 다다른 사실을 깨달았다.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에 못 봤던 많은 것들을 보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힘들어했던 갈등의 세계는 끝도 없이 광활한 몽골 초원의 지평선에 비하면 한없이 작고 부질없는 것들이었다. 열쇠 구멍만한 세상 속에 들어 있는 ‘존재의 미천함’이 그렇게 뼈아플 수가 없었다.

지금도 나는 가끔 삶에 지치거나 마음이 아플 때 시야를 가로막는 문명의 축조물들이 완벽하게 지워져버린 장소에서 저 홀로 허둥대는 인간을 상상하면서 내가 이웃들과 주고받은 상처를 달래고는 한다. 막막한 고원에 서면 누구나 쌩떽쥐뻬리의 <<어린 왕자>>와 같은 한 마리의 외로운 짐승이 된다. 고독에 눈뜨고 사랑할 대상과 친구를 찾으며 ‘흔들림 없는 영혼’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 때도 동행인들은 대부분 초면이고, 쉽게 대하기 어려운 이들이었으며, 장엄한 초원이 한없이 짓누르는 상황이었지만 틈만 나면 서로를 고함쳐 불렀다. 괜히 큰소리로 말하는 것도 다들 보호받고 싶은 어린 아이의 심정에 쫓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돌아와 이렇게 썼다.


대지에 숨은 바람의 노래여

사막에 뿌려진 새의 울음이여

한때는 검은 비구름을 뚫던

날개 꺾인 육신의, 뼈 위에

피 위에

연기처럼 섞이는 풀들의 숨소리여


나는 끝내 지우지 못했다

무수한 별빛이 발끝에 떨어져

대낮 속을 뒹굴며 부서지고 부서져도

손바닥에 남는 마지막 利己,

햇살에 긁히는 초라한 지성을

시간은 우우 파도처럼 쓸려가고

나그네들이 일제히 쫓기는 소리


모래에 찍힌 발자국 몇 개는

일몰이 지나가도 지워지지 않았다

<야생의 기억> 일부


인간이란 약한 것이다. 얼마나 약했으면 만물의 영장이 될 만큼 거대한 문명 속으로 숨어들고서도 더 많은 문명을 갖기 위해 질주하기를 멈추지 못한단 말인가? 짐승들처럼 국가도 제도도 사회적 기반도 없이 대지에 홀로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그 두려움은 우리에게 마치 어머니와도 같은 문화적 고향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눈앞의 세계를 사랑하고 해석하고 창조하는 능력을 공급받을 대지를 필요로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도대체 지상의 어디에 그러한 대지가 있다는 말인가?


2. 방황


한 시대의 미학적 준거 틀은 지배자의 용모라는 말이 있다. 이광수의 문체를 한글로 된 근대적 산문의 완성태라고 평하고 주요한의 시를 최초의 자유시라고 말할 때 그 기준치로 작동되고 있는 준거 틀은 분명히 지배자의 용모이다. 하지만 그것을 진리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르께스는 말한다.


우리 중남미의 거대한 현실이 문학도에게 제안하는 아주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그런 현실에 적합한 단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강에 대해 말할 때, 유럽 독자들은 기껏해야 2,790킬로미터의 다뉴브 강을 상상하면서 이 강을 가장 길다고 생각한다. (…) 이런 이유로 우리의 현실의 크기를 설명하려면 새로운 단어 체계를 만들 필요성이 있다. 이런 필요성의 예는 수없이 많다. 금세기 초에 아마존 상류 지역을 돌아본 네덜란드의 탐험가 그라프는 5분 만에 계란을 삶을 수 있을 정도의 뜨거운 물이 흐르는 개울을 발견했다고 서술하고 있으며, 또한 큰 목소리로 말할 수 없는 지역도 보았는데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큰소리로 말하면 억수같이 소나기가 내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 마르께스 <문학과 현실에 관하여>


사실 백두산 천지 아래에도 “5분 만에 계란을 삶을 수 있을 정도의 뜨거운 물이 흐르는 개울”이 있으며, 서울에도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돼지꼬리의 사람’은 살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에 한 독자는 한국의 수도인 서울에서 돼지꼬리를 갖고 태어난 한 소녀의 사진을 오려서 보냈다. 내가 소설을 썼을 때 생각하던 것과는 정반대로 서울의 그 소녀는 꼬리를 자르고도 살아남았던 것이다. - 마르께스 <문학과 현실에 관하여>


그런데 우리는 왜 자신의 체험을 ‘지상의 척도’로 삼지 못하는 것일까? 올 봄에 출간한 졸저 <<문익환평전>>에서도 가장 이야기하고 싶었던 문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20세기가 저물 때까지 대부분의 한국인은 ‘영토의 지방성’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자신의 정신으로 세계를 투사하는 의식의 광학(光學)을 갖지 못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지상의 척도는 자신이 아니었다. 저 도도한 ‘중심’의 조종으로 소용돌이치는 문명의 급류에서 오직 낙오되지 않기 위하여 한국인들은 끝없이 ‘자아’를 버렸다. 지식인이 먼저 뉴욕과 도쿄를 복제했고, 예술가가 나중까지 베를린과 파리를 탐닉했다. 바로 이 같은 폐허, 자기의 원점을 포기하게 만드는 정신적 바이러스로부터 한국적 사고의 오리지널리티는 손상을 입는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국의 모든 자아사(自我史)는 세계사로부터 소외당한다.


나는 기억한다. 열 살 때 보았던 어둠 속의 세계 - 하루는 동생과 둘이서 집을 보는데 청소를 하는 사이에 동생이 없어졌다. 날은 어둡고 갈 곳은 없었다. 찾다가 찾다가 뒤란 우물가 나무 밑에 있는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리 보려고 해도 속이 보이지 않는 그 좁은 공간 속의 무한한 어두움. 소리쳐 봤지만 음성이 나오지 않았고, 손을 넣기가 무서워서 고개를 디밀었더니 코끝에 물이 닿았다. 나는 허둥지둥 달아나면서 나의 어둠이 빠져나온 수면에 북두칠성이 담기는 것을 곁눈질로 보았다.

뭔가 예측할 수 없는 것을 만났을 때 순간적으로 눈앞에 그것이 나타나곤 한다. 내용도 없고 뜻도 없는 그 하찮은 촌각(寸刻)의 편린 하나가 오래오래 내게서 척도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게 체험의 무거움을 가르친다. 체험된 모든 것은 다 그런 역할을 한다. 남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자기에게는 너무도 중요해서 그것을 빼놓고는 도무지 인생을 말할 수 없는 장면들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 같은 방식으로 각 개인들이 소지하게 된 미학적 척도들의 한반도적 통합이 근대 미학에 부응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가령 “이렇게 좋은 날에 내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의 환희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는 회한을 유럽인들이 알 턱은 없다. 그 때문에 그 통합인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유럽적 근대 미학의 권능에 밀려 ‘미숙한 신파’로 전락해 버렸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하게 되어 있다. 물이 바뀌면 배탈이 나고, 음식이 달라지면 체형이 변한다. 그리고 기존의 정체성은 몸이나 정신에서 그 변화의 양이 늘어난 만큼 농도가 묽어지며, 묽어진 만큼의 보충을 필요로 한다. 가장 정직한 정체성은 인문학적인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것이다.

인간을 낳은 것이 대지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인간의 신체는 자연의 사슬에 묶여 있고 영혼은 거기에 깃든다. 지중해 같은 곳에서는 인간의 머리카락이 수천 년의 바닷바람과 햇살에 간섭을 받아서 갈색이 되었다. 프랑스장교에게서 발견된 베트남 여인의 슬픈 체구는 그녀의 것이 아니라 자연의 것이었다. 모든 위대성은 그 안에 있다. 한 존재가 지상의 어디에서 목숨을 부여받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능력이 아니듯이 그것들의 가치 역시 우리의 의지로 수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속는다. 인간의 관념 속에서 어떤 일부는 중심이고 어떤 일부는 변방이었다. 그리고 그 ‘변방’에는 ‘중심’이 모르는 폐허가 있다. 여기서 생기는 공허감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자아를 대지의 중심에 세울 수 없다. ‘나’를 잃는다는 것은 곧 온전한 세계를 꿈꿀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아’와 ‘세계’는 달팽이와 달팽이의 껍질처럼 결속되어 있는 까닭이다.



3. ‘나’라는 달팽이의 껍질에 대하여


우리의 시에서 문화적 정체성의 문제가 출현하기 시작한 것은 세계화 이후의 일이었다. 마종기의 <차고 뜨겁고 어두운 것>은 이렇게 노래한다.


나는 예과 시절에 식물학을 좋아했다. 크고 작은 꽃과 나무와 풀잎의 이름을 많이 외우고 있었고, 식물채집과 표본은 언제나 학년에서 으뜸이었고 위안이었다. 30년이 더 지난 요즈음, 나는 그 풀잎이나 꽃의 이름을 거의 다 잊고 말았다. (…)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 때문에 미국을 선택한 나는, 자유를 얻은 대가로 내 언어의 생명과 마음의 빛과 안정의 땅을 다 잃어버렸다. -내게도 안정의 땅과 마음의 빛이 있었을까.


우리에게 ‘안정의 땅과 마음의 빛’을 주는 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나의 존재적 본질은 무엇인가? 내 영혼은 궁극적으로 무엇이 낳은 자식인가? 우리 문학의 핵심은 아직도 여전히 이것이어야 옳은지 모른다. ‘나’라는 ‘자아’의 달팽이 껍질이 ‘국경’의 크기와 동일하지 않다는 데 우리들의 문화적 곤혹과 딜레마가 있다. 지금 우리들이 알고 있는 ‘국가’란 근대 속의 격동기 200년이 만들어놓은 한 쪼가리의 정치공동체일 뿐. 국경의 크기와 대지의 크기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 한국인들의 인문지리가 자연지리를 이탈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래서 물어야 하는 것이다. 가령,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중남미’ 같은 것, 밀란 쿤데라의 ‘유럽’ 같은 것이 우리에게도 있는가?

나의 문학적 전망은 언제나 이곳에서 막힌다. 동양? 혹은 동아시아? 사실 동아시아라는 말이, 항용 사용돼오듯이 우리를 일본이나 중국과 묶는 틀로서 준비된 것이라면 공감하기 어렵다.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동아시아적 천착’에 담긴 중국이나 일본은 우리가 삶에 대해 느낄 수 있는 신비의 크기나 상상력의 크기를 충족시켜주는 나라가 아니다. 우리의 문학이 중국 체험과 일본체험에서 문화적 정체성을 확인시킨 사례는 거의 없다. 두 나라는 오히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타자’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유행처럼 회자되었던 ‘동아시아 담론’에도 그 저변에 “한국과 중국과 일본이 연대하여 세계로 나가려”는 엘리트주의의 혐의가 드리워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언젠가 일본이 아시아를 침략할 때 내세웠던 ‘대동아공영권’의 변형태가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그래서 나는 동아시아로부터 일단 달아나게 된다. 근대로부터, 서유럽을 중심으로 세계사에 대한 인류의 관념을 재편집해버린 19세기, 20세기의 상식들로부터! 그리고 그 제국주의의 아시아진출로 산산이 부서져 버린, ‘나’라는 자아의 달팽이 껍질을 다시 찾게 된다. 그랬을 때 맨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몽골반점이다.

몽골 반점을 가진 사람들은 현재 지상의 곳곳에 흩어져서 살고 있으며, 그곳에서는 모두 문화적 유사성이 발견되고 있다.


(…) 그리스와 터키에도 많은 한국 사람이 서로 딴 말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 지중해의 동쪽 변경 사이프러스에도, 아프리카의 케냐와 탄자니아 사이에도 한국 사람이 닻을 내리고 살고 있었다. 북해의 북쪽 끝, 노르웨이에서 북쪽 바다로 하루 종일 나가 있는, 북위 70도 근처의 작은 섬나라, 인구 7만의 수도 레이커빅에도 한국 식당이 있었다. 화산과 빙산에 싸인 섬에서 김선생님 댁은 김치찌개를 끓이면서 말했다. 우리만일까요 뭐. 모두가 다 그렇게 사는 것이겠지요. 무엇이건 오래 그리워하면 그게 다 사방 바다로 밀려나가 한정 없이 저런 파도소리를 만들어낸대요. -파도가 아파하는 소리 너무 커서 밤잠을 설치다가, 나는 사흘 만에 그 섬을 떠났다. -마종기 <차고 뜨겁고 어두운 것> 일부


존재의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이 공허, 이 허기. 끝없이 떠다녀야 하는 불안한 영혼을 마음 놓고 내려놓아도 좋을 곳이 어디엔가는 있을 것이다.

아마도 부서진 껍질들을 다시 모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종족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동일한 사람들의 연대감을 다시 확보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일단 그렇게 믿고 있다. 왜냐하면 이 차원 낮은 ‘종족주의’ 안에 바로 ‘나’라는 육체를 조각한 자연의 진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변덕스런 기후와 극심한 추위와 건조한 토양, 초원의 유목생활이 형성시킨 피부색과 광대뼈와 짧은 목, 납작한 코……. 우리의 신체에 기록된 이 지울 수 없는 대지의 그림자야말로 유일한 확실성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위에 우리의 불행한 역사가 얹혀 있다. 우리는 단순한 반도 국가의 사람들이 아니라 오랫동안 유라시아 대륙을 끼고 살아온 고구려, 발해의 후예들이며, 우리의 노래 속에는 아직도 북간도, 만주, 고비사막, 몽골 초원의 향기가 흐르고 있다. ‘코리아’적인 것들은 지금도 연변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우리의 민속학은 끝없이 그 길을 따라 복원된다.

가히 ‘역마’라고 해도 좋을 순례의 연작들을 펼쳐가는 김명인의 여행 시편들에도 그것은 새겨져 있다.


내가 누구냐고 자문하는 것은

노령 블라디보스토크나 하바로프스크쯤에서는

질문이 아닌지 모른다, 내가 누군지

알려고 부질없이 애쓰지 않아도 이곳에서의 삶은

저렇게 바닥이 드러나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길로 저물 뿐,

끝간데 없는 지평을 바라보거나 하루 종일

말이 없다, 시장 귀퉁이에

몇 봉지 김치를 내놓은 저 동포 아낙네도!

동족이라는 이름으로 이제 누구에게도

말 건넬 필요가 없다, 일찍이

이곳이 하바로프스크의 지하 감옥이라도!

-김명인, <연해주 詩篇 2> 중에서


이 같은 사실은 우리에게 필히, 지금은 ‘세계사’ 관념에서 사라져버린 근대 이전의 대지를 그리워하게 만든다. 유라시아가 동양과 서양으로 찢기면서 서양에게 끌려 다니는 동양이 만들어지고, 그 동양의 귀퉁이 한 쪽에 마치 절벽 가에 나앉은 땅처럼 단절된 곳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고 믿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리하여 왜 우리가 인류사의 ‘변두리’여야 하며, 농경문화와 유목문화의 생태분계선을 잇고 있는 지구의 한복판이 왜 한쪽은 서양의 귀퉁이로 또 한쪽은 동양의 귀퉁이로 이해되어야 하는가?



4. 우리가 잃어버린 ‘대지의 그림자’


누군가 만약 우리가 지금 왜 여기에 와 있는가를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운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영혼’은, ‘운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이성이 포착하지 못하는 어떤 우주적 움직임의 궤도 위에 놓여 있다. 계단에서 발을 삐끗하거나 운동장에서 현기증을 일으키며, 길을 걷다가 몸체가 한 번 기우뚱거리는 찰나적인 우연들조차도 깊게 보면 모두 운명의 손에서 지휘된다. 그렇다면, 운명! 그것이 시작되는 출발지는 어디인가? 그것은 끝내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나의 문화적 정체성은 그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같은 감각을 회복했을 때 우리 앞에 새로운 길이 열린다. 내가 고원을 그리워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날 지상의 거의 모든 예술에서 드러나고 있는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인간의 시야에서 대지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문명의 어항’ 속으로 도피해버린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든 도시에서 창작된 소설에는 자연의 무대가 없고 시에서는 대지를 호흡하는 노래가 없다. 인간이 갖는 근원적인 욕구들이 우리의 본성을 구성할진대, 춥고 배고프고 무섭고 전율하는 욕구들은 모두 우리가 대지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춥지 않고, 배고프지 않고, 무섭지 않으려고 만들어낸 문명이 우리의 삶에서 대지를 내쫓아버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처럼 당황스러운 일은 더 없을 것이다. 마치 공상과학영화의 외계인들이 맑은 공기와 물이 그리워 지구를 찾는 것처럼 문명의 어항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필시 자신들의 얼굴에서 사라져버린 대지의 그림자를 그리워하게 되어 있다.

몽골의 대지에, 몽골의 초원에, 현생 인류가 급격히 잃어가고 있는 본원적 체험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굳게 믿는다. 아마도 21세기의 미학적 주제는 여기서 나올 것이며 그 내용은 틀림없이 ‘장엄미’가 되리라는 생각에 나는 지금 부딪쳐 있다. 확신하건대 현생 인류의 문화적 고향으로서, 대지 체험이 살아 있는 인간 본성의 수련장으로서 몽골고원은 21세기의 예술가들에게 뜨거운 열정과 창조적 충동을 부추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곳까지의 정서적 거리는 얼마나 멀기만 한가?


내 머리통 속에는

양떼들이 서서 이슬을 맞고

달빛도 낙타의 등을 넘는다

숱한 별을 가진 하늘도

천막집 지붕과 지붕을 돌고


아득도 해라

서울 명동 지하도 꽃 상가 앞 벤치에 앉아

컵라면을 먹는 머리통 속으로

가다가 길 잃은 숱한 생각들

가다가 가다가 가다가 놓친

사람들, 짐승들, 바람들

(…)

우리는 이렇게 지상을 지나며

매순간 우주의 각도를 바꾸고 있다

그것은 무슨 가치가 있는가


그래도 내 머리통 속으로

그 밤 무서웠던 늑대가

별빛에 발 시린 초원을 가로질러

너처럼 나처럼

혼자서 간다

                             -졸시 <내 머리통 속에서> 일부


................................................................................................................................................광주의 서강대학을 졸업하고 1985년 『민중시』에 시 <배고픈 다리>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작가회의(구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총장을 역임하였고 6.15 민족문학인협회 준비위원장으로 있다. 동국대, 중앙대 대학원에 출강 중이며. 통일문학용어사전 책임 편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