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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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는 부끄러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7. 12. 14. 22:53

시 쓰는 부끄러움
                                    이 생 진


솔직한 말인데
뉴스 시간마다 텔레비전 앞에서 죽어가는 바다를 보고 있기가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고속버스를 타고 만리포로 달려갔죠. 만리포에 도착하자 퍼붓던 비가 멈춰 다행이다 했더니 바람이 심하게 불어 모래밭에 서 있기가 어려웠습니다. 비틀거리며 자원 봉사자 접수처로 갔습니다.
-일행이 몇 명이죠?
“혼자입니다” 놀래는 눈치였습니다.
-어디서 오셨나요?
“서울에서 왔습니다”
-이름은요?
“이생진”
-전화번호는?
“02에 955에 7823”
-저 쪽으로 가서 장비를 받으세요
마스크, 고무장갑, 장화, 그리고 비옷.
비옷은 상하가 붙어 있어 두 발을 꿰는데 힘이 들었습니다. 비옷을 입고 장화를 신고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쓰고 기름 범벅이 된 모래밭에 엎드려 마루를 닦듯 바다를 닦으려고 하니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바다’를 시로 쓴다는 것이 가식 같기도 하고 위선 같기도 해서 멀리 달아나고 싶었습니다. 시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가 시의 진실이며 시의 힘인가 하는 부담감 때문에 그랬습니다. 나는 내가 불쌍하고 부끄러워서 장화와 장갑을 벗어놓고 도망쳐 왔습니다. 바다가 따라오며 시를 버리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쯤 달려와서 뒤돌아보니 바다는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2007.12.13.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