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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인디고Indigo 책방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6. 2. 28. 15:22
인디고Indigo 책방

나호열


요크데일, 인디고 책방 2층 창가에 앉아 있다
저 멀리 윌슨 역에 서성거리는 그림자들 조합되지 않은 기호들 같다
401 익스프레스웨이와 다운타운으로 들어가는 길
나는 고개를 돌려 길을 되짚어야 한다
길을 되짚으려면 시선은 가지런한 서가에 아프게 가 닿는다
저 미지의, 뚜껑을 열기 전에는 내용을 알 수 없는 책들
제목이 먼저 와 닿거나
표지가 예뻐 손이 먼저 가거나
선택되기 위해서 직립한 책들을 보면 공연히 가슴이 시리다
너무 쉽게 읽어버린 책들
너무 어려워 팽개쳐버린 책들
그 책들을 바라보면서 그를 생각한다
얼마나 두꺼운 내용을 읽어내고
우리는 이승을 마감하는 것일까
나는 사랑이란 이미 씌어진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표지만 있을 뿐 목차도 서문도 스스로 써내려가야 할
속이 빈 책이 어디엔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물끄러미 서가를 바라본다
내가 찾는 책은 제목도 저자도 없는 책이다
책을 바라보면 그가 바라보인다
그는 커피를 마신다. 크림을 많이 넣고
설탕을 거의 넣지 않는 나는 그가 마시는 설탕 두 개에
크림을 넣지 않은 그의 커피 맛을 생각한다
이윽고 나는 이층 계단을 걸어 내려온다
나는 그의 책이다 그의 책이 되기 위하여 나는 좌회전 깜박이를 켠다
그는 401 웨스트를 타고 떠났고
가늘은 비가 그의 목소리를 재생시키고 있다
인디고의 붉은 불빛이 동백꽃 같다고 그는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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