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그 편지는, 어김없이, 내 앞에 놓여져 있다. 발신인이 없는 편지는 수상하다. 나는 한번도 그 내용을 들여다 본 적이 없다. 되돌려 보낼 주소가 없으므로 투덜대다가 아예 그것을 잊어버리기로 한다. 집요하게 달려드는 흡혈귀처럼 날카로운 송곳니가 밀봉의 틈새로 언뜻 비치기도 한다. 장독대 정한수에 내려앉은 시린 그믐달 같기도 하다. 손을 집어넣으면 금새 바스라져 없어져 버릴 것 같아 뜯지 못하는 편지, 보고 싶은 유년의 거울이 깊은 우물 속에 담겨져 있을 것 같은 출렁거림. 나의 생애는 헤아릴 수 없는 낙엽과 햇살로 가득 찬다. 수없이 피고 졌던 꽃들과 새들의 지저귐. 내가 버렸던 편지는 눈보라가 되어 나보다 먼저 눈물을 밤길에 밝힌다. 어차피 해독할 수 없는 것이라면 더 잊어야 할까 먼 길을 더욱 멀리 돌아가라는 튼실한 신발 한 켤레 일까 평발인 나는 오래 걸을 수 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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